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박노자
3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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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의 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 김동춘(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머리말 국가의 실체를 직시한다 1 국가는 무엇인가 ‘국살’은 왜 은폐되고 잊혀지는가 국가는 누구의 편인가 ‘가난뱅이 타자’ 사냥하는 경찰 잔혹사 백성을 길들이기 위한 극악한 사형제도 국가가 원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학교 전쟁하는 기계, 국가 2 전쟁에 대한 거짓말 전쟁, 합법적 살인과 성폭행의 제전 오래된 거짓말, 계급국가의 정의로운 전쟁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병법의 거짓말 국제법 천 마디가 대포 한 문에 진다 자본가에게 전쟁은 ‘축복’ 기관총이 열어젖힌 ‘학살의 시대’ 자본주의는 끝없이 피 흘린다 한국의 진보는 진정 전쟁에 반대하는가 3부 종교, 전쟁, 국가의 삼각관계 기독교는 어떻게 전쟁과 친해졌나 기독교, 전쟁 전도의 역사 ‘악의 축’의 탄생, 한국 기독교와 반공주의 불교는 어떻게 국가폭력에 협력해왔나 백인이여, 불교가 그렇게 평화적인가 4부 국민은 어떻게 길들여지는가 전쟁영화, 남자와 조국을 노래하다 영웅의 다른 이름, 주검 더미 위의 출세자 살인의 낭만에 도취된 국민들 적을 살해하고 초인으로 거듭나라 “군인들이여, 적은 인간이 아니다” 근대 일본의 치명적 발명품, 무사도 일제의 잔혹한 유산, 자폭 이데올로기 서바이벌 게임과 합숙, 전쟁 같은 자본주의 5부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 국기에 대한 경애 여호와의 증인, 병영국가의 ‘동네북’ 국가적 살인에 대한 저항의 역사 참고문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촛불집회의 시위대에 한파에도 굴하지 않고 물대포를 쏘는 국가’,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국민들을 테러리스트로 여기고 살인적 진압을 하는 국가’.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는 과연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걸까? 상식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국가에 대해 드는 의심을 박노자 특유의 삐딱한 시선으로 풀어놓는다. 늘 평화를 이야기하고 원수를 사랑하라 이야기하는 종교조차 왜 국가의 폭력에, 전쟁에 눈 감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은연중에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례와 이에 대한 저자의 분석을 읽다보면 국가-전쟁-종교의 삼각관계와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본주의적 질서에, 국가 권력의 본질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된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후 10년, 박노자가 말하는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경제위기, 일자리 문제 등 한 개인이 풀어내기 힘든 문제들이 주위에 산적해 있고, 마침 총선과 대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를 ‘복지국가’로 개조하여 우리 사회가 봉착한 문제들을 ‘국가’를 통해 해결해보자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이에 부응하여 보수적인 정당들마저 복지를 늘리자고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시민사회에서는 야권연대를 통해 현재의 집권세력을 심판하고, 그들이 더 이상 영향력을 넓히지 못하게 하자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야권에 권력을 넘겨주고, 그들이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들이 해결될 것인가? 이 책의 출발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 국가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국적(또는 미국 국적)의 약탈적 자본과 이들이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생계파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길 원한다. 문제는, 노무현 정권이 입안·추진하고 이명박 정권이 비준·발효한 한미FTA의 사례에서 보듯이, 극우냐 자유주의 우파냐의 구별 없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주류 정치세력은 하나같이 신자유주의적인 ‘자유무역’의 장려에 ‘국가’의 힘을 모두 쏟아부어왔다는 점이다. 우리는 국가에 ‘시장으로부터의 보호’를 주문하고 싶지만, 국가야말로 시장주의적 민생파괴의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자세히 논하겠지만, 지배계급의 ‘사무총국’과 같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보면 이는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일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는 시장, 즉 대자본의 고도의 도구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이상, 자본의 도구가 될 집권 정치인들이 어느 정당 출신이냐보다는, 자본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인 민중운동의 발전 상태가 어떤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저자 머리말 중에서) 국가는 누구의 편인가 국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국가의 본질을 살펴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막스 베버는 일찍이 국가란 해당 사회의 유일한 합법적 폭력기구라 했다. 