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들판의 꿈

홍은전 · 에세이
3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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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프롤로그 1교시 배움 들판 위의 학교 거의 모든 것의 시작 멀리 볼 사람이 필요하다 홀로서기 달려라 봉고 위대한 첫걸음 저항의 가치로 살아남기 위하여 2교시 투쟁 인간답게 살고 싶다 흔들리며 피는 꽃 해방은 우리 자신의 행동으로 어떤 하루 꿈꾸는 현수막 활동보조서비스를 제도화하라 차별에 저항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3교시 일상 길바닥에 나앉아도 수업은 계속된다 대학로에 노들이 있다 판을 벌이다 복도가 불편해 그들이 온다 천천히, 즐겁게, 함께 4교시 다시, 일상 타전 분열의 추억 ‘9’를 위한 변명 인권 강사 K는 힘이 세다 당신에게 이 사회는 언제나 참사였구나 2014년 겨울 광화문에서 25만 원의 노역일기 5교시 뒤풀이 우리는 왜 노들에 간도 쓸개도 다 빼줄 듯이 굴었나 에필로그 추천의 글 장일호 추천의 글 이계삼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노들’(노들장애인야학)은 대학로에 있는 장애 성인들의 교육 공간으로, 차별과 억압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 인간 존엄성과 평등이 넘쳐나는 노란들판을 꿈꿉니다. 배움에 답이 있고 투쟁만이 살 길임을 믿기에 적응보다 저항을 공부합니다.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자”를 교훈(校訓)으로 삼고 장애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들의 배움, 그들의 투쟁, 그들의 일상에 대한 정직한 기록입니다. “야학 활동의 마지막 해, 나는 노들의 20년 역사를 정리하기로 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 남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픈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그 일은 나에게 예상치 못했던 떨림을 선물했는데, 말하자면 저항하는 자들의 경이에 눈뜬 것이었다.” ― 홍은전의 말 1 “우리가 이루어낸 것들은 실로 거대한 혁명이었으나 그것을 가능케 한 비밀은 그저 수많은 하루하루였다. 떨림과 다짐과 믿음과 약속을 공유하는 관계를 따라 불씨가 지켜지고 불꽃으로 터져 나오며, 다시 한 사람 한 사람의 불길로 들불처럼 번져가는 것이다. 야학의 20년사 정리가 마무리되었을 때, 나는 이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마치 어느 봄 여린 새싹이 언 땅을 뚫고 나오는 경이에 눈뜬 후 자연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너무 흔해서 귀한 줄 몰랐던 ‘싸우는 자’들의 비밀을 보게 된 나는 이 세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 홍은전의 말 2 여섯 장면을 통해 본 <노란들판의 꿈> # 장면 1 잠시 후 다음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신호음이 역내에 울려 퍼졌다. 지켜보던 이들의 심장은 세차게 벌렁거렸고, 누군가는 벌써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점거한 곳은 열차가 평상시에 정차하는 곳보다 조금 앞선 지점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열차에 치일 염려는 없었다. 그리고 점거가 시작되었을 때 한 사람이 역무실로 달려가 이 사실을 전달했기 때문에 다음 지하철의 기관사도 이미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 곧이어 열차가 역사 안으로 진입했다. 열차는 경적을 울리며 선로 위에 버티고 있는 사람들 앞에 서서히 멈춰 섰다.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두운 선로에 드러누워 있는 그들을 비추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플랫폼 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선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날 지하철 1호선이 30분간 운행을 멈추었고 32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그리고 …… 30년 동안 방구석에 갇혀 있던 장애인들의 분노와 절망도 세상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마치 낮달 같은 존재들이었다. 존재하고 있으나 보이지 않았던 삶. 뒷방에 밀쳐지고 산골짜기에 버려졌던 사람들. 차가운 레일 위에 누워 자신들이 멈춰 세운 지하철을 바라보는 그들의 머릿속에는 지난 시절의 서러웠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엄마 등에 업혀 찾아간 학교에서 입학을 거부당하고 돌아오던 길, 동생들이 모두 학교에 간 후 혼자 남았던 무수한 아침, 정규방송이 끝났음을 알리는 TV의 소음으로 시작되었던 유년의 오후,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 스스로 들어간 시설에서 숨죽여 울었던 밤, 초대받지 못한 언니의 결혼식 …… 손을 뻗어 닿는 곳에 죽음이 있었다면 미련 없이 놓아버렸을 형벌 같은 삶이었다. 