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할란 엘리슨이네.”
중단편 만으로 휴고상, 에드거상, 네뷸러상 등 각종 문학상을
60여 차례나 수상한 살아 있는 전설이자 미친 천재!
“여기, 진짜가 나타났다.” 중단편만으로 휴고상, 에드거상, 네뷸러상, 브람스토커상, 세계판타지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을 60여 차례나 수상한 SF, 판타지 소설계의 대부이자 살아 있는 전설, 미친 천재 할란 엘리슨의 국내 첫 작품집.
1,700여 편에 이르는 전방위적인 작품과 더불어, “작가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며 청소년 범죄에 관해 쓰기 위해 가짜 신분으로 브루클린 갱단에 들어갔고, 롤링 스톤즈 등과 함께 여행한 뒤 로큰롤을 묘사하기도 했으며, 흑인 참정권 운동을 위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셀마-몽고메리 행진에 동참하기도 한 행동하는 자유주의자.
영화 <터미네이터>를 비롯해 자기 아이디어를 베꼈다고 생각한 영화 제작사들을 상대로 지독한 저작권 소송을 벌이고, 검열 반대 운동에 앞장서 국제 작가 연맹으로부터 ‘실버 펜’까지 수상한 ‘천재’, ‘괴물’, 그리고 ‘전설’ 그 자체인 할란 엘리슨의 대표 수상작 모음 전집.
“할란 엘리슨은 자기 키가 159센티미터라고 하지만,
재능과 열정과 용기 면에서는 2미터가 넘는 거인이다.”
- 아이작 아시모프
작품 소개
용암과 메스를 갖춘 독설가, 할란 엘리슨
0. 신이시여, 할란 엘리슨이네
할란 엘리슨의 휘황찬란한 수상 이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작품집이 소개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성질머리 때문에 저작권 계약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탓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진위는 알 수 없으나 그런 뜬소문에 신빙성을 더할 만큼 할란 엘리슨은 미국 장르소설가들 사이에서 매우 악명이 높다. 그는 40년 동안 SF, 호러, 판타지 장르에서 유력한 수상 후보로 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도, 사석에서는 종종 “저 빌어먹을 할란”, “신이시여, 할란 엘리슨이네”, “너 그 말 할란 엘리슨이 못 듣게 해”라는 말이 따라다닌 인물이다. 그가 술집에서 당구를 치다가 프랭크 시나트라와 주먹을 주고받았다든가, 월트 디즈니에 출근한 첫날에 부적절한 농담으로 해고됐다든가, 자기 글을 폄하한 교수를 때려서 입학한 지 18개월 만에 대학에서 퇴출당했다든가(엘리슨은 이후 자신의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그 교수에게 복사본을 한 부씩 보냈다고도 한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비롯해 자기 아이디어를 베꼈다고 보이는 영화 제작사들을 상대로 지독한 저작권 소송을 벌였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하지만 할란 엘리슨의 악명이 드높은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탁월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1955년 데뷔한 이래 작품을 쏟아내며 1,700여 편의 글을 썼고, 114권의 책을 쓰거나 편집했고, 12편의 시나리오를 냈다. 그의 이력은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중·단편과 함께 TV쇼 각본, 시나리오, 코믹북 스토리, 에세이, 미디어 비평을 두루 포함한다. 엘리슨의 휴고상, 네뷸러상, 에드거상, 브램스토커상, 로커스상 등의 수상 기록은 20세기를 통틀어 최고봉에 속한다. 젊은 엘리슨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는 오 헨리의 <동방 박사의 선물>이나 셜리 잭슨의 <제비뽑기>와 함께 영어에서 가장 많이 인쇄된 이야기 10위에 들어가고, 그가 각본을 쓴 <스타 트렉> ‘영원의 경계에 선 도시(The City on the Edge of Forever)’ 에피소드는 시리즈 79편 중 최고로 꼽힌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엘리슨을 두고 “그는 자기 키가 159센티미터라고 하지만, 재능과 열정과 용기 면에서는 2미터가 넘는 거인”이라고 평한 바 있다. 이 책은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엘리슨의 대표 걸작선으로, 2014년 출간된 《화산의 꼭대기(Top of the Volcano): 할란 엘리슨 수상집》을 주제에 따라 세 권으로 나누어 옮긴 것이다. 작품의 해설은 작가 소개에 맞추어 연대기별로 정리했다.
