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청일.러일전쟁의 목적은 한반도를 차지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청일전쟁은 제1차 조선전쟁인 셈이며, 러일전쟁은 제2차 조선전쟁이라 불려야 한다.” “일본은 이웃나라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과거에 벌인 전쟁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일본은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한반도를 획득하기 위해 청-일, 러-일 간에 벌인 전쟁이므로, ‘제1차.제2차 조선전쟁’이라 불려야 한다. 일본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인식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침략전쟁을 일으킨 것과 식민지 지배를 했던 점을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이 책은 ‘전쟁’을 테마로 ‘근대일본’을 고찰해가면서 오늘날 이웃나라 간의 관계에 원점이 되는 요소를 재검토하기 위해 쓰였다. ‘근대일본’이 처음으로 일으킨 두 개의 대외전쟁 청일.러일전쟁부터 제1차 세게대전까지의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제1차 세계대전 종결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개시 전까지의 상황은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9세기 말, 한반도는 세계열강의 요충지가 되었다!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5 한국병합1910 세계대전1914~45에 이르는 동아시아 50년전쟁 다시 보기 2015년은 청일전쟁1894~1895이 끝난 지 120년, 러일전쟁1904~1905이 끝난 지 110년이 되는 해다. 청일.러일전쟁은 동아시아 3국의 근대 지평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는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하는 전환점이, 중국에는 종주국의 지위에서 서구열강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하는 분기점이, 한국에는 식민지냐 자주국이냐를 결정짓는 갈림길이 된 것이다. 특히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종식 70주년임과 동시에 1965년 한일기본조약체결한일협정이 된 지 50년을 맞이하는 해로서, 두 전쟁의 의미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동아시아 3국의 외교관계는 얼어붙어 있고 각국의 내셔널리즘은 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먼저 저자는 청일.러일전쟁을 보는 시각을 전쟁을 일으킨 근본 목적이 조선에 대한 지배권 획득에 있었다는 점에서 두 전쟁은 실제로 ‘제1차.제2차 조선전쟁’인 셈이었다고 강조한다. 『청일.러일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원래 일본인 대중을 대상으로 강연한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다. 즉 근대일본이 전쟁 과정에서 자행해온 ‘불편한’ 진실을 가감 없이 강조하면서 ‘반성’하자는 내용이라, 과거 피해자인 우리 한국인에게는 무척 반가운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메이지 초기 상황에서부터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까지 근대일본사의 핵심을 간략하지만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전쟁 당시 사람들의 심정을 그린 문학작품이나 회고담을 인용하고 있어 당시의 사회상이 생생하게 이해된다. 또한 저자가 전시경제사 전공자인 만큼 전쟁비용 조달이나 경제공황 등 당시의 경제적인 배경에 대해서도 쉽게 서술돼 있다. 저자에 따르면 모두에게 소중한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평화’와 정반대 개념인 ‘전쟁’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서로 간의 이해와 신뢰는 상대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지를 알고, 눈동자와 눈동자를 서로 마주볼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 책은 자국의 역사인식을 바로 하는 것이 동아시아 3국 사이에 신뢰를 쌓는 첫걸음이라는 문제의식 아래 쓰인 만큼, 청일전쟁부터 제2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약 50년간 지속되어온 일본의 전쟁 실태를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각 장 내용 본격 소개 한국어판 저자 서문 저자 하라 아키라는 『청일.러일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원제: 日淸.日露戰爭をどう見るか)의 한국어판을 위해 ‘저자 서문’을 새로 썼다. 지난 2015년 8월 14일 아베 신조 수상의 ‘전후 70년 총리담화문’(이하 「아베 담화」)에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추진한 주체가 명시되지 않았고, 반성과 사죄의 주어도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점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아베 담화」에 앞서 지난 7월 17일, 일본의 역사학.국제법학.국제정치학 전문가 74명이 「전후 70년 총리담화에 대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공동 성명에 따르면, “저는 과거의 일본이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행한 것을 반성하고 사죄합니다”라고 단적으로 명확히 표현할 것을 요구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담화」에는 이러한 요구내용이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오히려 올해 8월 15일에 있었던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한 아키히토 천황의 연설 내용에 “평화의 존속을 간절히 바라는 국민의식”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지난 전쟁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깊이 반성”한다고 표명한 바 있음을 강조하며, 사과를 회피하는 데에만 급급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역사인식을 제대로 하자는 주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서장- 근대일본의 전쟁에 대해 ‘전전’戰前이라는 시대는 근대일본에서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전전 쇼와昭和’에 해당하는 시대다. 메이지 시대는 보신戊辰 전쟁.세이난西南 전쟁이라는 두 개의 국내전을 거쳐 성립되고, 청일전쟁1894~1895.러일전쟁1904~1905이라는 두 번의 대외전쟁에 의해 메이지 일본은 조선을 지배했다. 다이쇼 초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치르고, 대독對獨전쟁으로 산둥 성을 약탈하고, ‘만주사변’1931에서 ‘지나사변’1937, 나아가 ‘대동아전쟁’1941~1945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거의 5년에 한 번꼴로 전쟁 또는 출병을 일삼던 나라였다. 일본은 전후戰後 70년간 평화롭고 긴 ‘전후’생활을 누려왔지만, 이웃국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역사인식, 영토 문제 등을 비롯해, 중일.한일 간의 대립이 점점 격해지고 있어 최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제1장- 청일전쟁: ‘제1차 조선전쟁’ 1894년 조선에서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자 고종은 청나라에 병력 원조 요청을 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 내각은 조선으로 군을 파견하게 된다. 일본과 청국이 개입하게 되는 것을 본 조선의 농민군은 같은 해 6월, 조선정부와 전주화약全州和約을 체결하고는 철수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청국에 공동으로 반란을 진압하고 조선의 내정개혁을 담당하자고 제안한다. 청나라가 이를 거절하는데도 일본은 더 강하게 조선정부를 압박한다. 7월 25일 대원군은 아산에 있는 청국 군대를 몰아내달라고 일본 측에 의뢰한다. 같은 날 일본 함대가 풍도豊島 앞바다에서 청나라 군함을 공격한다. 일본이 내건 청일전쟁의 대의명분에 따르면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청국과 싸운 것인데도, 랴오둥 반도 등의 영토를 얻고자 한다. 이를 막고자 러시아.프랑스.독일 3국이 간섭하게 되어삼국간섭, 일본은 랴오둥 반도를 반환하는 대신, 타이완을 영유하게 되어 식민지를 획득하게 된다. 청일전쟁 후 일본은 배상금으로 3억 엔을 받는다. 이 방대한 배상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던 청국은 외채를 빌리게 된다. 이로써 청국은 금융적.외교적으로 종속국, 반半식민지로 전락한다. 반면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 대열에 합류한다. 이렇듯 두 나라가 정반대 방향으로 운명이 갈리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바로 청일전쟁이었다. 제2장- 러일전쟁: ‘제2차 조선전쟁’ 러일전쟁에서 조선 문제를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일본의 한국병합이 러일전쟁 종결 5년 후인 1910년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상 개전과 동시에 일본은 한국 내정에 강제로 간섭하고 한국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905년 3월에 치러진 러일전쟁 최대 육전인 펑톈 전투에서도 일본은 러시아군을 섬멸.포위하지 못한다. 그러던 5월 27일 러시아 발틱 함대가 쓰시마 해협에 등장해 일본의 연합함대와 교전을 벌이게 된다. 이 동해해전에서 일본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둬 전쟁 국면에서 승기를 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