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자본주의는 끝났다. 이제 모두를 위한 ‘새로운 미래’ ‘다른 미래’를 구상할 때다!
정치와 교육, 노동과 여가, 인권과 복지가 모두를 위해 작동하는 사회를 바란다면,
자유로운 개인이 자연과 더불어 자치하는 ‘지금과 다른 미래’를 소망한다면,
‘자유‧연대‧상호협력’을 강조한 사회적 아나키스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갈등과 혼란 끝에 ‘민주의 이름으로’ 겨우 직선제를 얻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고작해야’ 그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그 선거의 잣대란 것도 ‘누가 나를 더 부자로 만들어줄까?’에 달려 있다. 부자가 되는, 부자를 위한 민주주의라니, 이것은 가짜다. 그렇다면 진짜 민주주의도 있을까? 권력이나 자본 같은 불평등하고 강제된 권위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회, 능력과 수단을 함께 나누며 각자의 필요에 따라 모든 것을 사용하는 사회, 자연 속에 어우러져 만인이 자유롭게 자치하는 사회라면 어떨까, 그런 곳이야말로 민주주의가 꽃핀 사회가 아닐까?
사실 선거나 정치를 통해 바뀌는 것은 권력 교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각국의 상황을 보라. 과학문명의 정점을 찍고 있는 21세기에도 사람들은 더 강한 힘을 갖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독재를 용인하며, 공권력을 동원해 민의를 말살한다. 여기 어디에 자유의 확대와 평등의 확산이 있는가? 가정도 학교도 회사도 여전히 권위주의가 지배하고, 문화마저 양극화되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만 누리는 실정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이 모두가 지배계급인 극소수 엘리트에게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대다수는 생존에 허덕일 뿐이다. 전 세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역사는 그런 사람들만 살았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회적 아나키스트’들이 바로 그들이다. 사회적 아나키스트는 사회를 중시하는 아나키스트로 “개인의 자유는 사회적 연대와 상호협력을 통해 꽃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전적 아나키즘의 흐름을 따른 사람들을 총칭한다.
개인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사회란 어떤 종류의 권력이든 그것에 저항할 수 있도록 용납하는 사회다. 그런데 그런 사회는 기성세대가 만들 수 없다. 젊은이들이 만들어가야 한다. 기성세대는 그런 권위와 권력을 해체한 자유로운 사회를 원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젊은이들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젊은이들 스스로 싸워 이겨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나 장애인 같은 약자를 짓밟고 능력을 인정받겠다는 이기적인 욕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자율성을 한껏 발휘하되 불의의 권력에 맞서서 사회적 정의와 공정을 실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사회적 아나키즘의 핵심이다.
왜 ‘다르게’ 생각해야 하나?
19세기 사회는 민주주의의 숙원을 선거권 확보에 두었다. 그러나 역사는 선거와 투표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음을 보여주었다. 오죽하면 엠마 골드만은 “선거를 통해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했을까, 왜 고드윈은 “투표란 자유의 상징이기는커녕 노예의 상징이다”라고 하면서 “애매모호함과 불명료함과 무수한 거짓말을 낳는 아비인 투표는 논쟁을 제한하고 찬반이라는 단순 공식으로 축소하여 부자연스러운 의견의 획일화를 초래할 뿐인 이성과 정의를 모욕하는 악랄한 행위”라고 탄식했을까? 선거나 정치를 통해서는 모두를 위한 자유와 모두의 평등을 이룰 수 없는 탓이다. 따라서 당시 일부 사람들은 아무리 현명한 선거라고 해도 선출자들이 권력 자체를 해체하거나 모두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으므로 아예 국가나 정부를 없애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바로 아나키스트들이다. 그들은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가 개인의 의지와 결정권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으로서 아나키즘의 기본 원칙에 반대된다고 여겼다. 특히 부유층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타락한 사회의 결정판으로 보았다. 그래서 끊임없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대안과 투쟁을 제안했다.
지상의 모든 이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
자본주의에서는 모두가 힘, 즉 돈과 권력을 숭배한다. 권력은 국가 차원에서는 국력이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능력으로 포장되어 상찬된다. 이 같은 힘의 숭배는 당연히 부자유와 불평등을 포함하고 민주주의가 아닌 특권주의를 내포한다. 역사가 증거한 것들이다. 그런데 착취와 권위를 거부한, 많은 아나키스트가 이상으로 생각한 사회가 있다. ‘파리코뮌’이다. 국가나 정부가 대다수 구성원인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 존재하고, 누구나 노동자나 농민이 받는 수준의 임금만을 받으며,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 누구든 문화생활을 충분히 누리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모든 사람의 인권이 소중하다고 가르치는 그런 사회다. 사회적 아나키즘은 바로 이런 사회를 지향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아나키즘이란 “개인을 무시하기는커녕 도리어 사회를 구성하는 개체이자 주체로서 개인을 당연히 중시하고, 사회를 중시하는 건강한 개인주의를 당연히 전제하며, 개인만큼이나 그 개인들로 이루어지는 사회를 중시하는” 사상이다. “남성과 여성, 지상의 모든 이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울 때만이 나는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타인의 자유는 나의 자유를 부정하지도 제한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그 자유가 내 자유에 대한 확약이자 전제이다.”라고 한 바쿠닌의 말이 사회적 아나키즘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10인 10색 사회적 아나키스트
이 책은 지난 30여 년간 아나키즘 소개자로서 글을 써온 박홍규 전 영남대 교수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노동하고 쉬는 사회”를 그리며 정리한 것이다. 그는 “국가를 비롯한 모든 권력을 거부하는 아나키즘이 옳든 그르든, 권력 추구로 나날을 보내는 대한민국에 이런 안내가 모종의 자극제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더 다양한 아나키적 시도를 꿈꾸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처음 기획에서는 페인, 밀, 톨스토이, 마흐노, 부버, 란다우어, 오웰, 프롬, 게데스, 멈퍼드, 일리치, 굿맨, 간디, 두루티, 북친 등을 포함해 25명에 대해 쓰려고 했으나 그들이 이상적인 아나키 사회를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하는 점을 비롯하여 몇 가지 이유로 이 책에서 제외했다. 여기서 다룬 10명의 인물은 ‘사회적 아나키스트 역사가 하워드 진’ ‘사회적 아나키즘의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 ‘상호주의의 사회적 아나키스트 피에르-조지프 프루동’ ‘집산주의 사회적 아나키스트 미하일 바쿠닌’ ‘코뮌주의의 사회적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 ‘자유·자치·자연의 사회적 아나키스트 윌리엄 모리스’ ‘아나코 생디칼리즘 이론가 조르주 소렐’ ‘사회적 아나키스트 혁명가 에리코 말라테스타’ ‘혁명적 페미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 ‘21세기 사회적 아나키스트 놈 촘스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