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구성, 명료한 태도, 방대한 자료를 갖춘
독보적인 사진이론 입문서”
■ 사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사진은 탄생과 동시에 급속도로 세상에 퍼졌다. 사진은 도처에 존재한다. 더불어 사진의 역사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해졌다. 사진을 분류하고 규정하는 것은 이제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자료와 씨름을 해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명료하고, 포괄적이며, 비판적으로 사진에 대해 논하는 『사진이론: 사진 해석을 둘러싼 논쟁과 실천의 역사』는 그 자체로 독보적이며 걸출한 사진이론 입문서다.
1996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최근 다섯 번째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사진이론 입문서로 정평이 난 『Photography: A Critical Introduction』(Routledge, 2009)를 번역한 이 책은 영국의 사진이론가 여섯 명이 함께 썼다. 기획자인 리즈 웰스를 비롯해 아난디 라마머시, 마틴 리스터, 데릭 프라이스, 미셸 헤닝, 패트리샤 홀랜드 이 여섯 명의 저자들은 풍경사진, 디지털문화, 몸의 재현, 대중사진, 탈식민주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진 및 시각문화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이 책의 목표는 명확하다. 바로 “사진이론의 쟁점을 일관성 있게 다루는 입문서”로 널리 활용되는 것이다.
“이 책을 기획한 계기는 간결하고 명료한 입문서의 도움 없이 사진이론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느낀 좌절감 때문이다. 이미 사진사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어 다양한 안건에 따라 사진을 정의하고 있지만, 어느 책이든 역사적으로 혹은 현재 시점에서 사진의 대가들을 강조하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반면 사진적 보기(photographic seeing)의 본성을 둘러싼 논쟁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은 거의 없다.”_리즈 웰스
『사진이론』은 기본적으로 사진 ‘찍기’보다 사진 이미지 ‘읽기’에 관한 책이다. 사진 해석을 둘러싼 역사적, 핵심적 논쟁들을 다루며, 그와 관련된 사례와 다양한 자료를 함께 실어 사진이론을 개괄하고, 사진을 읽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이자 안내서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는 뜻이다. 필진이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학자들인 만큼 이 책은 주로 영국 및 유럽, 북미에서 일어난 사진 관련 논쟁과 발전을 검토한다. 문화연구에 강세를 보이는 영국 학계의 특성은 이 책 전반에 드리워져 있다. 저자들이 사진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은 사진구성주의에 기반한다. 사진구성주의란 사진의 의미가 본래적으로 내재된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결정된다는 관점이다. 이들의 입장은 지금도 유효한, 사진에 대한 가장 강력한 통념인 사진사실주의(사진은 실재의 흔적이고 피사체의 속성을 왜곡 없이 드러낸다는 입장)에 대치된다. 사진구성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진은 ‘순수하지 않으며 문화적 맥락에 따라 구성되는 고안물’이다. 따라서 이 책은 사진을 읽어야 하는 텍스트로 다룬다.
이 책은 연대기적인 역사는 논하지 않는다. 대신 사진 해석과 관련한 실천 및 쟁점을 중심으로 과거의 태도, 이해, 기술적 한계, 정치사회적 맥락에 대해 논의한다. 이를 통해 특정한 분야나 초점과 관련해 사진의 개념들이 어떻게 발전되어왔는지를 살펴보며, 이들 각각은 각 장의 주제를 이룬다. 이론을 정립한다기보다 논쟁이 만들어진 방식과 과정을 짚어주며 사진 해석을 둘러싼 핵심 쟁점을 명료하게 드러내주고자 한다.
이처럼 사진을 시각문화 및 재현의 정치학과 연관시키는 관점은 『사진이론』이 사진사 책이 아니라 사진이론서라는 성격을 부각시킨다. 그럼으로써 책의 목적이 거장들의 계보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대한 태도, 용례, 독법을 둘러싼 다양한 비평적 입장을 개괄하는 것임을 명확히 한다. 구속력 있는 법정 증거부터 놀이로서의 인스타그램까지 사진은 인간 사회 어디에나 존재한다. 더욱이 태생적 편재성 외에 사진 매체 특유의 양가성 때문에 단일한 사진이론의 정립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사진 자체가 오브제로서도, 실천 행위로서도 맥락마다 의미가 달라지기에, 이 책은 이를 해석하는 사진이론 역시 복합적일 수밖에 없음을 전제하고 출발한다.
