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정치

이화진
3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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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 연구에서 최근 본격화된 한국의 토키 이행기를 더욱 예리하게 살피고 폭넓게 탐구하는 책이다. 영화 테크놀로지의 도입과 변화는 기술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변화를 가리킨다. 무엇보다 보는 것 이상으로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은 대단히 첨예한 정치적 테마다. 이때 사운드 도입은 식민지 조선의 동족(어) 공간을 때로는 갈라놓기도 했고, 거꾸로 새로운 공공적 공간을 창출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 책은 식민지 시기 영화에 관한 풍부한 해설과 도판을 통해 당대의 극장이 얼마나 역동적인 공간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운드 테크놀로지의 문화 정치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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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1장. 식민지의 극장과 ‘소리’ 식민지의 다이글로시아와 조선영화 극장과 ‘소리’에 관한 연구의 궤적 (목)소리와 말의 영화 이 책의 구성 2장. 토키 이행기 극장의 문화적 지형 변화 1. 식민지 극장과 다이글로시아 1 두 민족, 두 언어, 두 극장 2 ‘동족(어) 공간’의 정치적 잠재성 2. 외국 발성영화의 도래와 ‘방문자막(邦文字幕)’의 출현 1 무성영화기 외국 영화의 수용: 과잉 혹은 유연성의 조건들 2 초기 외국어 발성영화의 상영 방식들 3 ‘방문자막’의 출현과 정착 3. 상영의 표준화와 극장의 문화 정치적 위상 변화 1 ‘육성(肉聲)’에서 ‘발성(發聲)’으로 2 ‘동족(어) 공간’의 쇠퇴와 상영의 문화적 지형 변화 3장. ‘발성’하는 신체와 ‘조선영화’의 형성 1. 조선어 영화의 등장과 조선영화 만들기 1 ‘음화(音畵)’로의 재출발 2 조선어 대사로 영화 만들기: 나운규의 시도와 좌절 3 문학과 영화, 그리고 조선영화의 ‘신세리틔’ 2. 초기 조선어 영화의 사운드 실험 1 경성촬영소의 토키 토착화 시도 2 ‘사운딩 코리안’: 조선영화의 음악, 노래하는 조선 3 육체와 음성의 사운드 몽타주 3. ‘발성’하는 신체: 목소리와 신체, 그리고 스타덤 1 영화 연기의 제도화 : ‘안면 근육’의 무도(舞蹈)에서 ‘에로큐’의 문제로 2 ‘조선적 신체’와 목소리 4장. ‘소리’의 벡터: 제국의 관객을 상상하기 1. 중일전쟁 이후 제국적 영화권의 편성 1 식민지 조선의 양화(洋畵) 통제와 일본 흥행계의 조선 진출 2 조선영화의 일본 이출(移出)과 내선(內鮮) 합작 영화 2. ‘대동아공영권’과 일본어 영화의 기획 1 ‘대동아영화(권)’과 ‘동아 공통어’로서의 일본어 2 ‘조선어 영화’의 기로 3 ‘고쿠고(国語) 영화’와 흐려지는 민족적 신체 3. 조선어 공간의 재편 1 문화의 외부, 이동하는 극장 2 ‘오랄리티(orality/aurality)’의 이중성 맺는말 주(註)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제국과 식민지 영화의 각축장, 소리 무성영화에서 발성영화로의 이행을 둘러싼 식민지 조선의 영화와 극장의 정치학 영화에 소리가 도입된 이래, 영화의 표현은 더욱 풍부해졌고 그 결과 우리는 소리가 없는 영화를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음향과 음성이 영화에 삽입되면서 영화는 국민국가의 언어로 ‘들리는’ 매체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관객은 자신이 특정한 언어를 공유하는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럴 때 극장은 정치적 중립지대이기는커녕 치열한 정치적 무대가 된다. 그렇다면 식민지 시기 조선의 상황은 어땠을까. 무성영화 <아리랑>을 즐겨 보던 조선인 관객의 눈앞에 토키(발성영화)라는 신문물이 나타났을 때, 조선영화인들은 조선어 영화를 만들고 제국 일본의 국경을 벗어나는 것을 꿈꿨다. 정치적 공간인 극장 또한 토키의 도입에 따라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리의 정치: 식민지 조선의 극장과 제국의 관객』은 한국영화사 연구에서 최근 본격화된 한국의 토키 이행기를 더욱 예리하게 살피고 폭넓게 탐구하는 책이다. 영화 테크놀로지의 도입과 변화는 기술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정치적ㆍ경제적ㆍ문화적 변화를 가리킨다. 무엇보다 보는 것 이상으로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은 대단히 첨예한 정치적 테마다. 이때 사운드 도입은 식민지 조선의 동족(어) 공간을 때로는 갈라놓기도 했고, 거꾸로 새로운 공공적 공간을 창출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 책은 식민지 시기 영화에 관한 풍부한 해설과 도판을 통해 당대의 극장이 얼마나 역동적인 공간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운드 테크놀로지의 문화 정치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우리의 맑고 뜨거운 붉은 피를 온 세상에 뿌리어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정성을 깨닫게 하자!” 식민지 조선의 극장은 치열한 정치적 무대였다 1910년 조선 최초의 영화상설관인 경성고등연예관이 문을 연 이후, 조선에는 여러 극장이 개관했다. 식민지 조선의 극장은 크게 조선인 상영관과 일본인 상영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조선인 상영관에서는 주로 서양 영화가, 일본인 상영관에는 일본 영화가 상영되곤 했다. 조선인 상영관은 재조선 일본인 관객에게 “저렴한 입장료로 서양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빈대가 많고, ‘조선인 특유의’ ‘이상한 냄새’가 나며, 여기저기서 ‘지저분한 욕’을 하는 자들이 있(43쪽)”는 공간으로 비쳤다. 