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큐레이터로서 오랜 시간 미술 곁에 머무른 조아라
미술이 자신을 붙잡았던 순간을 진솔하게 기록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며 전시와 관련된 일을 10년 넘게 해 온 조아라. 그가 미술을 업으로 택한 계기는 “어떤 시대의 한 사람이 그려 낸 장면이 시공을 초월해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작품을 뚫고 나와 소통하려는 예술가의 간절한 바람과 그 간절함을 감싼 아름다움은 그를 매료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예술가, 큐레이터, 설계 및 공사팀, 작품 운송 등 수많은 관계자의 의견을 조율해 정리하며 전시를 준비하고, 작품의 의도가 사람들에게 전달되도록 애쓰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점차 변화가 생긴다. 일의 고단함으로 작품의 아름다움과 예술가의 위대함을 마음껏 찬미하며 순수하게 예술을 사랑하던 마음을 잊어버리게 된 것. 이렇듯 예술이 단지 애호의 대상이 아니라 일이 되면서 생겨버린 이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 조아라는 기록을 택한다. 미술을 사랑했고 또 여전히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본인만의 언어로 마음껏 예술과 예술 작품을 소개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재 활동 중인 동시대 예술가의 작품을 비롯해 회화, 조각, 설치 등 폭넓은 장르의 미술을 아우르는 이야기를 통해, 그가 미술과 소통하며 생각을 넓히고 감정을 가꾼 순간들을 접하면서 우리를 붙잡는 미술의 매력을 만나볼 수 있다.
이해 못 할 모순에 휩싸이거나 벗어나고픈 갈망을 마주할 때…
마음을 알아주는 미술을 만나다
삶 전반에서 미술과 가까이 지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미술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을 마주하거나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알아준다. 곁에서 위안과 힘을 주는 미술의 면모는 여러 작가 및 작품과 교제한 조아라의 일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성을 쏟아 준비한 전시 개막 시기. 온갖 신경이 곤두선 찰나에 윤석남 작가의 바닥까지 팔을 길게 늘어뜨린 채 천장에 매달린 나무 조각 작품은 ‘닿고 싶지만 완전히 뛰어들고 싶진 않은 회피하고픈 마음’을 헤아려준다. 반복되는 육아에 지칠 때, 예술가 바이런 킴이 캔버스에 매일같이 그린 평범한 하루의 하늘은 사소한 오늘과 작은 노력에 숭고함을 일깨운다. 소심한 스스로가 갑갑할 무렵, 점과 선을 모아 자유로움을 구현한 박광수의 작품을 감상하며 작업 과정에 이입해보는 일은 해방감을 전해준다.
이처럼 조아라는 진공 상태가 아닌 자신의 현실을 바탕으로 미술을 감상한다. 지금의 상황과 감정에서 출발해 작품과 예술가와 만나며 섞인다. 진지하고 깊이 있게 미술과 소통하는 자신만의 화술을 드러내며, 미술과 친밀히 관계 맺고 동행하는 법을 일러준다.
순간이자 영원으로서 미술
그치지 않는 질문이 선사하는 새로운 순간에 대하여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와 정적인 인물 스케치로 현대 도시인이 소외감과 고독함을 표현한 에드워드 호퍼. 그와 그의 작품은 광고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서 소개된 바 있어 사람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를 비롯해 반 고흐와 모네 그리고 인상주의 등등, 비교적 친숙한 작가와 작품 그리고 미술 사조는 비슷한 수사로 불리고 전달되기를 반복하면서 특정한 모습으로 굳어지곤 한다. 그렇다면 작가와 작품의 운명은 한때의 인상과 해석에 머물다가 새로운 작가 및 작품에 밀려 결국엔 잊히고 마는 걸까. 조아라는 이렇게 비관적이고 어두운 결말을 거부한다. 그 대신에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과 팬데믹 상황과 연결지어 작품의 의미가 시의성을 띠도록 갱신한다. 또한 한 번 어쩌면 그 이상의 횟수로 접했을 법한 모네와 반 고흐의 인상주의 작품에서 신화와 위인이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통찰로 보편성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변하는 시대를 반영해 작품의 의미를 다시 쓰고 다른 입장과 관점에서 미술을 사유하며, 즉 질문을 그치지 않으며 미술이 끝없이 새로운 순간에 자리할 수 있게끔 한다.
말하지 않고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어 주는 듯한 건초더미들. 시간대를 유추하게 하는 그림자의 모양과 색채의 변화. 이들은 다시는 오지 않을 사라진 ‘찰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이 시시각각으로 변해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의 ‘영원’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인상주의를 통해 수확하고 남은 건초더미가 비로소 회화 한복판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고, 심지어 우리는 그것으로 순간과 영원의 이야기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_「건초더미에서 본 순간과 영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