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

박이대승
3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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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 소개

약자의 존재를 ‘삭제하는’ 사회에 던지는 질문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사건부터 각종 정치 문제까지, 억울한 죽음은 왜 반복되는가? 이들의 고통을 은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저항할 수 없는가? 고통을 드러내는 공통언어의 가능성을 말하다 “한국 사회는 약자의 피를 먹고 전진하는 기계입니다. 그 전진 뒤에는 거대한 피해자집단과 억울한 죽음이 남습니다.”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 2016년 4월의 가습기살균제 사건, 그리고 2016년 겨울부터 시작된 차마 입에 담기 수치스러운 사건까지,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는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외침으로 가득했다. 이 목록들은 그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대기업 공장들에서 일어난 각종 산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많은 죽음까지 헤아리면 “약자의 피를 먹고 전진하는 기계”라는 말은 결코 비유도 과장도 아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사실 자체다. 이 일련의 일들은 피해자들에게는 물론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충격과 고통을 안겨준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 모두가 종결되지 않은 채로 여전히 사회를 맴돌고 있다. 하지만 사건 자체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피해자들의 고통이 공동체의 ‘언어’로 논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는 고통에 대한 공감 부족 내지는 사회적 무관심을 말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껏 수많은 시민들이 피해자의 슬픔에 공감하며 애도 행위에 동참했고, 특히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애도가 전국적 범위로 확대되면서 사회의 정상적인 운영과 시민들의 일상적 삶이 한동안 유예되기도 했다. 따라서 단순히 공감 부족이라는 현상으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개념’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공감 부족이 아닌 사회적 공통언어의 부재에서 찾는다. 갖가지 매체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공감’에 기초한 무수한 말들이 쏟아졌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이 고통을 호소하거나 증언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에 이 책은 주목한다. 심지어 공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적대’로 변했다. 피해자들이 보상의 권리를 주장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기 시작하자 ‘그들이 억지를 부려 한몫 챙기려고 한다’는 식의 여론이 훨씬 우세해진 것이다. 흔히 사회는 소수자에게 어서 짱돌을 던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짱돌을 던졌을 때,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등 돌리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소수자가 저항할 수 없는 이유를 묻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저항하는 소수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묻는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약자란 언제나 ‘불쌍한 사람’이며, 불쌍하기 때문에 우리가 시혜를 베풀어줄 수 있는 무기력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개념 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소수자들에게 정치전략이 필요한 이유, 지극히 당연하고 뻔한 시민의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소수자는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이다. 소수자는 불우이웃이 아닌 ‘시민’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총 네 편의 강의를 통해 소수자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개념언어, 정치언어라는 말의 두 가지 경향을 다루는 사전 강의와 청년 담론을 분석하는 1강은 문제 제기에 해당하는 강의로, 한국 사회에 농후한 ‘개념 없음’의 상태를 비판한다. 2강 ‘소수자 사회’ 및 3강 ‘시민성의 재구성’에서는 약자의 고통을 논의할 수 있는 공동체의 언어를 본격적으로 구상한 뒤 구체적인 정치전략을 세운다. ‘소수자’와 ‘시민’이 바로 그런 공통언어의 가능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정치언어가 난무하는 사회, 무엇이 문제인가 이 책은 고통에 대한 이런 식의 응답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고민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공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 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문제 제기 방식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논의할 ‘공통언어’가 공동체 내에 부재하는 상황을 ‘개념 없는 사회’라고 부른다. ‘개념 없는 사회’가 뜻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개념’의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개념’은 단순히 사전적 정의에서처럼 분명하게 정의된 이론적 용어를 뜻하기보다는 언어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한 가지 ‘경향’으로 이야기된다. 이 경향이란 곧 말과 의미 사이의 관계를 고정시키려는 경향으로, ‘정치언어’라는 이와 상반되는 또 다른 경향과 맞물려있다. 즉 ‘개념’이 말과 의미 사이의 관계를 고정시키려는 반면 ‘정치언어’는 의미하는 바가 수시로 바뀌는 말로, 선거 승리 같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기존의 말에 새로운 의미들을 덧붙여 의미를 끊임없이 변형시키고자 한다. 이 책이 언어 활용의 측면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청년’이라는 말로 개념언어-정치언어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청년을 통계적 개념으로 쓸 경우 ‘만 15~34세 미만의 인구집단’ 등으로 정의내릴 수 있고 이때 청년의 의미는 만 15~34세라는 나이구간에 속하는 사람들로 고정된다. 하지만 정치언어로 쓰면 ‘사회 진보를 추구하는 개혁적인 청춘’ ‘청년 실업에 고통받는 젊은이’ 등등의 무수한 의미가 ‘청년’이라는 말에 결합될 수 있다. 한때 큰 화제를 모은, 이제는 아예 청년을 지칭하는 고유명이 되어버린 《88만 원 세대》(2007) 역시 바로 이렇게 ‘청년’을 정치언어로 활용함으로써 특정 세대를 정치적 주체로 불러낸 작업이었다. 말의 정치언어적 활용 예시는 비단 ‘청년’만이 아니라 다양한 말들에서 발견된다. 정치적, 경제적 이슈와 관련해 우리가 언론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단어들이 하나의 개념이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의미들을 덧붙여 유동성을 극대화하는 정치언어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혐오’는 정치언어의 극단을 달린다. 저자는 ‘혐오’를 사회적 현상이 아닌 ‘말’ 즉 정치언어로 다룸으로써 독자들에게 새로운 논의를 제시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혐오hate speech, misogyny’가 분명한 정의를 갖는 이론적, 법률적 개념인 반면 한국 사회에서 혐오라는 말은 어떤 고정된 의미도 갖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여성혐오’라는 말이 차별, 폭력, 공격을 비롯해 성차별과 성 불평등이라는 상이한 범주들을 모두 의미하게 되는 기묘한 상황이 펼쳐진다. 결국, 현재 인터넷상에서 쓰이는 ‘여성혐오’는 개념 정의가 불가능한 정치언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언어는 그 자체로 그릇된 것일까? 하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어를 구성해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이고 참된 모습이다. 따라서 정치언어를 활용하는 것은 정치적 활동의 필연적인 과정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정치언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념’은 없고 ‘정치언어’만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다. 결국 ‘개념 없는 사회’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가보면, 이 말은 곧 ‘개념’이 부재한다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개념’이 전무한 상황에서 ‘정치언어’만이 횡행한 현실을 문제 삼는다. 개념이라는 언어는 고정성을 갖고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사회적 표준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한다. 고정된 규칙 체계를 지닌 표준어 덕에 사람들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것처럼, 개념은 의미를 고정시킴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의 소통을 가능케하는 ‘표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념은 없고 정치언어만 존재하는 상황은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소통되지 않는 무수한 말들이 쏟아지는 상황과 다름없다. 약자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논의할 공통언어가 없다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들의 고통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공감을 넘어서 고통의 원인을 진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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