그렇다면 그 폭력이 누구를 향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국가의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국가폭력이 국가의 본질과 꼭 연결돼 있지는 않은 ‘공권력의 남용’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국가폭력이야말로 국가의 계급적 본질을 여실하게 드러낸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계급 관계라는 게 평소에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국가가 폭력 내지 살인을 하는 ‘비정상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시 상황에서 대다수가 중산계층 출신인 장교들과 거의 전부가 하층민 출신인 졸병들의 생존율을 비교해보면 하층민이 총알받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국가의 경찰력이 기업주의 폭력 등에는 ‘솜방망이 대응’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급진운동이나 노동운동 등 조금이라도 ‘반체제적’ 냄새가 나는 운동에 대해서는 툭하면 탄압적 태도로 맞선다. 노동자 파업에 초강경 대응하는 남한 경찰은, 의사나 약사 등 중산층의 집단적인 의사표현에는 절대 폭력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대테러부대를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모습은 이미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0년 롯데호텔 파업에서 목격한 바 있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강경진압은 이어졌고, 농민대회에서 경찰의 강경진압이 원인이 되어 시위에 참여한 농민이 목숨을 잃은 바도 있다. 현 정부에서 벌어진 용산 참사나 쌍용자동차 노조에 대한 강제진압 등은 이 정부 들어 갑자기 생긴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가의 계급적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전쟁하는 기계, 국가 1장에서 국가의 계급적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 저자는 2장을 통해서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전개한다. 전쟁은 국가의 폭력성이 가장 분명하게 들어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2장의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전쟁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며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건 사실상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지배층의 치부(致富)와 무기 개발을 중심으로 한 국가 주도의 기술발전 촉진, 그리고 각종 사회·경제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착취-피착취 관계의 일시적인 순화라는 효과야말로 전쟁을 지탱해온 가장 강력한 근거들이고,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은 이 전쟁이 지난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 오면서 생겨난 논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십자군 운동을 비롯하여 최근 미국의 중동 지역에 대한 침공에서까지 확인할 수 있듯이 늘 선하고 개화된 ‘우리’가 악하고 무지한 ‘적’을 공격하는 게 ‘정의로운’ 전쟁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명분이라 해도 그 명분으로 약한 나라를 구하는 경우는 없었다. 개화기 조선의 식자층에서 큰 주목을 받은 <만국공법>은 국제법적 질서가 조선의 독립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불어넣어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일제에의 강제 병합이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국제법적 질서의 무기력함은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모습에서도 재확인된다. 가자 지구에 구호품을 싣고 가던 비정부기구의 구호선이 이스라엘에 의해 나포되고 활동가 9명이 살해당했음에도, 미국은 단지 ‘유감’만 표명했을 뿐이고 유엔은 강경하게 비난하긴 했지만 평소의 무력함을 벗어나진 못했다. 국제법도 결국엔 ‘희망사항’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당신의 편인가 이 책의 또 하나 특징은 국가, 전쟁과 함께 종교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3장에서는 불교와 기독교를 중심으로 애당초 평화주의적 요소가 강했던 이들 종교가 어떻게 군사주의와 결탁하게 되었는가를 살피고 있다. 저자의 눈에 의아하게 보이는 것은 군목, 군승 등 군의 사기진작을 담당하고 있는 종교의 모습이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마태복음 26:52)는 말씀을 받드는 기독교의 초기 모습을 보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정도의 비타협적 평화주의를 지향한다. 전쟁을 멈출 줄 모르는 강대국 로마에 반전을 선언했다가 순교한 이도 많았다. 입영을 거부해 순교하고, 입영했다가도 참전을 거부하고 제대를 요구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지금껏 이런 교리를 받드는 곳은 ‘여호와의 증인’ 등 이단시되는 소수 종파뿐이다.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 공인된 이후 조금씩 무력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면서 결국 ‘정의로운 전쟁’의 논리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전쟁을 멀리하고 평화를 지향했던 기독교가 어느새 국가가 벌이는 살인의 장(場)인 전쟁을 지원하게 되고, 그 살육의 장에서 흔들리는 개개인에게 힘을 불어넣는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야구선수 출신으로 인기 높은 복음 전도자가 된 미국의 빌리 선데이는 “기독교와 애국은 같은 것이고, 비국민과 지옥도 같은 말이다”, “이 전쟁은 천국과 지옥 사이의 성전이다” 등의 말을 즐겨하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독려하기도 했다. 이는 불교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 사례는 주류 불교와 천황제 국가가 혼연일체를 이룬 1870년대 이후 일본이다. “명예의 전사를 당하게 되면 틀림없이 정토왕생한다”는 내용으로 젊은이들의 참전을 독려하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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