1. 미국 뉴웨이브의 전성기를 이끌다
할란 엘리슨은 로저 젤라즈니, 새뮤얼 딜레이니와 더불어 가장 스타일리시한 뉴웨이브 작가로 평가된다. 뉴웨이브는 60, 70년대에 주류를 이룬 SF의 하위 사조로, 과학기술적인 측면보다 인간 내면의 심층 세계를 중시하고 전위적인 실험으로 문학성을 추구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 중에서도 엘리슨은 용암처럼 강렬하고 감각적인 표현으로 미국 뉴웨이브의 전성기를 견인했다. 엘리슨의 초기 대표작 (1965)는 문장을 완성하기보다 단발적으로 끝맺으며 독자를 다음으로 이끄는데, 이는 시각 효과와 서스펜스를 극적으로 활용한 A. E. 밴 보트식 작법론의 모범례라 할 만하다. 하지만 엘리슨의 현란한 서술과 심리 묘사는 뉴웨이브의 시초이자 “불꽃놀이” 같은 문체라고 일컬어졌던 앨프리드 베스터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특히 <사이 영역>(1969)은 어지럽게 붕괴하는 활자 배치와 이미지로 시각적인 충격을 시도하면서, 베스터의 《파괴된 사나이》나 《타이거! 타이거!》에서와 같은 문학적 실험을 엘리슨이 어떻게 계승했는지 시사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엘리슨은 앨프리드 베스터의 《컴퓨터 커넥션》의 추천사를 통해 죽은 작가에게 바치는 경탄과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분노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1968)은 지극히 암시적인 글이다. 엘리슨은 여기서 오래된 상징체계를 차용해 SF의 방식으로 신화를 구현한다. ‘머리 일곱 달린 용’은 물론 성경에 등장하는 짐승이고 ‘열자마자 내용물이 흩어지는 상자’는 판도라의 상자다. 엘리슨은 신화가 그렇듯 ‘배출’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변천’이 무엇인지 전혀 설명하지 않고 독자가 알아서 이해할 영역으로 남겨둔다. 그러나 신화와 달리 작중의 주역은 기술과 인간이며, 우주의 이쪽과 저쪽을 인과적으로 연결해 아득하고 아연한 암시를 남기는 모습은 더없이 SF답다. 이는 엄밀한 과학적 서술에 치중하는 하드 SF가 각광받기 전에 “소프트”한 뉴웨이브가 어떻게 명성을 떨쳤는지를 증명한다.
국내에도 일찍이 소개된 적 있는 <소년과 개>(1969)는 디스토피아와 서부 활극을 합친 비뚜름한 중편으로, 예상을 뒤집는 결말은 인간의 증오와 사랑이 주된 테마라는 엘리슨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인간이라는 내우주(內宇宙)에 치중하는 경향은 (1974)에 이르면 한층 추상적이고 상징적으로 발전한다. 이 단편은 문자 그대로 주인공 속으로 들어가며, 영화 <울프맨>의 비극을 괴물과의 싸움이 아니라 깨달음을 향한 내면세계 여행으로 마무리한다.
2. 메스와 소실점
한편 기괴한 이야기를 그릴 때 엘리슨은 문학의 메스를 들고 인간의 터부를 헤집곤 한다. 한 줌의 희망도 없는 닫힌 세계를 헤매는 사람들, 스멀스멀 고조되는 불안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악행과 광기,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메슥거림은 엘리슨의 단편에서 흔히 그려지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재난은 무엇보다 인간 자신의 결함에 기인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콘돔을 쓰는 대신 여자에게 낙태를 시키는 남자가 버려진 아이들의 지옥에 떨어지는 <크로아토안>(1975)은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이렇듯 엘리슨의 작품에서 인간은 악의에 찬 신들의 장기말이고 놀잇감으로 희생당하면서도 직접 산제물을 바치며 재앙을 초래하는 광신도라는 이중적 면모를 보인다.
전쟁, 죽음, 파멸은 현실 세계의 것이지만 엘리슨이 그리는 그림에는 이를 흠향하는 사악한 신이 전체 구도를 지배하는 소실점처럼 자리한다. 수록작 중에는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