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 희곡의 거장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유리 동물원』과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등, 테네시 윌리엄스는 발표하는 희곡 대부분이 연극 공연은 물론, 영화화될 정도로 1950년대, 1960년대 미국인들의 자화상을 실감나게 그리며 현대 멜로드라마의 대표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번에 세계문학전집 161번으로 나온『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현대 영미 희곡을 전공한 김소임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부)가 현실 언어와 동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문학적인 감각을 살려 번역하였다. 또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작가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어 유일하게 저작권을 갖는 판본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몰락한 남부 귀족 가문의 블랑시 두보아를 주인공으로,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물과 현실에 철저하게 적응해 동물적으로까지 보이는 인물 간의 극단적인 대립을 상징적인 무대장치와 시적인 대사를 통해 감각적으로 보여 준다. 초연 당시 855회나 연속 공연되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테네시 윌리엄스는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과 뉴욕 극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새로운 세기에 맞춰 재탄생한 20세기 희곡의 고전
-현실성을 살린 새로운 번역과 국내 저작권 독점 계약 판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1950년에 극단 신협이 우리나라에서 첫 공연을 시작한 이래 연극 공연을 비롯하여 희곡집으로도 꾸준히 소개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작가 측과 직접 계약한 번역본은 없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저작권을 갖는 책이다.
희곡은 연극의 대본인 만큼 현실적인 언어로 쓰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문학적 언어를 포기할 수 없기에 희곡 번역은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그동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되었지만 지나친 문어체를 사용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말투를 사용함으로써 연극 대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면이 있었다. 이번에 출간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해롤드 핀터와 사뮈엘 베케트 등 현대 영미 희곡 번역에 힘써 온 김소임 교수(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부)가 번역하였으며, 현실 상황에 충실하면서도 문학적인 언어를 조화롭게 사용하여 새로운 번역 희곡의 표본을 제시한다. 주인공 이름인 Blanche Dobois는 인물의 성격을 살려 프랑스어 발음인 ‘블랑시’로 표기하였다. 또한 블랑시와 스탠리, 스텔라와 스탠리의 대화는 이들 간의 관계에 맞추어 다른 번역본과는 달리 존대를 쓰지 않았다.
A사
스텔라 그이가 폴란드 사람인 걸 언니도 알잖아.
블랭취 참 그랬지. 그래 폴란드 사람들은 애란 사람들과 좀 비슷하지?
B사
스텔라 스탠리는 폴란드 사람이잖아요.
블랑쉬 오, 그렇지. 아일랜드 사람 비슷하지, 안 그래?
민음사
스텔라 스탠리는 폴란드 사람이야, 알지?
블랑시 아, 그래. 아일랜드 사람과 비슷하지, 그렇지?
A사
스텔라 저이는 예수 탄생 5분 후에 태어났어요.
스탠리 처형은 무슨 띠요?
민음사
스텔라 스탠리는 크리스마스 날에서 오 분 지나 태어났어.
스탠리 처형은 어느 자리 때 태어났소?
B사
스텔라 시중을 드는 것이 기뻐서 그래요, 블랑쉬. 더 가정적인 기분이 되거든요.
민음사
스텔라 난 언니 시중을 들고 싶어. 그러면 친정에 있는 기분이야.
