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절도죄가 죽음이란 형벌을 받을 만큼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음식을 구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 훔치는 것밖에 없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형벌이란 세상에 없을 겁니다. …… 이런 끔찍한 처벌을 가하는 대신, 모든 사람에게 약간의 생계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합니다. 처음엔 도둑이 되고 나중엔 시체가 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궁핍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하려면 말이죠. __토머스 모어
좀 더 친숙한 용어로 표현하면, 우리가 옹호하는 이 계획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다.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간에, 필수품을 마련하기에 충분한 일정한 금액의 적은 소득을 모두에게 보장해야 한다. __버트란트 러셀
19세기가 노예해방, 20세기가 보편 선거권 도입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기본소득의 세기가 될 것이다. __필리페 판 파레이스
“이 책은 기본소득에 대한 철학적 옹호를 넘어,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오래된 갈등을 비롯해 서구 정치철학의 오랜 화두와 쟁점들을 솜씨 있게 정리하며, 이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소할 수 있는 철학적 지반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1. 기본소득이란?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들이 최저 생계 이상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분히 많은, 다시 말해, 지속 가능한 최고 수준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덧붙여, 이 같은 기본소득은 자산조사를 필요로 하지 않고, 거주지는 물론 노동 의욕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소득이다.
1953년 경제학자인 경제학자 조지 D. H. 콜이 기본소득(Basic Income)이라는 영어 표현을 처음 사용한 이래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진행된 국제적인 토론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렇지만, 오늘날 회자되는 ‘기본소득’이라는 용어로 포괄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는 토머스 모어 이래로, 토머스 페인, 찰스 푸리에, 칼 마르크스, 얀 틴베르헌, 버트란트 러셀, 에리히 프롬, 제임스 미드, 앙드레 고르 등의 사상 속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사회 배당’, ‘국가 배당’, ‘데모그란트’, ‘음의 소득세’ 등등과 같은 제도적논의를 통해 구체화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이론적으로만 논의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아프리카의나미비아와 인도의 마디야 프라데시 등지에서 기본소득 파일럿 프로젝트가 시행된 바 있으며, 좀 더 최근에는 브라질,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등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기본소득 제도가 실험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 중의 경우에는 1976년부터 석유 등 천연자원 수출로 조성된 알래스카 영구 기금을 통해, 그 수익금을 2년 이상 거주한 모든 알래스카 주민들에게 배당금의 형태로 분배하고 있으며, 최근 부결되기는 했지만, 스위스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조항을 헌법에 담을지 여부를 둘러싼 국민투표가 진행되기도 하는 등, 기본소득을 실시하기 위한 현실적 논의와 실험들이 전 세계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가 ‘65세 이상 모든 노인들에게 기초 연금의 형태로 매월 20만 원씩’의 연금을 지급하기로 공약하면서 기본소득제의 도입과 찬반을 둘러싼 논의가 더욱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는데, 올해부터 성남시에서 실시되고 있는 청년 배당은 ‘부분적인 성격’이기는 하지만, 그 근본 문제의식은 ‘기본소득제’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 단체는 1986년 벨기에의 루뱅에서 창립된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에서 출발해, 2004년 제10차 대회를 기점으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로 확대되었으며, 올해인 2016년 7월 7일부터 9일까지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 책의 저자인 필리페 판 파레이스는 1986년 출범한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 창립 회원이자, 현재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국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현대적 기본소득 논의의 가장 선도적인 이론가이자 옹호자인 필리페판 파레이스는 이번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도 참석해 기조 발제를 할 예정이다.
2. 출간의 의미
1) 우리는 현실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을 용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 해도 자유는 중요하다.
필리페 판 파레이스의 책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Real Freedom For All)은 오늘날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론을 가장 체계적인 형태로 제시.옹호하고 있는 대표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글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시기는 1995년으로, 한편으로는 현실 사회주의의 실험이 이제 막 종말을 고한 시기이자, 신자유주의적세계화의 파고가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던 시기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경쟁은 자본주의의 승리로 귀결되었고, 자유와 평등을 둘러싼 역사의 변증법은 자유의 손을 들어 주며 요란한 팡파레를 울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및 그 개혁은 광범위한 불평등과 갈등을 낳았고, 이에 따라 그 정당성을 여전히 의심받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판 파레이스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신자유주의 혹은 자유지상주의 이론가들이 이야기하는 시장 중심의 자유경쟁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야 말로 자유와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역사의 최종 답안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맞서, “자유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한 자본주의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에 대해서도 용납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저 두 가지의 확신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도출해 낼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인가”를 모색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즉, ‘정의로운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또 ‘정의로운 사회가 제도적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2) 정의로운 사회란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
판 파레이스는 이 책에서 정의로운 사회란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라고 말한다. 여기서 ‘실질적 자유’(real freedon)는 우리가 흔히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라는 두 측면으로 분리해 사고하는 ‘형식적 자유’(formal freedom)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실질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란, 누군가가 하고 싶어 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권리를 가질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하기 위한 수단을 가지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좀 더 명확히 표현하자면, 모든 이의 형식적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최소의 기회를 가진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최대한의 실질적 기회를 제공하도록 설계된 제도). 이는 판 파레이스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좌파가 자유를 경시한 채 평등만을 중시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노직이나 하이에크 류의 자유지상주의적 옹호 방식에 진지하게 대응하고, 존 롤스, 로널드 드워킨 등 자유주의적 정의론의 성과와 난점들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소극적 자유’는 ‘개인들이나 제도들에 의한 강제의 부재’에서 성립한다. 반면 (잘못 이름이 붙은) ‘적극적 자유’는 힘, 능력, 수단, 부, 기회집합의 크기의 문제다. 그러나 이 구분은 현재 상태 그대로 수용될 수 없다. 확실히 세계 일주 유람선을 탈 ‘수단을 결여하고 있는’ 사람이 배에 승선하는 걸 막는 것은 사유재산이라 불리는 사회적 제도(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공유재산이라 불리는 사회적 제도)다. 더욱이 정의를 아무리 세련되게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직관을 무의미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