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모든 도시가 꿈꾸지만 아무 도시나 가질 수 없는 도시 경쟁력의 뿌리는 어떻게 자라는가? 우리에게도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생길 수 있을까? 8년 진통 끝에 낳은 동대문디자인공원(DDP)이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출발하였다. 하지만 동대문의 역사성 훼손, 비정형 디자인이 주는 이질감, 어마어마한 건축비, 공간의 활용도 등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건물이기에 주위의 시선은 복잡하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며 총사업비로 4,840억 원을 투자한 공공건물이 기대와 설렘보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와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 이는 우리 사회가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랜드마크가 필요하다는 당위만 뜨겁게 강조했지 정작 랜드마크가 도시와 삶이라는 맥락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차갑게 따져보지 않은 탓에 생긴 결과이다. 도시가 국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면, 당연히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해답은 오늘날 세계 속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건축물이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도시와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거듭났으며, 어떻게 도시 경쟁력의 원천이 되었는지를 살피는 데서 찾아야 한다. 역사가 가르쳐준 랜드마크의 조건 『랜드마크; 도시들 경쟁하다』에서 저자는 랜드마크를 “고정된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기대하게 만드는 건축물”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기대하게 만드는’ 원인을 추적하기 위해 근대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형성된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어떤 사회 ·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장했으며 그 결과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폭넓게 다룬다. ‘랜드마크’란 표현은 단순히 높이 경쟁에서 승리한 건축물에 주어지는 영광도, 독특한 디자인을 구현해낸 실험 정신을 기리는 헌사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의도를 가지고 건물을 짓는다고 해서 그 건물이 랜드마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에펠탑은 인간이 세운 구조물 중 세계 최초로 높이 1,000피트를 정복했지만 설계 단계부터 파리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흉물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고, 런던 템스 강변에 자리 잡은 런던아이는 UFO 혹은 햄스터의 쳇바퀴라는 비웃음을 감당해야 했다. 쇠퇴해가던 스페인의 공업도시 빌바오를 문화도시로 재탄생시켜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말까지 만들어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철저한 계산에 따라 랜드마크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역시 독특한 외형만으로 지금의 성공 신화를 써내려간 것은 아니다. 랜드마크로서의 성공 여부는 건물 완공 직후에는 알 수 없다. 오히려 그 이후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작용과 파급 효과에 달려 있다. 아무리 높고 화려한 입면을 자랑하는 건축물이라도 사용자의 호응을 얻지 못하면 의미를 완성할 수 없다.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은 랜드마크들의 공통점은 바로 도시와 활발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야깃거리가 되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고, 어떤 측면에서건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지녀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건축과 도시, 이용자 간에 빅뱅(bigbang)이 일어나고 비로소 랜드마크가 탄생한다. 수직에서 수평으로 진화하는 랜드마크 그렇다면 도시와 활발한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랜드마크는 “한 시대의 열망을 보여주는 엑스레이”이기 때문에 시대 변화를 주목해야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랜드마크가 “높이를 통해 20세기의 자본력을 보여주며 기업의 가치와 고층 주거의 매력을 강조하였다면, 이미 고층 건물이 즐비한 현대 도시에서 21세기형 랜드마크는 여백의 공간인 길과 땅에서 시민을 위한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뉴욕의 ‘하이라인’은 20세기처럼 개발 의지를 표현하기보다는 더 많은 이용자가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는 21세기형 랜드마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낡은 발전소 건물을 재생하여 오늘날 영국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미술관이자, 런던 시민이 주말 여가를 보내기 위해 찾는 제1의 명소가 되었다. 뉴욕을 가로지르는 폐선된 열차길 ‘하이라인’은 그동안 뉴욕의 골칫거리였으나 이제는 도심 속의 공원으로 탈바꿈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열차 길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 재생하였다는 것이 큰 특징인데 초기 계획 단계부터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성공적인 랜드마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들은 높이를 뽐내며 위압적인 형태로 시선을 사로잡지 않는다. 다양한 활동을 담아내고 이끌어내기에 적절한 스케일과 동선을 확보한 ‘공유의 장’이다. 공간의 모습도, 공간 창출 과정도 모두 수평적이다. 앞으로는 이렇게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21세기형 열린 랜드마크가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고 이는 도시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랜드마크가 그릴 도시의 새로운 얼굴 이 책은 랜드마크가 된 건축물과 그를 둘러싼 의미를 서술하는 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현재 우리의 도시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것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벌어질 도시에서의 삶에 관한 담론이다. 다시 우리의 도시를 들여다보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DDP는 이미 지어졌고 이제 이것을 잘 활용하는 일만 남았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역시 처음에는 갖은 비판에 시달렸지만 박물관 입구로서의 기능과 지하의 천창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랜드마크의 역사에서 진통 끝에 당당히 살아남은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수많은 비판과 우려를 딛고 에펠탑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어 ‘에펠탑 효과(Eiffel Tower Effect)’라는 말을 만들어냈듯이 우리도 ‘DDP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DDP라는 낯선 그릇에 가로형 랜드마크가 보여준 가능성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DDP와 도시의 얼굴은 달라질 것이다. “랜드마크와 도시의 성공 여부는 단기간의 방문 수치로 판별할 수 없다. 그보다는 랜드마크 주위에서 시민들이 한 번이라도 공유의 장을 체험했는지가 중요하다. 오직 ‘의미 충만한 현상’이 일어났을 때, 그곳은 공유의 장이 되고 비로소 진정한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 '에필로그'에서 시민과 호흡하며 생동하는 지속 가능한 도시는 결코 먼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에서 소개한 다양한 사례들이 어떤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개별 도시를 넘어 세계 속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는지 점검하고, 앞으로 랜드마크에 요구되는 기능이 어떤 것인지 알고 준비하면 그 실마리를 손에 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