우리 모두의 초상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전형적인 미국 남부의 백인 블랑시는 집안 대대로 살아온 저택 ‘아름다운 꿈’, 벨 리브를 잃은 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뉴올리언스의 ‘극락’이라는 지역을 찾는다. 하지만 동물적인 본성만 지닌 남자 스탠리가 지배하는 그곳은 ‘극락’이 아니다. 블랑시는 꿈같은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스탠리와 결혼해 현실에 적응한 동생 스텔라와 생활하며 서서히 파멸한다. 어린 남편의 자살과 가족들의 잇단 죽음, 잃어버린 고향, 절망적인 과거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블랑시 자신의 예민한 기질과 현실의 폭압 아래 번번이 좌절된다. 과거의 영욕은 잊고 현재만을 생각하려는 스텔라를 사이에 두고 블랑시와 스탠리는 날카롭게 대립하며 둘의 갈등은 극단을 향해 치닫는다. 스탠리는 현실을 잊기 위해 육욕만을 좇던 블랑시의 과거를 들추어내 미치와의 결혼을 무산시킨다. 스텔라가 출산하러 간 사이 스탠리와 블랑시단 둘이 남겨지고, 스탠리는 블랑시를 결국 겁탈한다. 스탠리의 폭력에 정신을 완전히 놓아 버린 블랑시는, 동생 스텔라와 자신을 파멸시킨 스탠리, 그리고 그녀를 비정상적인 사람으로만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블랑시 두보아라는 독특한 여성 인물을 만들어 냈다. 블랑시는 섬세하고 서정적이며, 전통과 문화를 아는 교양인이지만 냉혹한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적응하지도 못하며 환상이나 과거, 때로는 방탕함에 자신을 내맡긴다. 꿈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현실에 비참히 깨지는 인물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다른 작품들, 『유리 동물원』의 아만다나 『여름과 연기』의 앨마 등에게서도 발견된다. 가족 중 정신병력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작가의 개인적 체험도 반영되어 있지만, 이들 인물은 세계대전이 끝난 뒤 급격히 변한 현대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변한다. 작가는 일련의 인물들을 통해 이재에 밝지 못하고 경쟁에서 낙오하면 가차 없이 도태당하는 현대 산업사회가 과연 정당한가를 묻는다.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라는 블랑시의 읊조림은 단순한 연민을 넘어 무자비한 현대사회에 대한 냉소와 분노를 자아내며, 자신은 진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을 말했다는 블랑시의 주장은 타락한 상황에서도 위엄을 드러낸다.
블랑시와 대척점에 놓인 인물이 스탠리이다. 강인하고 육적이며 현실적인 힘의 논리를 드러낸다. 현실은 스탠리와 그 친구들의 여흥인 포커나 볼링 게임처럼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또한 스탠리의 삶의 원천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스탠리는 삶의 중심이 여자와 나누는 쾌락이었다. 의존적이며 유약한 탐닉이 아니라 암탉에 둘러싸인 화려한 깃털을 가진 수탉이 지닌 힘과 자존심으로 쾌락을 주고받는다.” 아내 스텔라와의 관계도 이에 기초하여 스텔라는 스탠리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날 밤에도 여지없이 잠자리를 함께하며, 자신의 언니를 파멸한 장본인이 스탠리임을 예감하면서도 곁에 남는다.
이 극단적인 두 인물 사이에서 스텔라와 미치는 가장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로 등장한다. 스텔라는 언니를 사랑하지만 스탠리가 주는 육체적, 정신적 만족도 거부하지 못하며 현실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언니를 선택하는 대신 승리자인 스탠리와 함께한다. 블랑시와 결혼까지 생각한 미치 역시 그녀의 타락한 과거를 알고 나서는 길거리의 여자로 취급하며, 블랑시가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것을 바라만 본다. 이 극에서 가장 현실성 있는 인물 두 사람이 꿈같은 환상(블랑시)를 애타게 바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냉혹한 현실(스탠리)에 편승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이 모습이 우리 모두의 초상이라며 냉소한다.
현실보다 밀도 있는 연극이라는 인생 무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현실을 현장감 있게 그려 내려는 사실주의에 기초하면서도 풍부한 상징과 시적 이미지가 넘친다. 블랑시의 감성적인 언어뿐만 아니라 무대장치, 소품, 인물의 의상, 조명 등을 통해서 작가는 관객의 공감각에 호소하는 무대를 만든다. 이 극의 제목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실제로 뉴올리언스에서 운행하는 전차 이름이다. 블랑시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라는 이름의 전차로 갈아탄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 와서 동
권혜정
4.0
영화 보고 희곡 읽기. 둘의 결말이 다른데, 더 바람직한 vs 더 사실적인.
