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에 구속되지 않는 청년 담론에
새로운 타자(他者)로서 중국 청년을 초대하다
오늘날 청년 세대는 국경에 온전히 구속되지 않는 다양한 연결성을 보인다. 근래에 세계 여러 지역에서 수행된 청년 연구가 보여주듯, 예측불허의 금융자본주의와 거대한 불평등, 노동 불안정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경험은 개별 영토에 고이지 않고 지구 곳곳을 가로지른다. 청년 담론의 핵심어가 된 ‘불안’은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지역적·역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현장을 관통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청년’이란 주제로 방대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고 활발한 공론장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 지식 생산의 장을 낯설게 바라보기 위해 참조할 만한 타자(他者)는 의외로 빈약하다. 청년 세대에 관한 공론장은 한국 사회에 담을 두르거나, 한국 청년들의 경험을 해석하는 암묵적인 준거로 ‘서구’를 대화자로 소환하는 근대적 관행을 반복한다. 그나마 국내에 꾸준히 번역되어온 일본 청년에 관한 연구들은 주로 한국 청년의 근접한 ‘미래’를 들여다볼 프리즘으로 소환된다. 이러한 비교 접근에서 한국과 중국의 청년들을 마주 볼 수 있게 하는 연구는 거의 없었다. 지리적·역사적으로 일본만큼 가까운 곳이 중국이고, 국내 외국인 유학생의 절반 이상이 중국 국적인 데서 보듯 청년들 간의 접촉 또한 빈번한데도 말이다.
《문턱의 청년들》은 ‘한중청년들의 일상문화와 생애기획: 마주침의 현장을 찾아서’란 제목으로 2017년 여름부터 3년 동안 수행한 공동연구를 기반으로 엮은 책이다. 한중청년들의 삶의 서사에서 주로 등장하는 주제들(교육, 취업과 노동, 창업, 주거와 지역, 소비, 연애와 결혼, 인터넷문화, 대안적 생애기획)을 정하고, 각 주제를 심도 있게 파고들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국경이라는 주권적 경계뿐 아니라 자신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른 경계와 씨름하면서 어떤 궤적과 실천을 만드는가를 현장연구를 통해 살폈다.
한중청년들의 일상문화와 생애기획,
그 마주침의 현장
이 책은 총 3부로 나뉜다. 1부 ‘친밀성의 풍경’에서는 기존의 통념, 불안, 혐오와 고투하며 때로 친밀성을 위태롭게 자본화하는,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의미의 집-가족을 실천 중인 한중 여성 청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2부 ‘일터와 삶터’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청년들이 취약한 노동 환경, 지역 편차, 공론장의 위계와 씨름하면서 제 일터와 삶터를 모색하고, (불)공정에 대한 감각을 벼리는 과정을 살폈다. 3부에서는 한국과 중국이 유학과 팬덤, 기술과 창업을 매개로 연결되고, 남한과 북한, 중국 대륙과 대만이 청년들의 여러 활동을 통해 교접하면서 형성되는 ‘마주침의 장소들’을 엮었다.
이 책에 수록된 13편의 글에서, 청년들은 한국에서든 중국에서든 문턱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취업이 힘들고 집값이 폭등하면서 ‘성인기’ 진입을 위해 통상 요구되는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보니, 문턱의 의례는 뜨겁고 역동적인 커뮤니타스(communitas)라기보다 건조하고 반복적인 시험에 가까워졌다. 성년식,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 등 ‘성인’ 지위로의 이행에 인정과 의미를 부여하는 기존 의례들이 쇠퇴하고, “동지 의식과 커뮤니타스적 유대”를 되살리기보다 커리어 축적과 잠깐의 욕구 분출을 위한 이벤트가 늘어났다. 청년기의 불확실성을 감수할 만하다고 여기게 했던 안정적인 미래의 기대가 사라지면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어불성설이 된 것 같다.
문턱에 머문 삶의 모습은 그래도 꽤 다채롭다. 커뮤니타스를 생성해낼 만한 에너지 자체가 소진된 삶, 경이의 순간이 사라진 일상에 익숙해진 삶도 있다. 어떤 삶은 정상성의 궤도에서 탈선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다른 어떤 삶은 창업, 투자, 기술 혁신, 팬덤, 이주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턱에 생기를 입힌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차별과 불평등에 좌절하고, 누군가는 공모한다. 어떤 삶은 결혼을 거부하거나 비혈연적 가족을 만들면서 (이전 질서의 복원과 다른 방식으로) 문턱 너머를 구상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강력한 규범과 구속에 휘청거린다.
한중청년,
근대 국가가 지운 책무를 이반하다
오늘날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불거진 세대 갈등은 밀레니얼 청년들이 더는 구국과 애국,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의 과업을 자신의 책무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또는 이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가족-사회-국가 간 강한 결속과 의무에서 벗어난 몸, 개인의 내면을 돌보고 자유를 열망하는 몸은 디지털 문화의 범람과 소비문화의 확산을 따라 이른바 ‘MZ세대’ 청년의 지배적 표상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삶의 불안이 생애기획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속박을 거부하는 몸은 압박감, 박탈감, 무력감으로 위축된 또 다른 몸과 밀착되고 있다. 한국의 ‘88만 원 세대’, ‘n포 세대’, ‘살코기 세대’, ‘욜로(YOLO)’, ‘달관 세대’, 중국의 ‘개미족(蚁族)’, ‘팡누(房奴)’, ‘캥거루족(啃老族)’, ‘댜오쓰(屌絲)’, ‘소확행(小確幸)’ 등, 지난 20여 년 동안 등장한 유행어는 모두 일을 통한 경제적 독립, 결혼과 출산을 통한 사회적 재생산 등 청년 세대가 수행하리라 기대되는 규범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거나 의문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중국 정부가 학원비 부담을 저출산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사교육 철폐라는 강수를 두고, 한국에서 출산장려금과 우대정책을 양산해도 여전히 출산율이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사실에서 보듯, 여성 청년이 양육, 교육의 과도한 부담을 감수해가면서까지 개인의 생애기획과 국가의 백년대계를 접붙이는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그 사이와 너머의 청년들이
새로운 공생의 지도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하여
저자들이 만난 청년의 삶들을 ‘한국’과 ‘중국’으로 간단히 구분해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한중청년을 횡단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영토를 중심으로 구심력을 발휘해온 다양한 힘들을 무시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 제도적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서울-지방의 양극화, 분단체제, 중국의 국가사회주의와 정치검열, 뿌리 깊은 도농이원구조와 양안관계 같은 역사적·제도적 차이들이 글로벌 정치경제의 불안정성, 첨단기술의 발전과 노동 유연화, 초국적 교류와 배타적 민족주의의 동시 성장이라는 공통적 흐름과 복잡하게 얽히면서 한중청년들의 감각, 인식, 실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각 글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문턱을 딛고 규범화된 세계 안에 무사히 안착하기 위해서든 문턱 너머 세계의 풍경을 바꿔내기 위해서든, 저자들이 만난 한중청년들은 제 몸과 일터, 삶터 곳곳에서 위험 신호가 수시로 깜빡이는 시대를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다. ‘홍위병’, ‘이대녀·이대남’ 같은 편협하고 위험한 수사에서 벗어나 한국과 중국, 그 사이와 너머의 삶들을 진지하게 탐색하고, 국가, 세대 등 기존 경계에 매몰되지 않는 방향으로 공생의 지도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