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연 시인, 퓰리처상 수상 작가 에르난 디아스 추천
★ 스토리상 수상, <타임> <뉴요커> 등 유수의 매체 선정 ‘올해의 책’
★ 미국 문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인 폴 윤의 대표작
광막한 시공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의 풍경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나’라는 수수께끼
집과 가족, 우리를 이루는 것들에 대한 정교한 질문
“소설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내게서 잊힌 지 오래된 믿음을 폴 윤은 되살려놓았다.”
--김소연(시인)
“평범함과 평범함에서 벗어난 것들을 주의 깊게 뒤섞는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언어. 삶의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순간들을 우아하게 탐구하는 소설.”
--<퍼블리셔스 위클리>
“그가 찾아내지 않았다면 영영 사라졌을 서사.”
--데이비드 민스(소설가)
미국 문단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는 작가 폴 윤의 대표 작품집이자 신작 소설집이 서제인 번역가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김소연 시인이 “소설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내게서 잊힌 지 오래된 믿음을 폴 윤은 되살려놓았다”라고 말한 이 소설집에는 세계 속에서 자리를 잃고 떠도는 이들을 고요하고 깊은 서정으로 그려낸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막 출소해서 미국 북부의 낯선 동네에 자리를 잡으려는 어느 한국계 청년, 탈북한 뒤 곳곳을 떠돌다 스페인에서 청소 일을 하는 나이 든 여자, 조선인 고아 소년의 고국 송환 길을 호위하는 에도시대의 사무라이, 탈북한 한국인의 2세로 런던 외곽 한인타운에서 살아가는 부부, 러시아 극동 지방의 척박한 고려인 이주지에 임관한 러시아인 장교, 사할린섬의 교도소에서 일하는 고려인 아버지를 찾으러 나서는 십 대 소년, 한국전쟁이 남긴 상흔을 안고 외진 산골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 폴 윤은 실로 광막한 시간과 공간 속에 흩뿌려진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들을 생생한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으로 빚어 시적인 글로 담아낸다. 폴 윤은 이 책으로 에르난 디아스, 앤 패칫 등 동시대 저명한 작가들의 극찬을 받았으며,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는 평와 함께 그해 가장 뛰어난 소설집에 수여하는 스토리상을 수상했다.
섬세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이끌어내는 감정의 깊은 곳
떠나고 또 떠나는, 머물 곳을 찾는 이들의 비애와 갈망
『벌집과 꿀』은 다양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놓인 한국계 디아스포라들을 비춘다. 전쟁, 탈북, 강제 이주 등 역사의 아픔을 개인의 삶으로 떠안은 인물들은 상실감과 비애를 그림자처럼 품고 낯선 곳으로 떠나고 또 떠난다. 냉전 시대에 탈북해 남한으로, 독일로, 스페인으로 혈혈단신 떠돌아온 장년 여성(「코마로프」)이나 미국으로 이민 와 교도소로, 낯선 도시로 옮겨 다니는 젊은 남자(「보선」)가 직접적인 경우라면, 종전 후 외진 산골 고향에 돌아와 은둔하듯 살아가는 남자(「달의 골짜기」)는 어디로도 떠나지 않지만 그의 고립은 여전히 세상 속에 그의 자리가 없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목격자의 시선으로 이들의 떠돎을 지켜보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 침략의 와중에 아기 때 붙잡혀 온 조선인 고아 소년의 고국 송환 길을 함께하는 사무라이(「역참에서」)는 뿌리가 뽑힌 채 떠도는 아이의 처지를 자신의 삶과 함께 헤아리고, 19세기 말 연해주에 임관한 러시아인 장교(「벌집과 꿀」)는 낯선 땅에 낯선 이들과 함께하게 된 자신의 신세를 곱씹으며 이국에 집을 지으려는 이들의 몸부림을 기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편 문자 그대로의 디아스포라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이주의 여파 속에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탈북해 영국 땅에 자리 잡은 부모를 둔 한인 2세 부부(「크로머」)나,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섬에 끌려온 할아버지를 둔 조선인 3세인 십 대 소년(「고려인」)은 그곳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혹은 집 없는 이가 되어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막연히 어딘가를 떠돈다.
