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평가

토니 주트
6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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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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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
2010년 타계한 저명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재평가>.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여러 잡지에 발표된 주트의 글을 모은 것인데, 모든 글은 장문의 서평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서로 개연성 없는 서평을 수정 없이 모았다는 점에서, 또 12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집필이 이뤄졌음을 감안할 때, 이 책은 하나의 놀라움 그 자체다. 각각의 글에 배인 대가다운 안목과 지식 또한 놀랍지만, 이 방대하고도 개별적인 주제들을 하나의 연관성으로 묶어 내는 흔들림 없는 지성의 실재가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이 일관되게 전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은 명확하다. 저자는 누차 말한다. "우리가 과거를 너무 쉽게 잊어 과거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고. 나아가 우리가 "과거를 배워야 할 흥미로운 무엇이 없는 하찮은 것으로 치부한다"며 개탄한다. 20세기가 우리에게 남긴 감상은 재앙에 가깝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념 갈등, 대공황과 두 번의 대전, 인종 청소와 대학살, 공산주의의 몰락 같은 것들이 20세기와 함께 있었다. 이 유례없는 재난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가 열리는 즈음, 토니 주트는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이 과거를 보는 관점에 주목했다. 주트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대체로 기억하기보다는 잊고, 야만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빠졌다." 그러나 주트는 다시 과거가 현재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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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목차

감사의 말 머리말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 해제 토니 주트: 탈냉전 시대의 역사가 1부 어둠의 심장 1장 아서 케스틀러, 지식인의 전형 2장 프리모 레비의 기본적인 진실 3장 마네스 슈페르버의 유대인의 유럽 4장 해나 아렌트와 악 2부 지적 참여의 정치학 5장 알베르 카뮈: ‘가장 훌륭한 프랑스인’ 6장 고심의 역작: 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7장 에릭 홉스봄과 공산주의의 낭만 8장 그 모든 것에 작별을?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와 마르크스주의의 유산 9장 사상의 교황? 요한네스 파울루스 2세와 현대 세계 10장 에드워드 사이드: 뿌리 없는 세계주의자 3부 이행기에 놓친 것들: 장소들과 기억들 11장 대재앙: 프랑스의 몰락, 1940 12장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랑스와 프랑스의 과거 13장 마당의 땅 신령: 토니 블레어와 영국의 ‘유산’ 14장 국가 없는 국가: 왜 벨기에가 중요한가? 15장 역사와 유럽 사이에 선 루마니아 16장 사악한 승리: 이스라엘의 6일 전쟁 17장 성장하지 못하는 나라 4부 미국의 (반)세기 18장 미국의 비극? 휘태커 체임버스 사건 19장 위기: 케네디, 흐루쇼프, 쿠바 20장 환상가: 헨리 키신저와 미국의 외교 정책 21장 누구의 이야기인가? 냉전 회고 22장 양들의 침묵: 미국 자유주의의 이상한 죽음에 관하여 23장 좋은 사회: 유럽 대 미국 결어 부활한 사회 문제 주 역자후기 찾아보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그는 이미 우리가 잊은 교훈이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지 말하려 한다. _포브스 20세기를 돌아보는 일이 왜 중요한가 2010년 타계한 저명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재평가REAPPRAISALS』(2008)가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여러 잡지에 발표된 주트의 글을 모은 것인데, 모든 글은 장문의 서평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서로 개연성 없는 서평을 수정 없이 모았다는 점에서, 또 12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집필이 이뤄졌음을 감안할 때, 이 책은 하나의 놀라움 그 자체다. 각각의 글에 배인 대가다운 안목과 지식 또한 놀랍지만, 이 방대하고도 개별적인 주제들을 하나의 연관성으로 묶어 내는 흔들림 없는 지성의 실재가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이 일관되게 전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은 명확하다. 저자는 누차 말한다. “우리가 과거를 너무 쉽게 잊어 과거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고. 나아가 우리가 “과거를 배워야 할 흥미로운 무엇이 없는 하찮은 것으로 치부한다”며 개탄한다. 20세기가 우리에게 남긴 감상은 재앙에 가깝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념 갈등, 대공황과 두 번의 대전, 인종 청소와 대학살, 그리고 공산주의의 몰락 같은 것들이 20세기와 함께 있었다. 이 유례없는 재난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가 열리는 즈음, 토니 주트는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이 과거를 보는 관점에 주목했다. 주트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대체로 기억하기보다는 잊고, 야만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빠졌다.” 그러나 주트는 다시 과거가 현재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세계에 이끌렸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프랑스 혁명은 18세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개벽’이었고, 혁명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 분명히 달랐다. 