강중경
3.0
과거의 영광에 취해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결국 남는 건 현실의 무너짐뿐. 희곡은 원체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영화로 찾아볼 생각에 꽤 빠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김아람
4.5
"나는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아요.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을 말해요."
hahaha
4.0
도박도 가정폭력도 불륜도 강간도 별 거 아니지만 정숙하지 못한 여성은 별 것이 되는
HeeJinJu
4.0
[우리의 영혼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 그 반면 우리는 부서진 영혼을 얼마나 쉽게 조롱하는가] 이 책은 지극히 "현실을 살아가는 현재"와 "과거를 붙잡은 채 현실을 도피하는 현재"를 각각 상징하는 인물 스탠리와 블랑시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며, 블랑시의 마지막 남은 영혼 한조각까지 파괴당하여 퇴장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극은 미국 뉴얼리언스를 배경으로 블랑시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동생 스텔라가 살고 있는 "극락"이라는 동네로 찾아가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남부 귀족 출신이었지만, 극의 시작부터 이미 산산조각 상태로서 등장한다. 친척의 죽음, 동성애자 남편의 자살을 겪으며 가진 재산마저 모두 잃었고, 마지막 도피처로서 동생 스텔라를 찾은 것이다. 동생을 찾기 전 그녀는 현실에 대한 도피로 철저히 "욕망"을 선택해왔다. 수 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가졌고, 영어 선생님이었던 그녀는 나이 열일곱의 제자까지 건드리게 되어 직장인 학교에서 쫓겨나기에 이른다. 블랑시의 동생네 살이는 순탄치 않다. 스텔라의 남편인 스탠리는 블랑시가 자신의 자존심을 긁었다는 이유로 그녀에 대한 복수를 욕망하고, 결국 스탠리는 그녀의 과거를 조사한 뒤 블랑시가 마지막 희망으로서 교제하던 미치에게 폭로한다. 블랑시는 미치에게 항변한다. "낯선 사람과의 관계만이 텅 빈 가슴을 채울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았다"라고. 하지만 자신이 끝까지 지키고 싶어했던 품위는 진작에 자신에게 없음을 그녀는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극 중 내내 사치스런 옷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어두운 조명 속에 자신을 가려온 점을 보아 파악 가능하다. 극에서 스탠리는 복수심, 자존심, 재산, 성욕 등 눈 앞의 육적인 욕망을 상징하며, 그 욕망의 실현을 위해 블랑시의 영혼을 함부로 파괴한다. 자본, 권력, 이익, 효율, 합리 등의 단어를 대표하는 결과주의가 낭만, 문화, 교감 등의 추상적 가치를 짓밟는 오늘날을 표현하는 인물인 듯 하다. 하지만 나는 부서진 영혼의 상징인 블랑시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다. 결과주의라는 오늘의 시대정신에서 자신을 떳떳하게 증명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과 편견에 부서져가는, 역시나 대다수의 "오늘날의 약한 우리"를 표현해주는 인물이기에. 블랑시는 상처 받은 인물이다.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욕망"을 택했다. 사람들은 이를 놓고 블랑시를 비난한다. 왜 두발 딛고 스스로 일어서지 못했냐고. 왜 자신을 점점 더 "욕망"이라는 심연 속으로 빠뜨렸냐고. 하지만, 블랑시는 부서진 영혼이었다. 혼자 일어설 힘이 없었으며, 그렇기에 극에서 퇴장할 때 말했듯 "낯선 이의 친절에 의지"해왔을 것이다. 그녀의 낯선 사람과의 관계는 육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단지 낯선 사람에 대한 의지였을 것이다. 한 없이 부서지고 약한 존재로서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그녀가 "욕망"을 택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 책 제목의 "욕망"은 부서진 영혼을 쉽게 짓밟고 조롱하는 오늘날의 우리를 질책하는 단어인 것만 같다. 블랑시는 그녀의 과거를 알고 돌아선 미치에게 "사실주의는 싫어요. 나는 마법을 원해요.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이어야 하는 것을 말해요"라고 말했다. 남들에 의지해온 지금의 결과가 남들 눈에 추잡하고 비참해 보일 것을 알지만, 자신이 버리지 않았던 마음 속의 순수함만은 마법 처럼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외침이었으리라.
Laurent
4.0
당신이 누구든, 난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floits
5.0
버림받고 상처만 가득한 이들은 막다른 골목에 다 닿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위로 올라탄다. 안전벨트도 없이 내 달리는 전차의 속도는 왠지 익숙하다. 흔들리고 위태롭게, 과속 질주, 기어이 탈선하고 만다. 전복된 전차, 아직 갈 길이 남은 것처럼, 허공을 향해 도는 전차의 헛바퀴, 선로 위는 아직 뜨겁다.
사월🌱
4.0
낙오자에게 하차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절벽으로 추락시키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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