이런 종족적 편견은 제국 일본이 ‘내선일체’를 표방하지만 그 저변에는 차별이 깔려 있으며, 식민지 조선이 이중언어의 환경에 놓여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즉 “조선의 언어 환경은 각 언어 사용자의 합의에 의해 두 언어가 공존하는 바이링구얼리즘(bilingualism)이 아니라, 식민자의 언어인 일본어와 피식민자의 모어인 조선어가 지배자의 언어가 가하는 상징적 폭력에 의해 위계화된 다이글로시아(diglossia)이다(29쪽).” 무성영화 시기 식민지 조선의 극장에 저항의 기운이 스며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20년 7월, 우미관 변사 정한설은 상영 중 휴식 시간에 무대에 나타나 긴장된 표정과 흥분된 어조로 주먹을 불끈 쥐고 객석을 향해 외쳤다. “오늘은 자유를 부르짖는 오늘이요, 활동을 기다리는 오늘이라, 우리의 맑고 뜨거운 붉은 피를 온 세상에 뿌리어 세계의 이목을 한번 놀래어서 세계만국으로 하여금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정성을 깨닫게 하자.” 곧바로 임석경관에게 체포된 그는 종로경찰서에 구인되었다. 상영되는 영화와는 무관한 불온한 언사로 관중을 선동하고 사상을 고취했다는 죄목이었다. 당시의 기사는 변사가 상영 도중 “언론에 대한 관계로 구인”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50쪽) 스크린에 비친 무성영화를 해설하는 변사는 관객과 영화를 이어주는 매개자이자 번역자로서 목소리를 통해 관객과 공명했다. 하지만 토키 이행기 동안 관객의 영화 체험은 ‘육성(肉聲)’에서 ‘발성(發聲)’으로 변화했고, 그에 따라 극장에서 배제된 변사들은 자살을 감행하기까지 했다. 동시에 조선인 상설관은 ‘동족(어)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조금씩 탈각해 갔다. ‘최초의 조선어 토키’를 향한 도전과 좌절의 역사 사운드는 어떻게 식민지 조선의 ‘로컬 컬러’를 구현했나 <아리랑>(1926)으로 스타덤에 오른 나운규는 ‘최초의 조선어 토키’를 제작하고자 젊은 영화인과 의기투합했지만 그의 시도는 금세 좌절을 맞는다. 토키는 무성영화보다 고도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경성촬영소가 토키 영화 <춘향전>(1935)을 제작하면서 조선영화는 ‘세계표준시’에 진입할 수 있었다. 경성촬영소는 거기서 더 나아가 사운드트랙의 도입을 실험했다. 영화는 시작부터 소리와 함께했지만, 그때 소리는 스크린 밖의 악단과 변사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사운드트랙은 영화 음악의 성격을 바꿔 놓은 동시에, 조선영화만의 사운드를 구현해야 한다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식민지 조선의 ‘로컬 컬러’는 영화에 삽입된 조선민요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서양음악을 박스 음악으로 사용하여 할리우드 고전영화가 표방하는 보편적인 영화 문법 안에 있으면서도, 스크린 음악으로 조선음악을 삽입하여 조선적인 특수성을 강조하는 방식인 것(172쪽)”이다. 이때 조선의 로컬 컬러는 제국 일본의 신민이라는 위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도, 조선인 관객의 동족(어) 공간을 개방하는 방향으로도 동시에 작용한다. 이 장면에서 식민지인들이 식민지의 언어로 부르는 식민지의 노래는 전혀 다른 두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노래를 부름으로써 “겉모습(形)도 마음(心)도 피(血)도 살(肉)도 모두 일체(一体)가 되어야 한다”는, 쉽게 합리화되지 않는 세계로의 비약이 시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노래란 논리나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세계에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래 부르기’가 스크린 바깥으로 확장될 가능성과 관련된다. 영화를 보면서 <양산도>를 조심스럽게 따라 부르거나 영화를 본 후 극장을 나온 관객이 <양산도>를 흥얼거리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백마강 시퀀스를 연출한 감독 허영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 효과는 의도를 쉽게 배반한다. (181~182쪽) 한편 무성영화에서 발성영화로의 이행은 배우의 연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에게는 대사가 필요 없었지. 우린 얼굴이 있었거든(190쪽).”이라는 영화 대사처럼 표정과 동작으로 극을 이끌던 무성영화기 배우들은 ‘에로큐슌(화술 연기)’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맞닥뜨려야 했다. 조선어 발성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조선인 배우의 신체와 목소리가 제국 안에서 ‘이국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소비됨에 따라 ‘내셔널한 스타의 세대 교체’가 일어나기도 했다. 프로파간다는 결코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는다 지배와 저항이 교차하는 식민지 조선의 ‘동족(어) 공간’을 탐색하다 조선어 토키의 제작은 활성화되었지만, 토키 이행은 만주사변(1931)과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침략 전쟁과 함께 이뤄진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영화는 두 가지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갔다. 첫 번째는 조선영화가 제국 일본의 영역으로 널리 퍼져 나가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변방에 자리 잡은 이들을 관객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첫 번째 벡터는 전쟁 발발 직후 제국 일본이 외국 영화의 수입을 제한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조선영화는 식민모국인 일본을 겨냥해 중심으로 진입하고자 했는데, 이때 ‘조선색’이라는 로컬 컬러는 다시금 조선영화의 특성으로 강조되었다. 한편 제국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면서 일본 영화계에서도 이에 호응해 ‘대동아영화(권)’을 제안한다. 이때 일본어는 ‘동아 공통어’로서 위계화된 언어로 자리매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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