그러나 혁명은 계몽사상의 한 귀결로 평가되었고, 18세기의 유산은 뒤이은 한 세기의 정치적 이념들과 사회적 강령들의 당연한 원천이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1918년 이후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이 결코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 인정했지만 어디서든지 전후 세계가 의당 갖추어야 할 특정한 형태를 생각하고 논의할 때는 19세기의 경험과 사상이 드리운 긴 그림자 속에 젖어 있었다. “신고전파 경제학,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혁명,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제국주의와 산업주의, 요컨대 20세기 정치 세계의 구성 요소들은 전부 19세기에 등장했다.” 21세기는 달라 보인다. 물론 21세기는 20세기의 유산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세계는 너무도 빨리 변해서 막 지난 세계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감각도 가질 수 없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친숙했고 영원해 보였던 것들이 대부분 빠르게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이 새로운 시대를 떠받치는 굵직한 토대들 대부분은 20세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과거에 대한 우리의 무지는 여태껏 인류 발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축적된 그 토대들을 무심히 찍어 넘기려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과거를 기억하는 자는 이러한 천진난만한 죄악에 경악한다. 토니 주트의 작업은 이제는 잊힌, 이 소중한 유산의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다. 지식인의 시대, 뿌리 없는 20세기의 여행자 주트는 이 책에서 20세기의 지식인에 대해 많은 장을 할애했다. 몇몇은 20세기 지식인의 전형으로 조명 받고, 몇몇은 결정적 결함을 이유로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전자에 속하는 익숙한 이름들로는 알베르 카뮈와 해나 아렌트, 에드워드 사이드가 있다. 후자에 속하는 이들로는 루이 알튀세르와 에릭 홉스봄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이들이 왜 비판(사실 비난에 가깝다) 받는지 아마 짐작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 중요하게 언급되는 이름들은 전혀 익숙지 않다. 아서 케스틀러, 마네스 슈페르버, 레세크 코와코프스키 등이 그러하다. 이들은 당대에 지극히 중요한 지식인들이었으나 이제는 슬프게도 잊힌 자들이다. 지식인은(자유사상가이든 정치적으로 헌신적인 사람이든, 초연한 자든 참여하는 자든) 20세기의 두드러진 영예이다. 에밀 졸라에서 바츨라프 하벨까지, 카를 크라우스에서 마르가레테 부버노이만까지, 알바 뮈르달에서 시드니 후크까지 가장 흥미로운 정치저술가들의 이름만 열거해도 수십 페이지를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물론 이들의 독자층이 얼마나 넓었는지, 이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도 거의 잊었다. 주트가 지식인을 말할 때 일관된 준거 중 하나는 ‘소련과 동유럽에서 공산주의의 억압에 맞선 저항’이다. 이러한 준거에서 지식인 활동이란 “동유럽과 소련의 소수의 용감한 개인들에 국한된 일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당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더 흔쾌히 기리는 좌파 인사들보다 이들의 영향력이 일반적으로 더 컸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지식인들은 20세기에 새롭게 출현한 뿌리 없는 ‘여행자’들이다. 이들은 실질적인 대화와 논의의 공동체로서 그 영향력은 시대의 비극적 선택들을 반영하고 예증한다. “우리가 이들 지식인들의 주제와 관심사를 생소하고 색다르게 느낀다면, 이는 우리가 지난 백 년간의 위대한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을 움직였던 사상과 이상과도 멀어졌기 때문이다.” 주트는 말한다. 20세기를 이해하기 위해 사상의 힘, 특히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의 상상력에 행사한 놀라운 힘을 기억해야 한다고. 20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영혼들 여러 명이 비록 잠시 동안이라도, 신조 자체를 위해서든 자유주의의 몰락과 파시즘의 도전이 명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든,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이끌렸다. 그 밖에 다른 많은 사람들도, 적어도 몇몇은 혁명의 신기루에 일말의 유혹도 못 느꼈는데도, 마르크스주의에 빠져 그것과 씨름하는 데 삶의 대부분을 바쳤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또는 자유주의와) 대결했으며, 사상의 영역과 현실에서 공히 패배했고 그래서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지켜지지 않은 약속과 거짓 예언자들을 깨끗이 잊으면서 그 가치를 다소 성급하게 과소평가했다(아니 간단히 망각했다). 요컨대 “수백만 명의 유권자와 활동가는 말할 것도 없고 왜 그렇게 많은 재사들이 그러한 약속과 예언자에 마음을 빼앗겼는가? 그 시대의 참사와 공포 때문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을 혁명과 부활의 거대담론으로 끌어들였던 것이 무엇이었든,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간단히 확신할 수 있을 만큼, 20세기는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을 독특한 무엇이었는가?” 한편으로 “평화와 민주주의, 자유시장의 햇빛 찬란한 고지는 진실로 영원할 것인가?” 국가와 그 역할 주트는 이 책의 절반 이상을 20세기 국가와 그 역할을 평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부분은 ‘국가의 역할’이다. 책에서 다루어지는 나라들, 프랑스, 영국, 벨기에, 루마니아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례에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국가의 형태와 역할에 대해 다시 심사숙고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후반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우리는 대체로 현대 국가가 국민을 배려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난 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 국가는 제일 먼저 의지할 자연스러운 후원자가 아니라 경제적 비효율과 사회적 간섭의 원천으로서 가능하면 시민의 일에서 배제해야 할 대상이라는 견해가 점차 일반적이게 되었다. “대부분의 선진국 세계에서 이처럼 국가를 무시하는 것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이에 동반된 온갖 사회주의적 기획의 평판 하락과 결합하여, 공적 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이 노골적으로 국가의 지배적 역할을 추구했다는 사실이 자유주의적 세계에서의 국가가 두드러진 역할을 차지할 자격이 없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또 공산주의가 몰락했다고 해서 자유와 효율의 최적 균형에 관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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