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형’은 친근함의 표현일까?
어째서 백인 혼혈은 예능에, 동남아시아인 혼혈은 다큐에 나올까?
한국은 왜 ‘차이나타운이 없는 국가’로 불릴까?
‘K-콘텐츠’에 외국인의 리액션을 기대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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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일만도 아니고, 소수의 일탈만도 아닌
바로 지금, 우리 곁의 인종주의 문제를 마주하다
환대를 미덕으로 여기고 정이 많다고 자부하는 우리에게 실은 ‘인종주의자’의 모습이 있다고 밝히는 책. ‘소수자 정치론’을 연구해온 저자 정회옥(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개화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기, 경제성장기, 세계화 시대, K의 시대 등 근현대사의 주요 분기를 거치며 한국만의 ‘특별한’ 인종주의가 만들어져 왔음을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인종주의는 없다. 그렇다면 ‘인종주의 청정국’이라는 말일까. 실상은 그 반대다. 우리나라는 차별금지법 등 인종주의에 대한 법적 정의, 행위별 처벌 규정 등이 존재하지 않고, 당연히 관련된 공식 통계도 없다. 가령 누군가를 인종을 근거로 차별해도 ‘인종차별’이 아닌 단순한 ‘모욕’으로 인정될 뿐이다.
‘인종차별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집단 최면을 깨뜨리기 위해, 저자는 그 뿌리 깊은 역사를 파헤친다. 《독립신문》 같은 근대 초기의 신문부터 박정희, 김영삼 등의 대통령 훈화 말씀 그리고 최근의 유튜브 국뽕 채널까지 다양한 문헌과 매체, 인터뷰와 통계를 분석해, ‘한국식 인종주의’의 형성 과정을 추적한 것. 이 땅에서 인종주의는 식민주의, 민족주의, 순혈주의, 반공주의, 발전주의, 우월주의 등 시대별 지배 담론과 얽히고설키며 끈질기게 생명을 연장해 왔다. ‘흑형’, ‘짱깨’, ‘튀기’, ‘똥남아’, ‘개슬람’ 등 우리 모두가 한 번은 불러보았을, 또 들어보았을 수많은 멸칭이 탄생한 배경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00만여 명의 외국인이 산다. 사실상 외국인으로 취급되는 결혼 이주자, 다문화 가족의 자녀 등을 더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빠른 인구 감소, 노동자의 국제적 이동 등으로 우리는 그들과 더 자주, 더 깊이 만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다양성’은 거부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고, 인종주의는 넘어야 할 벽이다. 벽을 넘으려면 우선 똑바로 마주 보아야 한다. 한국식 인종주의의 연원을 파헤친 이 책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숨겨진 역사,
배제된 존재들
한국 근현대사는 대개 온갖 역경을 헤쳐나온 과정으로 설명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달성한 산업화’, ‘피로써 쟁취한 민주화’ 등은 그 자체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이력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이력 뒤에 ‘배제의 논리’가 숨어 있다고 설명한다. 한민족이 똘똘 뭉치기 위해서는 강철을 제련하듯 ‘불순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개화기에 발행된 《한성순보》 《독립신문》 등 최초의 근대적 매체들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흑형’_개화기에 수입된 반흑인성]
“흑인들은 … 동양인보다도 미련하고 흰 인종보다는 매우 천한지라.” 1897년 6월 24일 자 《독립신문》 사설은 흑인을 이렇게 묘사했다(38쪽). 반(反)흑인성이 노골적인데, 당대의 엘리트인 윤치호는 미국 사회의 흑인 차별을 정당한 일이라고까지 주장했다(41쪽). 여기에는 하루빨리 문명화해야 한다는 절박함, 그러려면 나태함이나 미련함 같은 흑인성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경계심이 깔려 있었다.
수천 년간 다른 인종을 접한 경험 자체가 없던 한국인이 개화기 들어 몇 년 만에 인종주의자가 된 것은, 미국을 근대화의 선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28~29쪽). 미국이 왜 ‘아름다운 나라[美國]’인지 설명하는 1884년 2월 17일 자 《한성순보》 사설은 숭미주의적 시각을 잘 보여준다(25~26쪽). ‘미제’라는 이유만으로, 인종주의조차 비판 없이 수용했던 것.