■ 독보적이며 걸출한 사진이론 입문서
정교한 구성을 통해 사진이론의 수많은 쟁점들을 명료하게 제시하며 전체 그림을 그려주는 『사진이론』은 사진을 공부하고,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정확하고 믿을 만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총론, 다큐멘터리, 대중사진 및 개인사진, 몸의 재현, 상품문화, 예술사진, 전자 영상 등 총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예술뿐 아니라 사진적 실천과 관련된 주요 영역들을 아우른다. 각 장은 특정 주제와 관련된 개념이나 쟁점들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논쟁의 지형도를 그려준다. 사진에 대한 원론적 논쟁을 다루는 1장과 7장은 특히 복잡하게 얽힌 여러 비평적 입장들을 빼어난 솜씨로 정리해준다. 1장에서는 사진사실주의의 주요 입장과 이에 대비되는 기호학 및 마르크스주의 분석에 대한 명쾌한 요약을 볼 수 있고, 7장에서는 디지털 혁명이 사진의 본질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싸고 인본주의, 기술진보주의, 매체 고고학, 수용이론 관점에서 얼마나 상반된 이견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주제마다 필자가 달라 각 장마다 조금씩 구성은 다르나, 다양한 논점들을 세밀하게 분류하고 일목요연하게 서술하는 점은 같다. 사례연구를 통해 이론서에 부족하게 마련인 구체성을 보강한 점 역시 눈에 띄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범인 도로시아 랭의 <유랑민 어머니>를 피사체, 사진가, 장르, 맥락, 텍스트, 상징, 젠더 등 아홉 가지 관점에서 분석한 1장의 사례연구는 사진 이미지 해석의 다양성을 증명하는 교본으로 꼽을 만하다. 그 밖에 적극적인 주석의 활용과 충실한 참고자료, 적재적소에 들어간 인용은 이 책 한 권으로 수많은 책을 읽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이론을 공부하는 이들이 이 책 외에도 앞으로 어떤 자료를 더 찾아봐야 할지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한국어판은 원서의 성격에 맞춰 정확하면서도 친절한 입문서를 지향한다. 상당한 양의 옮긴이 주를 추가해 원서의 장점을 강화하고, 한국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선별해 추가했다. 『사진이론』의 출간은 척박한 국내 사진이론의 지반을 강화하고 이론적 다양성과 균형을 잡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예술사진계는 보도사진·다큐멘터리 기반의 1세대 작가들과 대중적 사진애호가들의 영향으로 사진의 진실성을 강조하는 시각이 강한 편이다. 15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사진사 및 사진이론의 다양한 관점이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국내에 출간된 사진서는 대부분 대가들의 작가론이나, 수전 손택, 롤랑 바르트 등 일부 유명 이론가들의 저술 번역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진이론의 전반적 지형도를 파악할 수 있는 비판적이고 균형 잡힌 안내서이자 입문서인 『사진이론』은 국내 사진서 출판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채워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장별 소개
1 사진에 대해 생각하기: 과거와 현재의 논쟁
사진에 대한 핵심 쟁점과 저명한 이론가들이 정교하게 다듬은 몇몇 입장들을 소개한다. 장 초반에는 사진 및 사진적 실천에 관한 이론적, 비판적인 논의들을 특징짓는 여러 논쟁들에 주목한다. 이는 미학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논의로 시작된다. 이후, 사진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들을 요약하고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사진이 실천되는 장소와 제도, 관객을 고려한다. 특히 도로시아 랭의 유명한 사진 <유랑민 어머니>가 논의되어온 다양한 방식을 사례로 들며, 한 장의 사진을 대하는 특정한 태도 및 가정이 어떻게 규명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 조사하는 자와 조사 받는 자: 바깥에 대한 사진
일상생활의 기록과 관련해 카메라의 다큐멘터리적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여행사진과 보도사진은 물론, 20세기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