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과 탈식민의 격동이 빚어낸 20세기 세계사를 새롭게 읽다
『냉전과 탈식민의 세계사』는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초반부의 3개 장은 20세기 전반까지 제국과 식민주의에 관련한 새로운 담론과 현상이 나타나는 양상을 분석한다.
먼저 하아랑의 글 「자유, 진보, 제국: 율리시스 S. 그랜트의 월드 투어로 본 미국의 초상」은 제국으로서 미국이 지니는 역설의 기원을 19세기 중반 남북전쟁 직후의 세계사적 맥락에서 관찰한다. 이 글은 특히 1870년대 미국의 전직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의 월드 투어에 대한 세계 각지의 지도자와 인민들의 다양한 반응을 분석하면서, 이 시기 미국이 자유와 진보, 제국이라는 모순적인 이미지를 한꺼번에 담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사람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미국을 자유의 수호자로 찬양하거나, 눈부신 진보를 성취한 성공적 독립국의 모델로 추종했고, 때로는 위협적이거나 또는 모방해야 할 제국으로 간주했다.
그랜트 역시 타국의 눈에 비친 미국의 초상을 바라보면서 향후 미국이 세계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 인식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다름 아닌 자유와 진보를 외치는 제국, 이른바 “제국주의에 맞서는 제국”이라는 형용모순이었다.
두 번째, 정재현의 「‘검은 치욕’: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 지역 점령에 투입된 프랑스군 식민지 병사들을 둘러싼 인종과 젠더의 담론」은 제국주의의 절정기였던 1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인종과 젠더, 민족이 서로 얽히는 과정을 추적한다. 전쟁 후 독일 점령에 투입된 프랑스 식민지 출신 병사들은 독일 여성을 성폭행한다는 비난을 받았고, 이에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물론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여성운동가를 포함한 유럽 각지의 세력이 순수한 “백인종 여성”에게 가해진 야만적 “검은 치욕”에 항의했다. 민족, 평화, 여성, 국제 연대, 반제국주의 등 다양한 이상이 표출되었으나 이 모든 외침의 근저에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백인 우위의 인종주의가 깔려 있었다. 이를 통해 정재현은 제국과 국민국가가 만났을 때 젠더와 인종 담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 준다. 인종주의는 여성의 성을 규율하는 데 동원되었고, 반대로 가부장제는 흑인의 사악함과 열등함을 증명하는 수사를 제공했다.
이 책의 세 번째 장은 신동경의 「영 제국 경영의 마지막 통치 카드: ‘식민지 개발 및 복지법’, 1929-1945」이다. 이 글은 제국의 황혼기 동안 영국이 제안했던 일련의 “식민지 개발 및 복지법”을 검토하면서, 제국의 “마지막 통치 카드”가 영국의 탈식민 과정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1929년을 시작으로 영국은 식민지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형태의 “위로부터의 개발” 사업을 벌였다. 이는 물론 이기적인 의도에서 출발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국과 식민지 사이의 지속적인 교류를 유지하는 발판을 놓았다. 이를 통해 영국은 제국 해체 이후 영연방 성립이라는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탈식민 과정을 걸을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 신동경은 “탈식민화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는 대신, 그 역설적 과정이 보여 준 현실주의와 그것이 만들어 낸 실질적 결과물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네 번째 장인 노경덕의 「냉전사와 소련 연구」는 소련사 전문가의 관점에서 최신 냉전사 연구 동향을 큰 틀에서 관찰함으로써 『냉전과 탈식민의 세계사』의 전체적인 구조에서 중심축을 이룬다. 노경덕은 최근 국제학계의 소련 냉전사 연구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우선 냉전의 종식 이후 구소련 자료가 개방됨으로써 문서고 중심의 실증 연구를 통해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던 여러 논쟁점을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흐름이 있다. 다음으로, 새로운 냉전사 연구는 냉전을 단순한 미국과 소련 사이의 경쟁으로 파악하는 대신, 과거 주변부로 취급되었던 제3세계 국가들의 세계사적 역할에 주의를 기울인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소련 냉전사 연구는 냉전을 문화적 국제 관계로 파악하고,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여러 국가 사이의 문화 경쟁과 교류에 초점을 맞춘다. 노경덕이 잘 논의하고 있듯이, 이 세 가지 연구 경향은 모두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서고, 제3세계, 문화는 냉전과 탈식민의 교차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들을 제공한다.
