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늘 놀라운 것들을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한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초라하고 지루한 것인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삶들이 빚어낸 아주 특별한 이야기
이름 없는 삶의 뒤꼍에 놓인 아름다운 기억과 놀라운 비밀,
사랑과 두려움, 삶과 죽음에 관한, 황홀할 정도로 섬세한 묘사
서머싯 몸 상, 베티 트라스크 상 수상작
2010년 《타임스》 선정 ‘지난 10년간 출간된 최고의 책 100권’
27세에 쓴 첫 소설로 영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맨 부커상을 비롯해, 브리티시 북 어워즈 ‘올해의 신예’, 커먼웰스 작가상, 《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젊은 작가상 최종 후보에 올라 영국 언론과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청년이 있다. 영국의 차세대 작가 존 맥그리거, 그의 데뷔작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은 “소설의 이상형”(《타임스》), “우리 시대의 영성”(《선데이 타임스》)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정작 존 맥그리거는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서점, 콜센터, 우체국, 잡화점, 식당 등 곳곳에서 시간제로 일하며 집도 없이 거룻배 위에서 생활하면서 삶의 최전선에서 글을 썼다. 그렇게 탄생한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은 실제 경험들에서 예민하게 포착한 사소한 일상의 편린들을 극히 서정적이고 섬세한 시적 문체와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에 비견할 ‘스냅숏 콜라주’ 기법으로 엮어,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되지 못한 진짜 삶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출간한 이듬해에 서머싯 몸 상, 베티 트라스크 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10년간 출간된 최고의 책 100권’에 올랐으며,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 그리스 등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었다.
■ 평범한 일상을 흔들어 놓은 ‘그날’의 사고, 그리고 삼 년 후의 이야기
어느 늦여름 오후, 잉글랜드 북부 작은 도시의 조용하고 평화롭던 거리에서 정황을 알 수 없는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다. 남자애 하나가 달려와 급히 손을 뻗지만 상황은 이미 끝난 뒤였다. 삼 년이 지나고 그곳에서 몇 백 킬로미터나 멀어졌지만, ‘나’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교대로 등장하며 나란히 진행되는 형식이다. 늦여름의 ‘그날’,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반나절 동안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일상을 삼인칭 시점으로 좇는 동시에, 그들 중 한 명이었던 젊은 여자(나)의 삼 년 후 이야기를 일인칭 시점으로 풀어 나간다. 거리 집집마다 노부부, 젊은 학생들, 부녀, 대가족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 이렇다 할 교류 없이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한편, 삼 년 전 그곳에 살았던 ‘나’는 외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뜻하지 않게 임신을 한다. 혼자서 혼란을 느끼며 고민하던 중 ‘나’는 예전에 같은 거리에 살았던 남자애의 쌍둥이 동생 마이클과 만나게 되고, 자신을 좋아했다는, 잘 알지도 못했던 남자애에 대한 추억을 마이클과 공유하며 묘한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그에 대해 궁금해하는 ‘나’에게 마이클은 형이 먼 곳으로 떠나서 연락이 안 된다며 얼버무린다. 어느 저녁, ‘나’는 비에 홀딱 젖은 마이클을 닦아 주면서 애정을 느끼고 그에게 다가가지만 마이클은 형에게 미안하다며 뿌리치고 떠난다. 시간이 조금 흘러 다시 마이클과 연락을 하게 된 ‘나’는 그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아 진찰을 받는데, 임신한 아이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이클 형제의 이름을 따서 아이들의 이름을 짓겠다고 말한다. 다시 삼 년 전 그날, 평범했던 하루는 한 차례 비가 지나간 후 벌어진 사고로 인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그곳에 사는 어느 젊은 남자가 처음으로 차를 사서 집으로 몰고 오다가 길에서 크리켓을 하던 동네 쌍둥이 소년들 중 하나를 친 것이다. 모든 이들이 제자리에 붙박인 채 그곳에 시선을 빼앗긴 그때, 마이클의 형이 정지의 순간을 깨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든다. 하지만 그는 아이를 구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잊을 수 없는 그날을 비통한 심정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설의 종반에서야 윤곽이 드러나는 그날의 사고에서, 실은 누구도 깨닫지 못한 순간에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음이 밝혀진다.
