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다시, 정치와 도덕이다!
-《고르기아스》출간-
플라톤의 ≪고르기아스≫는 ‘연설술’(또는 ‘수사술’)로 번역되는 레토리케를 주제로 시작하지만, 곧이어 정치와 도덕의 문제로 나아가며 삶과 행복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연설술은 기원전 5~4세기 그리스 사회에서 유망한 젊은이들이 이름을 떨치고 출세하는 유력한 수단이었다. 나라와 시민들에게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는 것은 오늘날에도 성공적인 삶의 목표로 여겨지기는 마찬가지다.
≪고르기아스≫에서 플라톤은 권력과 힘을 추구하는 정치가에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들 각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면 그것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가? 그리고 이 물음의 이면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와 관련된 더욱 근본적인 물음들이 놓여 있음을 깨우쳐 준다. 우리는 삶의 목표를 쾌락을 극대화하는 데 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유덕한 행위를 하는 데 두어야 하는가? 이 선택을 정당화해 주는 근거는 무엇이며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고르기아스≫는 거의 2400년이나 지난 시대의 작품이지만, 오늘날에도 정치와 도덕의 문제를 고찰함에 있어 하나의 지침으로서 손색이 없다. 힘과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으며 문제를 바라보는 플라톤의 시각이 정곡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개요
I. 도입부
연설 회장 바깥 장면 : 소크라테스, 카이레폰, 칼리클레스 간의 짧은 대화
II. 소크라테스와 고르기아스의 대화
⑴ 연설술에 대한 정의: 말로 설득하는 기술
⑵ 고르기아스적 연설술: 정치술의 원동력이자 모든 기술의 상위 기술
⑶ 고르기아스의 비일관성: 고르기아스적 연설술의 문제점
III. 소크라테스와 폴로스의 대화
⑴ 고르기아스적 연설술의 정체 : 정치술의 부분적 모상
⑵ 고르기아적 연설술의 힘은 과연 큰가?
지성이 결여된 힘은 큰 힘이 아니다.
⑶ 소크라테스적 도덕 원리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나쁘고 비참한 것이다.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불의를 저지르고 처벌받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다.
⑷ 연설술은 불의의 고발하고 제거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IV. 소크라테스와 칼리클레스의 대화
⑴ 칼리클레스의 반론
① 자연의 정의와 법의 정의, 성격과 기원
② 더 강한 자의 정체와 행복의 본질, 정치적 삶과 무절제의 덕
⑵ 칼리클레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설득
① 설화를 통한 설득 : 무절제한 삶과 절제 있는 삶의 비교
② 쾌락주의에 대한 논박
③ 기술적 활동과 경험적 아첨활동의 구별[에 따른 평가]
민중을 상대로 한 아첨 활동들
참된 연설술과 연설가의 활동 : 쾌락(욕구)의 통제와 교정
④ 절제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절제(개인)-사회(정의)-우주(질서)의 관계
⑶ 사적인 활동과 공적인 활동(정치 활동)에 관한 결론
① 불의에 대한 대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② 참된 정치가의 자격과 현실 정치가들에 대한 비판
③ 소크라테스의 자기변호
⑷ 사후 심판에 관한 설화
⑸ 삶의 선택을 위한 권고
등장인물
1) 고르기아스
소크라테스 다음으로 잘 알려진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의 이름이 본 대화편의 제목이기도 하고, 연설의 힘에 대한 그의 주장이 대화편 전체 논의를 성립시키는 출발점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논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화 참여자들 중에서 제일 작다. 그는 시켈리아 섬의 동해안 가까이 위치한 레온티노이 출신이며, 펠로폰네소스전쟁 초기(기원전 427년)에 조국이 이웃나라인 시라쿠사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외교사절로 동맹국 아테네를 방문했으며, 이후에 그는 테살리아를 방문해 그 지역의 귀족들을 지혜로 매료시켰다고 한다. 일부 학설사가들은 고르기아스가 엠페도클레스의 제자였다고도 하고, 그가 “있지 않은 것(to mei on)에 관하여, 또는 자연(physis)에 관하여”라는 책을 썼다고 알려져 있기는 하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그가 본격적인 철학자였다는 증거를 확인할 수가 없다.
2) 카이레폰
카이레폰은 이 대화편의 초반에 잠깐 등장한다. 나이는 소크라테스보다 두어 살 어린 동년배였던 것 같고, 젊었을 때부터 소크라테스의 친구이자 충실한 제자였다. 한동안 희극 작가들의 작품에 단골 등장인물이 되기도 했다. 희극 시인들은 그를 키가 크고 인상이 창백하며 깡마른 모습으로 묘사하며, 끽끽 소리를 낸다고 해서 그에게 박쥐라는 별명을 붙였다.
3) 폴로스
시켈리아의 아크라가스에서 태어났고 출생 연대는 대략 기원전 44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에 대해서는 연설술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선생이었다는 사실 외에 ≪고르기아스≫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 이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이 대화편의 등장인물들 중에서 가장 젊은 그는 논박을 당해도 떼를 쓰듯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며, 세상 사람들의 통념에 호소하거나 논의 도중에 경멸조의 웃음소리를 내는 등, 지적으로 둔하고 품성에서도 조금 버릇없고 유치한 인물로서 그려지고 있다.
4) 칼리클레스
≪고르기아스≫에서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들 중 가장 비중이 큰 인물이다. 이 대화편이 그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문헌이기 때문에 그가 실존 인물인지 아니면 플라톤의 창작 인물인지조차 불확실하다. 작중의 역할에서 보듯 그처럼 활동적이고 유능한 인물이 다른 문헌에 이름을 남기지 않는 이유가 궁금한데, 만약 실존 인물이었다면 아마도 기원전 5 세기말 전쟁과 혁명의 혼란기에 일찍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다.
5)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작품들 속에 그려진 원숙한 소크라테스는 도덕과 이성의 화신, 진리의 순교자, 바로 그 모습이다. 자신은 아는 게 없다면서 내로라하는 당대의 지자(知者)들을 논파하며 곤경에 빠뜨리는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정의, 용기, 경건, 우정 등을 주제로 그가 대화의 좌장으로 등장하는 대화편들에서 집요하게 캐묻고 추궁하고 풍자하는 짓궂은 모습도 이 대화편 속에서 예외 없이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