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위화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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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세계적인 중국 작가’ 위화(余華)가 글쓰기와 독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담은 신작 에세이로, 서울, 베이징, 프랑크푸르트, 뉴욕, 베오그라드 등 세계 곳곳에서 그곳 독자를 대상으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읽는 이가 장벽 없이 위화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입말을 살려 옮겼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인간 위화를 보다 더 가깝게 만나볼 수 있다. 그처럼 글쓰는 이들에게는 문학이 인생이고 인생이 문학일 테지만, 소설가로서 그는 그토록 오래 글을 쓰고서야 문학이 인생보다 더 긴 길임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람과 삶을 말하면서도 책이나 영화에서 본 예시를 즐겨 들곤 한다.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소설 《새하얀 마음》에서 읽은 인간에 대한 통찰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아빠는 출장 중>에 대한 감상을 읽으면 위화가 삶의 어떤 부분을 포착해 그의 소설에 재현하는지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위화 혼자 쓴 책이라기보다는 독자와의 협업으로 완성한 것이다. 1999년부터 올해(2018년) 1월까지, 서울에서부터 베오그라드까지, 위화는 그곳에 있었고 그곳 독자를 만나 그들과 함께 이 책을 만들었다. 그의 책을 읽은 청중이 앞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거나, 의아한 표정을 짓거나, 질문을 했을 때 위화가 거기에 답하는 모습도 비록 문자의 형태지만 생생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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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읽고 쓰기 나와 동아시아 ―― 서울 2017. 5. 2 문학잡지 백 권 읽느니 바이런의 시 한 줄을 ―― 상하이 2007. 4. 20. 제목은 아직도 미정입니다 ―― 베이징 2008. 10. 16. 소설가의 장애물 ―― 베이징 2014. 5. 6. 한 사람과 한 잡지 ―― 우한 2017. 4. 10. 넓은 문학을 말하다 ―― 우한 2017. 4. 11. 최초로 읽은 것, 쓴 것 ―― 우한 2017. 4. 12. 진리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말 것 ―― 우한 2017. 4. 19. 국어와 문학 사이 ―― 중산 2017. 5. 11. 문학은 인생보다 긴 길 ―― 뉴욕 2016. 5. 11. 세계를 유랑하는 나의 책들 ―― 브뤼셀 2017. 9. 21. 원작과 겨루어 비겨야 좋은 번역이다 ―― 프랑크푸르트 2009. 9. 27. 한 민족의 전통에는 그들만의 개성이 있다 ―― 서울 1999. 6. 15. 2 사람으로 살기 우리와 그들: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 서울 2017. 5. 23. 사람을 안다는 것 ―― 밀라노 2017. 9. 14. 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세 가지 이야기 ―― 난징 2017. 5. 13. <아빠는 출장 중>과 기억의 착오 ―― 베오그라드 2017. 6. 10. 재떨이를 주고는 금연이라니 ―― 뉴욕 2016. 5. 12. 내 친구 마위안 ―― 베이징 2017. 11. 18. 독자와 만나다: 네 가지 질문과 네 가지 답변 ―― 우한 2017. 4. 14. “너희 집, CNN에 나오더라”: 이보 안드리치 문학상 수상 소감 ―― 비셰그라드 2018. 1. 27. 루마니아 독자 여러분께 보내는 감사의 말 덴마크 독자 여러분께 보내는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가장 세계적인 중국 작가 위화余華 그의 읽기, 쓰기 그리고 사람으로 살기 책과 점점 멀어지는 시대이다. 이럴 때 읽는 행위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야기해준 위화에게 위안을 많이 받았다. 아, 그래. 책을 읽는다는 게 이런 거였지. 장강명(소설가) ‘가장 세계적인 중국 작가’ 위화(余華)가 글쓰기와 독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담은 신작 에세이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으로 한국 독자를 찾았다. 서울, 베이징, 프랑크푸르트, 뉴욕, 베오그라드 등 세계 곳곳에서 그곳 독자를 대상으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책이다. 읽는 이가 장벽 없이 위화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입말을 살려 옮겼다. 이번 책은 1997년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당시 제목 ‘살아간다는 것’)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허삼관 매혈기》《가랑비 속의 외침》《제7일》《형제》와 소설집 《내게는 이름이 없다》 등 위화의 작품을 꾸준히 출간해온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처음 출간하는 논픽션으로, 허구의 프리즘을 거치지 않은 작가 위화의 통찰력을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한 육성을 담아냈다. “지난 세기 세계는 루쉰의 작품을 통해 중국을 알았지만 지금은 위화가 있다”(<뉴욕 타임스>) 38개국 사람들이 35개 언어로 읽은 작가, 일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면 중국에는 위화가 있다 아시아의 다음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점칠 때마다 빠짐없이 거론되는 작가가 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위화다. 위화는 현존하는 중국 작가 중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93년 처음 출간된 이래 중국에서만 400만 부가 팔린 《인생》으로 201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보다 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이후 발표한 《허삼관 매혈기》로 세계의 호평을 받으며 인기 작가 자리를 굳히더니 《제7일》과 《형제》로 중국 사회에 첨예한 화두를 던지고는 가장 논쟁적인 작가라는 이름을 얻으며 문호 반열에 올랐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중국 작가 위화 그가 말하는 읽기, 쓰기 그리고 사람으로 살기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법이라지만,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과 삶을 이야기하는 글은 언제나 독자의 환영을 받는다. 