집이 되어주어야 할, 가족이 되어주어야 할 무언가와 연결이 끊긴 이들을 담아내는 폴 윤의 글은 한없이 세심하면서도 시처럼 간결하고 응축적이다. 어떤 사건보다는 막연한 예감, 격렬한 감정보다는 희미한 느낌을 정밀하게 포착하는 폴 윤의 글은 인물들의 슬픔과 비애가 지닌 깊이와, 삶에서 문득문득 드러나는 진실들을 정확히 가늠해 드러낸다. 이 시적인 문장들은 인물들의 내면과 감정의 결을 밀도 높게 묘사하는 동시에 다양한 역사적 배경 역시 얼버무리는 법 없이 그 세부를 능숙하게 다뤄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먼 길 끝에 무언가가 오리라는 느낌
황량한 삶을 문득 비추는 빛과 온기
책에서 인물들은 짧은 여행이든 긴 이주든 어딘가로 계속 떠난다. 자리를 잃었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에, 그들은 자꾸만 떠나고 어딘가에서 또 다른 삶을 지을 수 있기를 갈망한다. 집이었던 것에 대한 그리움, 새로운 집을 찾길 바라는 갈망, 이 동전의 양면 같은 허기는 이들에게 떠남이 곧 돌아옴이기도 하다는 걸 말해준다. 집을 떠나고, 그리하여 집이 될 어딘가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 떠나는 자들에게 깊숙이 새겨진 이 갈망은 진정한 집이 생길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 같은 오랜 지속과 기다림에는 슬픔과 외로움이 깃든다.
그러나 이 책의 인물들이 홀로 외롭게 버티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일곱 편의 이야기에는 짧은 순간이라도 집이 되어주는 이들과 서로 연결되는 관계들이 나온다. 이방인이거나 자기 땅에서도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인물들에게도 신기하도록 아무렇지 않게 곁을 내주고 마음을 써주는 이들이 어디에나 있다. 생면부지의 타인을 돌보는 일을 폴 윤의 인물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그게 당연하지 않으냐는 듯이 해낸다. 그걸로 타인의 삶을 구원할 수는 없지만 한 번의 친절, 순간의 유대감이 누군가에게는 집이 되어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또 어떤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일이 있다. 그보다 더한 일들에서도 그들은 살아남았다. 달처럼 “뜨고, 기울고, 부서지고는” “스스로를 다시 만들어내”면서 살아왔다. 내일이라는 어떤 희망을 가져봐도 좋은 것이다. 물론 장소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쓰라림은 영영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또 다른 삶을 짓는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들”을 찾아내며 삶을 지속하는 이 인물들은 황량한 삶에도 빛과 온기가 깃들 자리가 있음을, 그 자리가 때로는 희망보다 크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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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옮긴 서제인 번역가는 폴 윤이 이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것―자신이 있을 수 있었던 곳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단절의 느낌과 자신이 앞으로 있게 될지도 모르는 곳에서 마음 깊이 퍼져오는 부드러운 연결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폴 윤의 소설을 읽다가 문득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된다면, 누구에게라도 말을 걸어 이 느낌을 전하고 싶어진다면, 아마도 당신 역시 조금은 길 잃은 사람일 것이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물속을 한없이 떠가는 것 같은 불확실함 속에서도 우리가 가끔씩은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고, 타인을 위해 이토록 성실하게 길을 만들어줌으로써 허무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그건 어떤 의지나 결단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짐승이 새끼를 돌보듯 그저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우리의 본능이라는 것을, 작가는 다채롭고도 능숙한 솜씨로 보여준다. 『벌집과 꿀』은 한 사람의 마음속 빈 곳이 어떻게 위안을 주는 풍경을 빚어내는 거푸집이 될 수 있는지, 그 굴곡마다 들어찬 갈망이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놀라운 건축을 해낼 수 있는지 증명해주는 텍스트다.” 이렇듯 폴 윤의 이야기를 따라간 독자들은 마지막 장을 덮으며 소설 속 인물들과 자신의 마음속 빈 곳을 조금은 울고 싶은 마음으로 의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