■ 놓치기 쉬운, 그러나 놓쳐서는 안 될, 평범한 사람들의 ‘진짜 삶’에 관한 이야기
존 맥그리거는 이 책이 일면 1997년 8월의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망 사건에서 비롯했다고 이야기한다. 지인의 할머니가 같은 날 돌아가셨는데, 주변의 모든 사람이 자기 할머니가 아닌 다이애나비의 죽음에 관해서만 말했다며 지인이 속상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맥그리거는 큼직한 사건들에 가려진 채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채 흘러가는 삶, ‘비극’이라는 말이 보다 진정성을 띠는 중요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 이름 대신 “20호에 사는 노인”, “손에 화상을 입은 남자”, “눈이 아픈 남자애”처럼 특징으로만 설명된다. 그 무명의 삶들은 저마다 찬찬히 들여다봐야만 볼 수 있는 애틋한 추억과 절절한 사연을 품고 있다. 20호의 노인은 병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여전히 소녀 같은 아내에게 알려야 한다. 수없이 망설이던 그는 지나가는 말처럼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본 추억을 꺼낸다. 그리고 그것이 슬프고 괴롭기만 한 기억은 아니었고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며 차마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아내에게 돌려 전 한다. 손에 화상을 입은 남자는 화재로 아내를 잃고 혼자서 어린 딸을 키우고 있다. 그는 살려 달라고 외치던 아내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딸을 잘 키우기 위해 애쓴다. 눈이 아픈 남자애는 삼 년 후 이야기의 화자인, 같은 거리에 사는 소녀를 짝사랑하며, 거리에 버려진 물건들을 모으고 무의미한 낙서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다. 남자애는 항상 수줍어 보이고 상대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도 못하지만, 사고의 순간에 누구보다 먼저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름 없는 삶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에 열중하기도 한다. 삼 년 후 이야기의 화자인 ‘나’는 임신 사실에 당혹스러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아이의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지에 대해 계속 고민한다. 20호 노인은 젊은 시절 전쟁터에서 전사한 동료들을 땅에 묻는 일을 했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전사자의 식별 표에 즉석에서 만든 이름을 써 넣으며,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의 잔인한 익명성을 위장하려 했다.” 눈이 아픈 남자애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나 주워 모은 물건들에 이름을 써 넣었는데, 그는 “모든 것들이 무시되고 잊히고 버려지는 것이 너무 싫다”며 자신을 “현재의 고고학자”라고 생각한다. 손에 화상을 입은 남자는 사고를 당한 남자애의 이름을 계속해서 되뇌며 모든 사람이 한순간 같은 마음으로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 한다. 그들은 이러한 ‘이름 붙이기’를 통해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흩어진 관계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귀를 기울이면, 들린다. 도시가, 노래를 한다. (중략) 노랫말은 없다고 해도, 버젓한 노래고, 다들 듣지 못한다고 해서 도시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소설은 이렇게 도시의 밤 정치를 묘사하는 프롤로그로 시작되는데,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고, “듣지 못한다고 해서” 부르지 않는다고 할 수 없는 한밤중 도시의 노래가 바로 이 소설이자, 놓쳐 버리기 쉬운 무명씨들의 ‘진짜’ 삶인 것이다.
■ 시적 문체와 ‘스냅숏 콜라주’ 기법, 일상의 사소함으로 절묘함을 엮어 내다
이 소설의 문체는 각각의 단락을 한 소절 혹은 한 편의 시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서정적이고 섬세하다. 말의 리듬감이나 수사법의 사용도 시에 못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