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폐허로 만드는 상실이 지나간 후 남겨진 것들 ”
시리 허스트베트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작가 폴 오스터의 아내라는 대답이 먼저 돌아올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격조 높은 소설을, 특히 《내가 사랑했던 것》을 읽은 독자라면 폴 오스터를 언급하지 않고 오롯이 시리 허스트베트라는 작가에 대해, 또 그녀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것》의 이야기는 '자화상'이라 이름 붙여진 한 장의 그림으로부터 시작된다. 남자의 티셔츠만 걸친 채 마룻바닥에 누워 있는 여인의 그림. 사실 캔버스 속에는 세 사람이 있다. 누워 있는 여인과, 화폭 바깥으로 막 나가려는 여인, 그리고 그림자로만 묘사된 관찰자까지. 미술사학자인 레오 허츠버그가 1975년 뉴욕 소호의 한 갤러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무명작가 빌 웩슬러의 작품이다.
25년이 지난 지금, 그림의 소유자인 레오는 기억의 눈으로는 이 그림을 선연하게 볼 수 있지만 육신의 눈으로는 그럴 수 없다. ‘본다’는 것이 곧 정체성이었던 그는 중심부에서부터 시야가 흐려지는 안질환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그가 더듬거리는 눈길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다. 정체성이 옅어질수록 기억은 짙어지고, 이윽고 한 점의 그림에서 시작되어 평생 이어진 한 화가와의 우정과 인연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림을 통해 맺어진 레오와 화가 빌 웩슬러의 인연은 평생에 걸쳐 지속된다. 그 세월 동안 두 남자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되고, 위층과 아래층에 사는 이웃이 되며, 예술적 조력자이자 동지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레오와 빌의 관계는 욕망과 탐닉, 선망과 사랑의 존재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단순하지 않다. 그림 속 모델인 바이올렛이 그러하고, 레오의 아들인 매튜가 그러하다. 매튜가 죽고 빌의 아들인 마크가 성장하면서 두 가족의 일상은 행복에서 나락으로, 장조에서 단조로 변환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애끓는 슬픔은 사이코 스릴러가 되고, 마침내 기억이라는 관점에 대한 명상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그림을 통해 맺어진 화가와 미술 비평가의 25년에 걸친 우정, 그리고 두 남자의 가족이 겪는 행복하거나 절망적인 삶의 굴곡들. 두 가족이 겪는 삶의 희비극은 《내가 사랑했던 것》을 구성하는 중요한 서사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서사보다 더욱 주목할 것은 그 서사를 바라보는 화자의 관점이다. 소설 속 화자인 황혼의 남자 레오는 시력을 잃어가며 이렇게 고백한다. 또렷하게 보기 어려운 증세는 눈이 나빠지기 한참 전부터 나를 괴롭혔으며, 그것은 예술뿐 아니라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본다’는 행위 자체에는 그것을 보는 주체가 들어 있지 않다. 레오가 바라보는 빌의 그림 속에 관람자(레오)의 모습이 담겨 있지 않듯이. 거울이나 카메라를 통하지 않고 멀리에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싶은 욕망은, 관람자인 동시에 주체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라보는 사람’인 레오가 ‘창작하는 사람’인 빌에게 품었던 동경, 그 자신이 죽음에 가까워지기 전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빌에 대한 질투와도 맞닿아 있다.
보는 것이 업이자 정체성이었던 레오는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눈앞이 흐릿해진 뒤에야, 눈이 아닌 기억을 통해 과거에 자신이 보았던 것을 다시 응시한다. 시종일관 독백처럼 이어지는 회상이 지금 이 순간보다 치열하게 느껴지는 것은, 관람자이자 주체자로서 새롭게 생성된 레오의 관점 때문일 것이다.
너무 선명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 너무 명백해서 알지 못했던 것들이 드러나는 순간, 산발적으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은 비로소 하나의 삶으로 완성된다. 시리 허스트베트는 레오의 입을 빌려 과거가 현재였던 순간, 우리가 놓쳤거나 의도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린 ‘시선 너머의 것’을 집요하게 추궁한다.
말년에 이른 그의 회상은 온통 상실의 경험으로 점철되어 있다. 행복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아들을 잃었고, 돌아올 수 없는 아들로 인해 아내를 잃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우정을 쌓은 친구를 잃었고, 내밀하게 사랑했던 여인을 잃었으며, 끝내는 아들처럼 여겼던 친구의 아들마저 잃고 만다. 그러나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레오는 기억을 ‘보는’ 일을, 과거시제의 아픈 문장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 책에서 예술은 한없이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져 있어, 단순히 숨겨진 감정을 조명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주체가 된다. 박식한 미술사학자를 화자로 등장시킨 만큼, 예술과 인문에 대한 지적 향연은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예술과 사랑에 대한 지적이고 통렬한 고찰인 동시에, 비극이 지나간 후 자기내면을 오래 응시한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우리는 좀 더 용기를 가지게 된다. 불가해한 것들을 이해하려는 가망 없는 노력을 그만두지 말아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