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밈은 본래 혐오의 수단이 아니라 혁명의 수단이었다
매체학과 영화의 목소리를 빌려 ‘밈친자’가 말하는, 유쾌한 대한민국 인터넷 밈 비평서
“홍대입구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라는 질문에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밈 없이는 대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들의 스마트폰 갤러리에는 인터넷 밈만 모아둔 폴더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인터넷 밈이 정확히 뭘까? 인터넷 밈을 매일 같이 쓰는 사람들조차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 밈은 어떻게 시작되어 왜 유행하게 되는 걸까? 이러한 열풍은 우리 시대의 어떤 면을 드러내고 있을까?
이 책은 영상미학의 관점에서 본 대한민국 인터넷 밈 비평서다. 한편으로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터넷 밈의 윤곽을 매체라는 배경을 통해 그려보려는 시도이다. 밈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도파민 중독자가 되어 밈 없이 살 수 없게 된 저자가, 밈의 스타일과 계보를 추적하며 자신이 속해있던 한국 인터넷 사회를 조망하는 유쾌한 회고록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밈을 예술로 바라보며 파헤치고자 하는 덕질의 흔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인터넷 밈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통해 매클루언, 키틀러부터 벤야민, 하위징아, 지젝, 레노비치 등을 다루면서 매체철학과 시각 문화 전반에 대한 시야를 넓혀준다. 나아가 합성 소스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합성 프로그램을 통해 각종 밈화를 거치다가 죽은 밈이 되기까지 여러 인터넷 밈의 생로병사를 따라가며, 그 기저에 깔려있는 투쟁과 혐오라는 사회 문화적 맥락을 읽어낸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폭발적인 창조력이 분출되는 놀이문화이자 예술로서 인터넷 밈의 긍정적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밈의 과거를 되짚어보는 책.
너가 인터넷 밈 알고 썼잖아?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이딴 책 안 나왔어.
엄마, 내 이름은 왜 인터넷 밈이야?
그대들은 인터넷 밈 어떻게 쓸 것인가...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그랬듯, 나 역시 편집자의 소개글을 쓰기 위해 여러 첫 문장을 고민했다. 수많은 인터넷 밈이 머릿속을 가로질렀다. 잘 생각해보면 참 이상했다. 인터넷 밈이라는 건 말이다. 대체 무엇이 합성 소스로 채택되는가? 인터넷 밈은 어떻게 유행하는가? 왜 사람들은 그토록 밈에 열광하는가? 저자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터넷 밈의 윤곽을 언어이자 예술, 공동체이자 놀이 문화로서 그려내고자 한다. 인터넷 밈과 동고동락했던 자신의 경험담에 여러 미디어 철학자의 목소리를 동원하여 그 계보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터넷 밈으로 우리는 언어만큼 효과적인 표현 방법을 얻었다. 또한 우리는 일상 속에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 야인시대 합성물부터 황정민의 밤양갱까지, 사람들은 인터넷 밈으로 자신만의 장르 영화를 창조하고 있다. 한편 위압적인 기성 문화에서 배제된 소수자들은 자기들만의 인터넷 밈을 공유하며 대안 공동체를 꾸릴 수 있다. 이는 억압된 고통과 좌절감을 자조의 방식으로 해소하게끔 돕는 수단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재미 지상주의가 만연한 커뮤니티 내에서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혐오 발화조차 거리낌 없이 수반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밈은 자극적인 요소로 점철되어 사회 곳곳으로 혐오를 실어 날랐다. 오늘날 과장과 희화화, 바이럴에 지배된 인터넷 밈 문화가 규칙을 상실한 채 무너지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진정한 놀이 문화로의 회귀를 염원한다. 인터넷 밈은 현재 혐오의 불쏘시개로 사용되지만, 인터넷 밈이 가진 창조적 힘을 확장할 수 있다면 도리어 연대의 불씨를 피우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찬 예언을 내놓는다.
이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저자가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신지의 얼굴에 “까짓 거 한번 해보죠 뭐”라는 대사를 합성한 짤을 보내면 나는 만화 <나루토> 속에서 “믿고 있었다구!” 라는 대사가 등장하는 짤을 보냈다. 이 책도, 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이 책이 발을 내딛을 세상도 결국 하나의 인터넷 밈 같다. 밈화된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유머는 의미의 고정이 아니라 의미의 표류와 거기서 생기는 오해에서부터 나온다. 특정 단어의 의미가 여러 맥락 사이에서 표류하면서 의미의 확정이 지연된다는 것을 긍정하는 순간에 우리는 그 단어를 전용하고 재창조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궁극적으로 꿈꿔야 할 것은 사유를 통한 유머의 회복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