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무조건 단순하게(simple) 만드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다. 최신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도 소리 높여 외친다. “우리는 심플한 제품을 원한다!” 그런데 그들에겐 정말 심플함이 필요한 걸까? 결코 아니다. 사람들은 그토록 원하던 ‘심플한 제품’을 만나는 순간이 오면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능이 빠졌다고 불평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심플한 제품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인지과학의 대부이자 [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이 시대 최고의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도널드 노먼은 이제 단순함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한다. 오히려 적절한 복잡함을 지닌 제품이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것은 물론, 사용하면서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적 베스트셀러이자 노먼 교수의 전작인 《감성 디자인Emotional Design》을 뛰어넘는 이 책은 복잡하지만 혼잡하지는 않은, 즉 적절한 복잡함을 지닌 인간 중심의 제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심플함을 외치면서 결국엔 복잡한 제품을 선택하는 사용자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지 알려준다.
왜 우리는 단순함을 외치면서 복잡한 것을 선택할까?
사람들은 흔히 세상이 너무 복잡하니 단순한 것, 단순한 제품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매장에 단순한 제품과 복잡한 제품이 진열돼 있으면 사람들은 항상 복잡한 제품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세탁기를 생각해보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가 사용하던 세탁기에는 ‘세탁-헹굼-탈수’라는 기본적이고 간단한 기능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세탁을 하려면 먼저 세탁물이 울인지 이불인지, 아니면 일반 세탁물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다음엔 세탁 시간과 헹굼 횟수, 그리고 탈수의 강도를 조절하고, 물의 온도를 설정한다. 원한다면 건조 기능까지 추가할 수 있다. 또한 세탁 기능과는 별개로 세탁물에 베인 냄새를 없애주는 에어워시 기능까지 갖췄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세탁기의 기능은 점점 많아졌고, 우리는 이 모든 기능을 가진 세탁기를 원한다. 결국 수많은 버튼과 선택목록을 가진 세탁기를 가장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해 구매한다.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가전제품인 김치냉장고는 어떠한가? 처음 김치냉장고라는 것이 출시됐을 때 사람들은 김치 전용 냉장고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혁신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점점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었다. 지금은 칸마다 다른 냉장방식으로 김치의 익은 정도를 조절하는 것은 기본이며, 채소와 육류까지 최적의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 기술까지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기 숙성을 위해 히터까지 내장된 제품도 있다. 김치만 따로 보관하던 것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김치를 보관하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다른 음식까지 신선도를 유지시켜주는 복잡한 제품이 되었다.
지금 세탁-헹굼-탈수만 가능한 세탁기나 단순히 김치만 보관할 수 있는 김치냉장고를 사는 사람은 없다. 하나라도 더 많은 버튼과 온갖 기능을 가진 제품을 갖고 싶어한다. 결국 우리는 단순함을 외치지만 복잡한 것을 선택한다. 다시 말해 단순해 보이는 제품은 기능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복잡하고 사람들의 삶이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가 인간의 삶을 반영하길 원한 결과다. 우리 삶에 있어서 복잡성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복잡함이란 말이 편하게만 들리진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껏 불필요한, 아니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라고 여겼던 복잡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할까?
복잡함(Complexity)과 혼잡함(Complicated)을 구별하라!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는 복잡함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복잡성과 혼잡성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둘의 차이는 한마디로 이해의 여부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복잡(complex)한 것이고, 이해할 수 없고 혼란스럽다면 혼잡(complicated)한 것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 조종실은 보통 사람에겐 혼란스러운 것이지만, 조종사에게는 복잡한 것이다. 이러한 복잡함과 혼란스러움의 차이는 지식과 이해 여부에서 비롯된다. 녹음기 같은 제품이나 비행기 조종실의 경우 사용법을 이해하고 나면 간단해 보인다. 이를 디자인과 연결하면 나쁜 디자인은 이해하기 어려워 사용할 때마다 방법을 터득해야 하지만, 좋은 디자인은 한 번 사용해보는 것으로 모든 게 인지되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외양이 심플한 디자인을 좋은 제품이라 여기는 데 있다. 하지만 겉보기에 심플해 보이는 제품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수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사용하기 쉬울 거란 생각과 달리 단순함이란 껍데기 속에 보이지 않는 복잡함을 숨겼기 때문이다. 오히려 복잡해 보이는 제품이야말로 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이해만 있으면 즐겁게 사용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제품에는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복잡한 정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자인에 복잡함이 없으면 나머지 부분인 작동방식으로 복잡함이 옮겨간다. 이런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는 심플해 보이는 디자인과 달리 복잡한 것에 짜증과 혼란을 느낀다. 반대로 얼핏 봤을 때는 복잡해 보이는 제품은 작동방식에는 별다른 복잡함이 없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사용하며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금세 이해가 된 제품은 사용할수록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구글과 네이버의 메인화면을 비교해보자. 디자인은 극과 극이다. 구글은 검색만을 위한 심플한 디자인을, 네이버는 탐색을 목적으로 한 복잡한 디자인을 가졌다. 구글은 검색 외의 다른 작업을 하려고 하면 계속해서 ‘more’ 버튼을 눌러 여러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은 매번 새롭기 때문에 익숙해지기도 어렵다. 네이버는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로 이루어진 복잡한 화면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정보까지 다가가는 과정이 몇 번의 클릭만으로 해결돼 구글에 비해 수월하다. 우리나라에서 구글이 주목 받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제 심플한 디자인이 각광받는 시대는 지났다. 그보다는 심플한 작동방식이 더욱 중요하다. 편하게 사용하며, 익숙해졌을 때는 다양성을 제공하는 적절한 복잡함을 가진 디자인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수를 불러일으키지만 복잡함은 오히려 사람들이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는 것을 돕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잡함이 이해되는 순간, 그것은 즐거움으로 바뀐다.
결국 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적절한 복잡함이다!
그렇다면 복잡함을 어떻게 다스려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제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복잡함의 중심에는 기획자와 디자이너, 그리고 사용자가 있다. 기획자와 디자이너의 역할은 혼란스러움을 예방하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것도 이면에는 복잡함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도널드 노먼 교수는 이때 사용자에게 “괜찮아. 곧 익숙해질 거야”라고 말하며 혼란스러움을 방치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사람들은 단순한 것은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너무 복잡한 것은 혼란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익숙해지고 잘 다루게 될수록 복잡한 것을 원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끔 작동방식을 단순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숙련자들이 지루해하지 않는 즐거운 경험을 주는 것이 기획자와 디자이너의 몫이다. 적절한 복잡함을 바탕으로 사용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 중심 디자인이고 좋은 제품이다.
반대로 나쁜 디자인은 사용자가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의도한 대로 자연스럽게 따르지 못하고 표시를 통해 이해의 부족함을 채워야 하는 제품이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출입문에 ‘미시오’나 ‘당기시오’와 같은 문구를 붙여둔 경우가 그것이다. 좋은 디자인에는 이런 표시가 필요하지 않다. 나쁜 디자인을 만드는 또 다른 원인은 바로 마케팅이다. 제품이 출시되면 마케터들은 자사의 제품에 추가된 새로운 기능을 치열하게 경쟁하며 홍보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사용자에게 필요한 기능 외에도 부수적인 기능이 끝도 없이 추가된다. 기능이 많아질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