널리 알려진 작품을 쓴 작가가 하는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작품의 뒷이야기와 창작 과정,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의 삶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은 탓이다. 우리 독자에게는 《허삼관 매혈기》와 《인생》으로 가장 잘 알려진 중국 작가 위화의 이력은 독특하다. 소설가로서의 삶은 물론이고 개인사도 그렇다. 중국의 과거사와 현대사가 낯설기만 한 우리 독자에게는 바로 이웃나라 일인데도 어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탓에 독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위화에 대해서는 세 가지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하나는 작가가 되기 전에 치과의사였다는 것, 또 하나는 어린 시절에 루쉰을 싫어했다는 것, 마지막 하나는 성장기(고등학생 때까지)를 문학작품 읽는 것이 금지된 문화대혁명 시대에 보냈다는 것이다. 위화의 이력이 이렇게 독특해진 데는 중국이라는 이상한 사회(위화는 중국의 빈부격차를 두고 “같은 무대에서 절반은 희극을 공연하고, 절반은 비극을 공연하는 이상한 극장”이라 평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손석희 앵커가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인용했다.)가 한몫을 했다. 치과의사가 된 것은 나라에서 정해준 직업이었기 때문이고, 문학을 못 읽은 것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기이하고 비극적인 시대에 마오쩌둥이나 루쉰 외에는 읽기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저는 루쉰의 작품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과 산문, 시가 전부 루쉰 아니면 마오쩌둥의 작품이었으니까요. 어렸을 때 저는 중국에 작가가 루쉰과 마오쩌둥 두 사람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p. 30) “저는 책이 없던 문화대혁명 시대에 성장했고, 제가 진정으로 진지하게 문학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글을 썼던 셈입니다. 맨 처음 저의 글쓰기에 영향을 준 작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였습니다. (…) 여러 해가 지나며 저의 글쓰기 스타일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서 많이 멀어지긴 했지만, 그를 첫 번째 스승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저에게 디테일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었지요. 이런 것이 한 작가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결정짓습니다.” (p. 38) 소설가로서 위화의 이력이 독특해지는 지점은 그가 소설 읽기와 쓰기를 거의 동시에 시작했다는 데 있다. 대작가들이 성인이 되기 전 세계의 고전문학을 ‘떼는’ 것과 달리 위화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가와바타 야스나리, 헤밍웨이, 카프카, 스탕달, 마르케스, 프루스트, 포크너, 도스토옙스키 등을 읽었다. 문화대혁명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는 앞부분과 뒷부분이 유실되어 제목도 결말도 알 수 없는 책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웠다지만, 그전에 재미있게 읽은 것이라곤 《마오쩌둥 선집》에 들어 있는 주해가 다였다. 쓰기의 역사는 더 유별나다. 위화는 자신이 처음으로 쓴 것이 문화대혁명 시대의 대자보였다고 기억한다. 글씨 연습을 하기 위해 쓴 것으로, 내용은 없고 신문에서 베낀 공허한 혁명 구호가 가득했다. 그가 나중에 소설을 쓰게 된 것은, 남의 입안이나 들여다보는 일이 지겨워서 한가해 보이는 문화관에 들어가려면 작가가 되어야겠다 싶어서였다. 소설을 쓸 때 그는 단편소설부터 쓰고, 익숙해지면 중편, 그다음에 장편으로 서서히 길이를 늘려가며 마치 하나의 단계를 ‘클리어’하듯 써나갔다. “저는 1982년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이 문화대혁명(1966~1976)이라는 재앙에서 벗어난 지 몇 년 되지 않은 때였지요. 그때는 문학잡지의 황금기로서 문화대혁명 기간에 정간되었던 문학잡지들이 전부 복간되었고, 적지 않은 수의 문학잡지가 새로 창간되었습니다. 당시의 중국에서는 잡지라고 하면 거의 전부가 문학잡지였지요. 문화대혁명 이후에 글을 쓰기 시작한 저와 같은 세대의 중국 작가들이 갖는 한 가지 공통점은 먼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 숙련된 다음에 중편소설을 쓰고, 더 숙련된 다음에 장편소설을 썼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문학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것이었지요. 그때는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중요한 것은 가장 좋은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일이었습니다.” (p. 23) 위대한 작가는 장애물을 피하지 않는다 쓰기와 읽기 경험이 중첩되며 이어지는 위화의 문학 유랑은 흥미롭다. 백미는 젊은 시절의 그가 ‘글쓰기의 감옥’에 갇혀 괴로워하는 부분이다. “제 글쓰기에 있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의미는 그의 작품을 통해 디테일한 묘사를 중시하는 것을 배웠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저의 글쓰기는 튼튼한 기초를 갖출 수 있었고, 그 뒤로 글을 쓸 때는 거친 부분이든 섬세한 부분이든 디테일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오랫동안 한 작가에게 빠져 그의 창작 스타일을 학습하다 보니 갈수록 더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6년이 되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제게 더 이상 날개가 아니라 함정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비경험’이 나타났지요. 제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함정에 빠져 큰 소리로 구해달라고 외치고 있을 때, 마침 카프카가 길을 가다가 제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다가와 저를 함정에서 끄집어내주었습니다.” (p. 194)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줄곧 그를 흉내 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서야 제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지요. 아직 젊을 때였고 지나칠 정도로 그에게 빠져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제 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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