이어지는 3개의 장에서는 시선을 우리 내부로 돌려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 한국이 냉전과 탈식민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관찰한다.
다섯 번째 장인 「북한의 한국전쟁 계획 수립과 소련의 역할」에서 정병준은 풍성한 사료를 동원해 한국전쟁의 준비와 전개에 있어서 북한과 소련의 역할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이 문제에 관해 정병준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해석들을 제시한다. 첫째, 한국전쟁은 시종일관 김일성과 박헌영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둘째, 북한 지도부는 주도권을 지녔지만, 한국전쟁의 국제적 성격으로 인해 최종 결정권은 모스크바에 있었다. 셋째, 최종 결정권자로서 스탈린은 김일성의 개전 허가 요구를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넷째, 스탈린이 개전 전에 제시했던 “도발 받은 정의의 반공격전” 개념은 북한의 전쟁 수행에 있어서 기초를 이루었다. 다섯째, 스탈린은 미국과의 충돌 가능성을 우려했고, 따라서 그의 결정권 행사는 소극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스탈린의 태도로 인해 소련은 전쟁 발발 이후 결정권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한국전쟁은 북한 지도부의 주도와 스탈린의 결정으로 시작되었으나, 소련의 방어적 태도로 인해 향후 북한은 소련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주성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여섯 번째 장은 데이비드 챙 창(David Cheng Chang)의 「한국전쟁 정전 협상과 미국의 포로 ‘자원송환(自願送還)’ 정책」이다. 이 글에서 창은 한국전쟁이 미국에서 왜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 되었는지 질문한 뒤, 그 답을 전쟁 포로(POW)에 대한 “자원송환(voluntary repatriation)” 정책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두 가지 양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950년 6월 개전부터 대략 1년의 기간이 “영토전쟁”에 해당한다면, 1951년 7월 정전 협상이 시작된 뒤 이어진 2년간의 후반부는 “포로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포로 송환 문제를 놓고, 중국과 북한 측이 “전원교환”을 요구했던 반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 대표단은 자원송환, 즉 포로에게 그들의 의사에 따른 망명 기회를 제공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 원칙은 명백히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었고, 정전 협상을 교착상태로 빠뜨렸다. 그런데도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도덕의 기치를 내세워 자원송환의 원칙을 고수했다. 그 결과 15개월이 넘는 전쟁의 후반부 동안 양측의 영토 변화는 거의 없었고, 수많은 인명 피해만 남겼을 뿐이었다.
일곱 번째 장인 김도민의 「1950년대 세계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남한에서의 젠더적 재현 양상」은 냉전이 시작되던 시기 남한의 시인들이 세계 각지의 탈식민 운동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추적한다. 그에 따르면, 당시 남한은 자유 진영의 언론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고, 그 결과 그곳에서 베트남혁명, 알제리혁명, 이집트혁명, 헝가리혁명 등에 관한 정보는 냉전의 프리즘을 통해 굴절된 채로 수용되었다. 여기에 더해 젠더 차별적 시각이 부각되었는데, 남한의 시인들은 능동적인 여성 투사들을 연약하고 수동적인 소녀로 형상화했다. 이 젠더적 재현에서 냉전과 탈식민은 모두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했다. 냉전의 맥락에서 공산주의의 잔혹함이 강조되고, 탈식민의 맥락에서 반제국주의의 외침이 커질수록, 남한 문인들의 마음속에서 여성과 남성은 젠더 차별적 질서에 따라 더욱 선명하게 구획되었던 것이다. 결국, 냉전 초기 세계 민족해방운동을 다루는 남한의 시는 “탈식민-냉전-젠더의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냉전과 탈식민의 세계사』의 마지막 3개 장에서는 시야를 다시 외부로 돌려 세계 여러 지역에서 냉전과 탈식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