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을 그린 장편 만화
평화 발자국 열아홉 번째 책은 ‘세계 위안부의 날’을 기리며 만든 책 《풀》이다.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8월 14일, 또 다른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만화가 출간되었다.
장편 만화 《풀》은 만화가 김금숙이 ‘위안부’ 피해 이옥선 할머니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렸다. 그동안 영화나 소설, 그림책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한 작품들이 많지만, 만화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풀》이 처음이다. 김금숙 작가는 전쟁을 겪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곳에서 인권을 유린당했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피해자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를 오롯이 그려냈다.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은 그것 자체로 살아 있는 역사이며, 우리가 귀 기울여 듣고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이다.
김금숙 작가가 ‘위안부’ 문제를 만화로 그린 것은 《풀》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앙굴렘 만화축제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개최한 〈지지 않는 꽃〉 전시에 단편 만화 〈비밀〉을 그렸다. 단편 작업을 한 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이야기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장편 만화 《풀》을 기획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폭력을 과장해 가해자에 대한 미움을 극대화 시키지 않았고, 할머니의 감정과 심리 상태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작가의 연출에 따라 《풀》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한 편의 영화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흑과 백의 단순함으로 극대화시킨 먹그림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증언에 힘을 실어준다.
세계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인권 문제, 프랑스에서도 출간
김금숙 작가는 본문 가운데 10장인 단편 만화 〈미자 언니〉로 제14회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명확한 주제의식으로 역사와 보편적 인권 문제를 말하고 있어, 국내 출판 전 프랑스 델쿠르(D?lcourt) 출판사에 판권을 수출해, 프랑스어판 출간도 앞두고 있다.
책 뒤에 ‘위안부’ 문제 전문가인 윤명숙 교수의 〈만화 《풀》로 살펴보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덧붙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윤명숙 교수는 ‘위안부’ 문제가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 문제임과 더불어 우리 안의 가부장적 성차별 의식을 지적하는 인권 문제라는 점을 밝힌다.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지만 스러지고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풀’처럼 희망을 갖고 우리 모두가 ‘위안부’ 문제를 끈질기게 이야기하고 대면하기를 당부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까닭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 땅은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 있다. 북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일본의 자위대 재건,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한반도는 가장 위험한 땅이 되고 있다. 이 땅에 이러한 전쟁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1992년 1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집회를 열어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 당시 일본군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리 높여 외치는 목소리가 있다. 기억하기조차 힘들었을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이는 용기는 역사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이 땅에 당신이 겪은 피해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하고, 전쟁에 평화로 맞서자고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