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여성이 아니라 사회다
하재영 작가•하미나 작가•장혜영 국회의원 추천!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2015 영국 언론상 수상
★ BBC 선정 ‘올해의 여성 100인’ ★
〈코스모폴리탄〉 〈레드〉 〈선데이 타임스〉 올해의 여성
BBC 선정 ‘우먼스 아워 파워 리스트 10인’
저자 로라 베이츠는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의 두 번째 퇴고와 세 번째 퇴고 사이에 서비나 네사(2021년 9월 17일, 영국 그리니치에 살던 서비나 네사는 집에서 5분 거리 펍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던 중, 집 앞 공원에서 30대 남성에게 살해당했다.)가 죽었다. 이 책이 출간될 때쯤에는 또 다른 여자의 이름이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남자가 그녀를 탓할 것이다. 이것은 독립 사건이 아니다.” 그리고 그 일은 한국에서도 있었다. 2023년 8월 17일, 서울 시내 한 등산로에서 출근 중이던 여성이 30대 남성으로부터 폭행, 성폭행, 살해당했다. 대낮에 일어난 일이었고 범행 동기는 “강간이 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니까 왜 여자가 혼자 운동을 하러 거기에 갔냐’ ‘당시에 무슨 옷을 입었냐’ 등 피해자를 향한 도를 넘는 2차 가해와 강간 신화(강간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믿음)는 현재 우리 사회에 여전히 진행 중이다.
로라 베이츠는 2012년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성차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일상 속 성차별 프로젝트’라는 사이트(everydaysexism.com)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50명 정도가 사연을 올릴까 예상했지만,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10만 개가 되며 화제의 중심에 올랐고, 오늘날에는 2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냈다. 선두에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로라 베이츠는 2015년 디지털 혁신 분야에서 영국 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온 온갖 불평등 이야기들, 성차별적인 농담,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직장 내 차별, 성추행 등의 사건이 이 책에서 말하는 각자의 ‘목록’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일상화된 불평등의 원인을 사회의 제도적·구조적 시스템에서 찾는다. 그 누구보다 평등을 지향해야 할 교육, 경찰, 사법, 정치, 언론이 어떤 식으로 여자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그들의 입을 막고 좌절하게 하는지 들여다본다. 《목록》은 여자로 살아가며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의 기록인 동시에 더 이상 그것이 개인의 일상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선언이다.
책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문제는 여자가 입고 있던 옷도, 몇 시에 어디를 갔는지도, 소극적인 성격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다. 많은 경우 이는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계급 차별, 장애인 차별, 트랜스젠더 혐오, 무슬림 혐오 등의 편견과 얽혀 있기도 하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우리 사회는 모두에게 평등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가? 장혜영 국회의원이 말했듯, “시스템을 바꿀 이유와 힘은 이미 우리에게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연결하는 것이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길래 이걸 말로 해야 한단 말인가? 오늘날 우리가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어야 하는 이유다.
“이 폭발적인 책이 차별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깨부수기를.”
우리는 지나치게 자주 여자를 탓한다
전 세계적으로 거의 매일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하지만 대개 우리는 그 여자들의 이름조차 모른다. 언론에 머리기사라도 한 줄 실리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회는 이를 ‘극히 드문’ ‘물 흐리는 미꾸라지가 저지른’ ‘비극적인’ 일로 치부하고 사건들의 상호 연결성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시스템 차원의 해결책을 논외로 만들어버린다. 그리하여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의 원인과 예방과 해결책은 또다시 여자의 몫이 된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하고 여자를 비난하는 일은 안전하고 쉽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여자들이라면 시스템을 바꿀 필요도, 누군가가 책임 질 필요도, 제도를 개혁하고 구조적 문제를 뿌리 뽑을 필요도 없다. 그 결과 여자들은 괴롭힘, 폭행, 강간, 살해에서 벗어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영국에서 세라 에버라드라는 여성이 실종된 후, 경찰은 집집마다 방문해서 절대 여성 혼자 외출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들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여자들이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남자들의 집을 방문해서 범인을 밝혀낼 때까지 외출하지 말라고 경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통계적으로 범인은 남성일 확률이 압도적이다.)
이 책에는 여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긴 대처법 목록이 실려 있다.(106~108쪽) 길을 걷다가 남자 무리가 있으면 반대편으로 가기, 혼자 살지 않는 척하려고 남자 목소리 녹음해두기, 여자친구들과 헤어진 후에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자 보내기, 술집에서 손으로 술잔 위를 덮고 누가 내 술에 약을 타지 않는지 매의 눈으로 감시하기,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벽에 서 있기…… 여자들은 자신의 무의식적인 습관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에게는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라는 점이, 여자들이 이렇게 불편하게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점과 점의 연결, 이것은 ‘독립사건’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활동가, 작가, 강연자. 방송에서 남자 패널과 피 튀기며 토론하고,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여러 권의 페미니즘 책을 쓴 로라 베이츠 역시 성차별을 겪은 순간은 있었다. 정확하게는 ‘있었다’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목록이 인생 내내 뒤따랐다. 그러다 비슷한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점과 점을 연결했다.’ 이 사건들이 우연히 벌어진 독립사건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간 일상에서 흔하게 겪었지만 무시하려 애썼던 목록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의 삶이 공포, 학대, 괴롭힘, 차별로 얼룩지는 것이 정당한 걸까? 그래서 여자들에게 목록에 대해 물어보고 다니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아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평범한 일상이니까요.”
마흔아홉 살 여자인 나에게는 이야깃거리가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많은 여자들이 용감하게 공개한 것 같은 끔찍한 성폭력은 아니고 그저 평생 남자들에게 괴롭힘당한 이야기다. 우선 나보다 어린 여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말없이 참아서, 대부분 신고하지 않아서, 나에게 일어난 일을 소리 내어 외치지 않아서 미안하다. 침묵을 지킨 탓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이런 행동들이 당시에는 당연시되었고 친구들도 모두 겪은 일임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너무 당연해서 친구들끼리 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도 거의 없다…… (29~30쪽)
이에 저자는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상이어서는 안 된다고,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이야기들이 모일수록 다양한 억압의 형태 간에 겹치는 부분, 즉 ‘교차성’이 명백해졌다. 여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사과하는 듯한, 의구심 가득한 말투를 사용했다. 여자들은 스스로를 믿지 않도록, 목록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도록 체계적으로 훈련받아왔다. 이것이 바로 아주 오랫동안 가부장으로 대표되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사회 시스템을 통해 구축해놓은 억압이다.
“이제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내 목록을 써내려갈 것이다.”
2023년 7월, 대한민국 정부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강화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스토킹 살해는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