그들이 목놓아 외쳤다. “장애인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이 사건은 이후 장애인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었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야만적 속도에 제동을 걸어 사회를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바꾸어낸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결정적 불씨가 되었다. TV에서 ‘불쌍한’ 장애인을 보면서는 혀를 차고 지갑을 열던 사람들이 눈앞에서 자신의 길을 막고 그 길을 함께 가자고 외치는 장애인들에게는 ‘병신’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때 박경석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좋습니다, 우리는 병신입니다. 그러나 당당한 병신으로 살고 싶습니다. 30년 동안 집구석에서 갇혀 지냈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주더니, 자신들이 당장 30분 늦으니까 저렇게 욕을 하는군요. 이제 그 병신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줍시다. 당당한 병신으로 살아봅시다!” # 장면 2 “형은 뭐하고 싶어요?” 한 번도 흐드러지게 피어 보지 못한 청춘들이었으므로 그것은 씹어도씹어도 씹을 것이 나오는 그런 안주거리였다. “나? 일하고 싶어.” “음 …… 무슨 일이요” “아무거나. 할 수 있는 거……” 술자리는 금세 “나도! 나도!”를 외치는 학생들의 호응으로 소란스러워졌지만 그걸 듣는 교사들은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술자리는 무겁게 가라앉곤 했다. 상근 활동가 이알찬은 학생들의 이런 고민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혔다. 그는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 일하는 기쁨을 최고로 치는 사람이었다. 학생들의 욕구가 자신의 것보다 가벼울 리 없는데 그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쓸모없는 인간’ 혹은 ‘가족의 짐’이라는 자괴감에 빠져 살고 있는 학생들을 접할 때마다 그는 꼭 자기가 그렇게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환경만 갖추어진다면 당장이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학생들이 야학을 졸업하고도 이후의 삶을 꿈꿀 수 있는 공간, 노동을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장애인 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자립 공장을 만들고 싶었다. (……) 이알찬과 퇴임한 교사들, 그리고 야학 학생 몇 명이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 배움을 주고받던 관계와 직장 동료가 되어 함께 일을 하는 관계는 몹시 달랐다. 수업은 쉬웠지만 함께 일하기는 어려웠다. 현수막 주문을 받기로 한 노동자 J는 길이를 재는 단위인 미터(m)와 센티미터(cm)를 변환할 줄 몰랐다. 출력기를 다루어야 하는 노동자 Y는 기계가 표시하는 영어를 읽지 못했다. 버려지는 현수막이 속출했다. 그러나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학교가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고 야학이 그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을! 작업 지시서를 앞에 두고 즉석에서 수학 수업이 벌어지고 출력기 옆에서 알파벳 특강이 이루어졌다. 배움의 속도는 마음과 달리 속 터지게 더뎠다. (……) ‘이알찬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빴다. “장애인의 속도를 인정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던 그들이었지만 정작 자신들은 기계가 되고 총알이 되어야 했던 나날이었다. 늦은 밤 현수막을 ‘디자인’해서 ‘출력’을 걸어놓은 후, 기계 아래서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자다가, 출력이 끝나면 그것을 ‘마감’하여, 새벽이 되면 사다리를 들고 ‘시공’을 하러 나갔다. 수업 마치고 소주잔을 부딪치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장애인도 일하고 싶다’는 정당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인간은 경쟁과 효율의 논리가 아니라 협력과 연대의 정신으로도 살 수 있고, 또 살아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노란들판은 살아남았다. # 장면 3 보통 ‘일상’이라는 말은 ‘흘러가는 시간 속의 그렇고 그런 날들 중 하루’를 뜻하지만 노들에서 말하는 일상은 그 의미가 전혀 달랐다. 중증장애인에게 일상이란 가져본 적 없는 어떤 하루들, 그러니까 그들의 빼앗긴 인생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외출을 하고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 그저 평범한 일상이지만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제 몸을 던져 싸워야 겨우 얻을까 말까 한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이었다. 노들의 가장 중요한 투쟁은 바로 이 일상을 만들고 지키는 일이었다. 이 작고 사소한 일상이 우리들의 인생을 이끌고 나간다. 노들의 일상을 이끌었던 것은 바로 수업이었다. 수업이 우리를 만나게 했고 거기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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