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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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있기까지 웨스 앤더슨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1분 1초, 단 한 컷조차 버리기 어려운 아름다운 영화가 있다. 세계 대전이 한창인 1927년, 전쟁과 동떨어진 화려한 분위기의 호텔을 배경으로, 로비 보이와 지배인이 대부호 마담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쳐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나고 상속받은 명화를 지키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과 거리를 두어 자신만의 이상향을 건설하는 웨스 앤더슨 세계의 테마를 유지하면서, 중복적인 이야기 구조(<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야기 안의 이야기 안의 이야기 안’이라는 3중 구조다), 동화 같은 색감과 대칭의 아름다움이 부각되는 영상, 정교하게 만든 인형 집 같은 배경과 독특하고 기발한 의상들, 길거리에 버려진 리본 조각조차 갖고 싶게 만드는 소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앤더슨 특유의 미학이 가장 극대화된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이 영화로 처음 웨스 앤더슨이라는 이름을 접하게 된 사람들은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고 암전에서 놓여나자마자 조바심으로 덜덜 떨리는 손을 억누르며 그의 또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는 금단증세를 겪게 된다. 이렇게 집요하게 아름다움을 겹겹이 쌓아올린 영상을 창조하는 사람의 머릿속이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있기까지, 괴짜의 탄생 웨스 앤더슨은 첫 영화인 <바틀 로켓>부터 어떻게 성공으로 직진하는 지름길을 찾아냈냐는 다른 이들의 질투어린 질문을 들으며 시작했다. 원래 단편영화였던 <바틀 로켓>은, 거의 돈이 들지 않은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든 후 선댄스 영화제로 보내고, 좋은 평과 관객을 모아서 조금씩 예산을 늘려 나중에는 큰 영화사에서 찍는다는 대다수 영화감독들의 일반적인 성공 모델을 뒤엎고 곧장 메이저 영화사에서 장편영화로 데뷔하였다. 물론 <바틀 로켓>을 직접 보고 난 후에는 그런 속 좁은 질문은 그만두게 된다. 그가 지름길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그의 영화 자체가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격찬을 받은 <바틀 로켓>을 비롯하여 그의 영화들은 수많은 영화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인다. 화면의 구성, 대담한 흑백 신의 사용, 기발한 위트, 적절하게 허를 찌르는 음악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역사를 잘 알고 있지만 역사를 학교 숙제처럼 대하지 않는 사람의 창조물임을 분명히 한다. 숏은 영리하고 잘 계산됐지만 모방이 아니며, 차가운 동시에 따뜻하다. 여러 분야에서 받은 영향을 순순하게 보여주지만 단순히 인용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영화감독으로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며 스스로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 증거들을 계속해서 내민다. 단순히 한 영화감독의 탄생이 아니라 새로운 목소리의 탄생이다. 이후로 웨스 앤더슨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의 영화는 감독의 실제 경험과 맞닿아 있으며 개인적 기억의 일부가 한 편의 영화로 연결된다. 그의 영화 속 배경들은 학교(<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집(<로얄 테넌바움>), 배(<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 야영장(<문라이즈 킹덤>) 같은 익숙한 장소지만, 그의 렌즈를 거친 후에는 지금까지 없던 낯선 세계로 재창조된다. 그가 창조한 일곱 개의 세계, 일곱 개의 컬러 18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깡마른 몸, 헐렁하게 걸친 셔츠를 바지에 반쯤 밀어 넣고 영화 촬영 현장을 휘젓고 다니는 웨스 앤더슨은 겉으로 보기에는 칠칠치 못한 껑충한 소년처럼 보인다. 실제로 <로얄 테넌바움>에서 함께 작업했던 배우 안젤리카 휴스턴은 첫 만남 때 ‘왜 현장에 십대 후반 애송이가 설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웨스 앤더슨은 1969년생이다). 그러나 감독으로서 웨스 앤더슨은, 지금까지 세상에 내놓은 단 8편의 영화만으로 이미 ‘당장 죽어도 영화사에 기록될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할 하틀리와 쿠엔틴 타란티노 이후 가장 독창적인 세계를 이룬 미국 영화감독 중 하나라는 것은 이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첫 단편영화 때부터 주목하며 웨스 앤더슨의 작품 세계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평론가로 알려진 매트 졸러 세이츠는 언론과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한 이 괴짜와의 오랜 시간에 걸친 내밀한 대화를 통해 한 편 한 편의 영화를 고스란히 책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였고, 그 결과 그의 전 작품을 한 권에 담은 완벽한 컬렉션집 《웨스 앤더슨 컬렉션: 일곱 가지 컬러》가 탄생하였다. 이 책은 <로얄 테넌바움>에서 마고의 서재,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에서 스티브 지소의 연구소 겸 영화 스튜디오인 배, <문라이즈 킹덤>에서 수지 비숍의 도서관에서 훔친 책들의 컬렉션을 구체적인 책의 형태로 구현한 것이다. (매트 졸러 세이츠는 그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만 별도로 빼내어 아트북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묶었다.) 《일곱 가지 컬러》는 웨스 앤더슨의 전체 작품들을 연대순으로 하나씩 파헤치며 웨스 앤더슨 스타일의 본질을 다룬다. 대화 중 종종 감독 자신의 개인적인 일화들이 쏟아져 나오기는 하지만(주로 <바틀 로켓>과 <다즐링 주식회사>에서) 대화의 초점은 시종 영화, 음악, 문학, 미술, 창작과 비평으로 이어지는 진지한 창조 작업에 맞추어져 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감독인 웨스 앤더슨이 최초이자 유일하게 속내를 털어놓은 자리이기에 그동안 쌓인 오해를 풀 수 있는 내용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를테면 너무나 심한 완벽주의자라서 현장을 치밀하게 통제한다는 소문에 대해서, 인간적인 면모가 풍부하다 못해 어수룩한 감독 스스로 ‘웨스 앤더슨 영화의 세부적인 것 모두가 거대한 디자인의 일부’라는 견해가 거짓임을 증명한다. 영화를 만들면서 영감을 받은 원천은 물론, 만드는 과정에 있었던 착오와 혼란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기 때문에 그의 미학을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도저히 단번에 읽고 덮을 수가 없다. 웨스 앤더슨은 말한다. “제 영화의 환상을 위해서 저는 상자에 세상을 넣습니다.” 그 상자가 열릴 때, 우리는 사금파리, 쓰레기, 고물의 일부, 깃털, 나비 날개, 추억의 징표와 토템, 망명을 위한 지도, 잃어버린 것의 증명서 등이 질서 있게 엉망인, 어둡고 반짝이는 무엇을 발견한다. 그리고 상자 가까이 몸을 숙이며 속삭인다. “세계야!” 《일곱 가지 컬러》는 웨스 앤더슨 감독을 가이드이자 다정한 동행으로 삼아 관람하는, 예술가의 머릿속이다. 예민한 천재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 독특하고 감각적인 세계관에서 영감을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펼쳐봐야 할 초청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