이후 근현대사 내내 미국의 대중문화가 대거 유입되며 반흑인성은 인종의 문제에서 피부색의 문제로 확장되었다(127~128쪽). 2019년에는 수단 출신의 이주노동자가 세탁 업체에 채용되었다가 며칠 만에 해고당했다. 해당 업체의 고객사인 어느 호텔에서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이 세탁 업무를 맡는 게 싫다고 항의했기 때문이다(125쪽).
‘흑형’이라는, 얼핏 친절하게 느껴지는 호칭 뒤에는 이러한 반흑인성이 숨어 있다. ‘흑인은 예체능에 강하다’는 편견에 기반하는 데다가, (‘황형’, ‘백형’이 없다는 데서) 유독 흑인만을 ‘구분’ 짓는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흑형을 ‘모욕형 혐오 표현’으로 규정한다(130쪽). 흑형에 스며든 반흑인성의 오랜 역사를 알게 된 후에도, 이 멸칭을 농담처럼 쓸 수 있을까.
[‘짱깨’_지배당하는 자의 열등감이 촉발한 중국인 혐오]
“조선인은 야만 인종.” “허언함은 조선인의 민족성.” “무능한 망국민.”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은 ‘야만 인종론’, ‘민족성론’, ‘망국민론’을 교육받으며, 식민주의를 내면화했다(50~54쪽). 한국인의 민족주의는 이에 대한 ‘저항 심리’이자, (일본처럼)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다는 ‘모방 심리’로서 탄생했는데(143쪽), 그 대상으로 눈에 띈 것이 중국인이었다.
계기는 1931년 만주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소작농들이 충돌한 ‘완바오산 사건’이었다. 이것이 ‘중국인이 한국인을 핍박한다’는 식으로 와전되어 전해지자, 곧 “갓난아이부터 노인까지 당시 조선에 살던 많은 중국인이 무차별적으로 살해당하는 유례없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가 벌어졌다.” 그 결과 200여 명의 중국인이 목숨을 잃었다(148~149쪽).
이후 ‘차이나타운이 없는 유일한 나라’로 불릴 정도로, 한국은 법과 제도를 동원해 체계적으로 중국인을 차별해 왔다. 특히 1948년의 ‘외국인에 대한 출입 규제와 외환 규제 조치’, 1950년의 ‘외국인의 창고 폐쇄령’ 등으로 무역업에 종사하는 화교의 경제력을 뺏는 데 집중했다. 1973년에는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 음식점에 중과세를 적용하거나, 쌀밥을 팔지 못하게 하는 등 촘촘한 규제를 가하기도 했다(150~153쪽). 최근의 조선족 혐오 또한 그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논리를 동원한다(154~155쪽).
그러한 역사 속에서 탄생한 멸칭이 ‘짱깨’로, 이는 ‘국민음식’임을 자부하는 짜장면의 별칭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 수천 년간 관계 맺은 이웃 민족(중국인)이자, 심지어 동포(조선족)인데도 차별하는 이중성을 잘 반영한다. 인종적으로 차이가 없고 역사를 공유하지만, 민족적·문화적 차이와 상충하는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그들을 혐오하는 것. 이는 ‘인종 없는 인종주의’라는 한국식 인종주의의 또 다른 특징이다.
[‘튀기’_한국판 피 한 방울 법칙]
“우리 핏속에 잠복하여 있는 불순한 혼혈을 뽑아내자.” 혼혈인은 1949년 2월 12일 자 《경향신문》 기사처럼 매우 박한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전혀 환영받지 못할뿐더러, ‘열등한 유전자’라거나 ‘부도덕한 문화의 결과’라는 등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160~163쪽).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혼혈인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다만 1950년대를 전후로 등장한 혼혈인은 (주로 주한미군인) 흑인이나 백인을 아버지로 두었기에 피부색이나 외모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그리고 이는 ‘피’에 대한 한국인의 열등감을 자극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인종마다 피의 성분이 다르고, 이것으로 진화 정도를 알 수 있다는 ‘인종계수 연구’에 천착했다(54~56쪽). 비슷한 시기에 미국은 ‘피 한 방울 법칙’이라 하여, 조상 중에 유색인종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백인이 아니라는 법을 명문화했다(178~180쪽). 이를 근거로 한 흑백 분리는 주한미군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이를 직접 경험하거나, 가까이서 본 한국인은 자연스레 ‘피가 섞이면 안 된다’는 순혈주의를 품게 되었다.
게다가 한국전쟁 탓에 한국인은 반공주의, 즉 ‘내부의 적’을 솎아내는 일에 숙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