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대한 성찰이자 엄마의 내면에 대한 탐구
사랑과 미움,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인간 심층에 대한 이야기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코트가 영국 BBC 방송에서 20년간 뜨거운 호응 속에 펼쳤던 육아 강연의 핵심을 담은 책. 일반 부모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인 만큼 이해하기 쉬운 일상 언어로 기술되어 있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은 육아에 대한 성찰이자 엄마의 내면에 대한 탐구이며 사랑과 미움,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모든 인간의 심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니코트의 핵심 개념인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는 우리말로 더 정확히 옮기자면 ‘이만하면 좋은 엄마’ 혹은 ‘그리 나쁘지 않은 엄마’에 해당한다. 위니코트는 모든 엄마가 엄마로서의 자질을 타고난다고 믿었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면서 아기와 생생하게 상호작용하다면 ‘내 아이’에 있어서만은 어떤 전문가보다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한 충분히 좋다는 것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완벽에 대한 강박은 불안을 일으킬 뿐 아니라, 아이가 엄마로부터 서서히 떨어져 나와 자기만의 자아와 세상을 발견해가는 것을 오히려 방해한다고 그는 봤다.
책은 ‘사악한 새엄마 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엄마와 아이 사이의 깊은 사랑에 뒤엉켜 있는 두려움과 증오에 대한 이야기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해 괴로워하는 엄마들, 자신이 혹여 아기를 해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공포 속에 사는 엄마들, 또 의붓아이를 키우며 맘처럼 사랑할 수 없어 곤란을 겪는 엄마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렇게 우리 내면의 어둠을 들여다보는 작업과 관련해 위니코트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에게 닥치는 악몽과 우울과 의심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우리의 성취를 이해하는 눈 또한 가질 수 없습니다.”
위니코트는 생애 초기 아이와 엄마의 관계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면서 엄마들의 불안과 혼란에 깊이 공감한다. 그는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끌되 누구도 아프게 하지 않는 사려 깊은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준다.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생생하고 뭉클하게 와 닿을 수밖에 없는 위니코트의 육아 강연이 가진 특별한 힘이다.
도널드 위니코트는 우리나라 일반 독자들에겐 아직 이름이 낯설지만, 현대 정신분석에서 ‘프로이트 이후 가장 사랑받는 정신분석가’로 불리고 있으며,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난 지금 갈수록 더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정신분석가다. 위니코트는 여느 분석가들과는 달리 대중을 대상으로 다양한 강연과 교육을 평생 지속적으로 펼쳤다. 그는 부모를 비난하거나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부모들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일, 그것이 그가 추구했던 목표였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아이에게 중요한 뭔가를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많다. 육아에 대한 조언들이 그 강박과 불안을 더욱 부추기기도 한다. 많은 육아책들이 엄마가 알아야 할 일,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자꾸만 더 늘린다. 엄마가 되는 일을 프로의 험난한 영역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불안과 죄책감을 가중시킨다. 어찌 보면 낡고 순박하게도 느껴지는 위니코트의 이 육아 강연집이 지금 아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읽혔으면 하는 이유다.
이 책은 위니코트를 각별히 좋아하는 정신과 의사에 의해 번역되었다. 옮긴이 김건종은 위니코트의 논문집 번역을 감수하면서 그 책 서문에 “위니코트를 세상 어떤 분석가보다, 사상가보다, 소설가보다 좋아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위니코트의 문장을 읽는 기쁨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이 책을 번역했다. 위니코트의 글을 미세한 뉘앙스까지 살피며 정성을 기울여 번역했고, 구석구석 더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 성격의 각주를 달았다.
이 책 옮긴이 서문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내게 위니코트는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탁월한 정신분석가이고, 삶의 풍성한 가능성과 그 미묘한 그늘을 동시에 들여다봤던 현명한 철학자이며, 예민하고 소심하지만 유머러스하고 낙천적으로 생생한 삶을 살았던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운 한 인간이기도 하다. (...) 깨달음과 위로는 좀처럼 공존하기 힘든 미덕이다. 깨달으면 아프기 마련이고, 위로는 흔히 현실을 잠시 잊는 것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위니코트의 섬세한 문장은 깨달음과 위로를 동시에 경험하는 드문 순간으로 우리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