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들뢰즈 철학을 압축적으로 ‘도해(圖解)’를 통해 설명한다
오늘날 수많은 지식인이 들뢰즈를 알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것은 그의 사유가, 그의 존재론이 우리 시대를 가로지르며 이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존재와 삶을, 예술, 과학, 정치, 경제 등의 여러 현상을 규명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여전히 난해한 철학자이다. 들뢰즈에게 들어가는 문은 여전히 좁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 『철학자 들뢰즈, 화가 베이컨을 말하다』가 그 좁은 문을 조금이라도 넓히는 데 기여하리라고 본다. 그것은 먼저 알랭 바디우의 지도를 받아 들뢰즈 연구로 박사 학위를 한 지은이가 대학에서 수년간 강의를 하면서 온축된 들뢰즈의 사유와 존재론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 책이 들뢰즈의 존재론과 그의 사유를 압축적인 설명과 알기 쉬운 ‘도해(圖解)’를 통해 명쾌하게 짚고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철학적 사유를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게다가 그 철학의 핵심 개념을 ‘도해’로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은이는 들뢰즈에 근거하여 그의 존재론을, 세계, 인간, 사건을 요약 설명하면서 난해한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 소통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이 책 제1부는 들뢰즈 철학에 대한 얇은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들뢰즈는 왜 화가 베이컨을 이야기하는가?
이 책은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1981)를 중심으로 들뢰즈 철학을 소개한다. 『감각의 논리』에서 들뢰즈가 진정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며, 『감각의 논리』는 왜 이토록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우리는 들뢰즈와 화가 베이컨의 관계를, 다시 말해 들뢰즈가 베이컨의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을 읽어낼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무엇보다도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를 쓰면서 의도했던 것을 그대로 살려내어 부각시키고, 들뢰즈의 의도 아래 『감각의 논리』의 내용을 분석하고 그것을 들뢰즈의 존재론적 용어로 다시 풀이하는 데 집중한다.
독특한 화풍의 초상화로 유명한 화가 베이컨의 그림에 대한 해설을 담은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는 우리를 베이컨의 예술 세계로 인도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들뢰즈 존재론의 핵심에 다가가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감각의 논리』의 결정적인 중요성은 이 후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들뢰즈와 베이컨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뿐만 아니라 들뢰즈와 베이컨은 세계 속 인간에 대한 생각,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생각 또한 공유한다. 한마디로 들뢰즈와 베이컨은 사유에 있어서 샴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베이컨의 그림을 이야기하면서 이를 통해 동시에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감각의 논리』를 단순하게 한 화가에 대한 글, 한 화가의 그림에 대한 해설서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감각의 논리』에는 철학과 예술, 철학자와 화가, 들뢰즈와 베이컨 사이의 분간이 불가능한 만남이 있다. 『감각의 논리』에서는 치밀하게 구축된 동일한 세계관을 놓고서 언어적으로 정립한 철학(존재론)과 감각적으로 구현한 그림이 서로 분간이 불가능하게 교차한다. 『감각의 논리』에서 우리는 존재론에서 회화로, 회화에서 존재론으로 넘나드는 독특한 경험을 하면서 하나의 동일한 세계관, 인간관, 사건관을 목격한다.
들뢰즈와 베이컨의 관계, 들뢰즈 존재론의 핵심을 밝힌다
하지만 이 같은 독특한 경험을 방해하는, 아주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감각의 논리』에서 들뢰즈가 자신의 존재론에 대한 예비 설명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베이컨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존재론 또한 이야기한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책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테지만 들뢰즈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심지어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자신이 다른 책에서 사용하는 철학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자신의 존재론의 핵심적 논제들을 풀어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베이컨의 그림만으로, 회화 용어만으로 논의를 이어간다. 결국 독자들은 『감각의 논리』의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독특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도대체 들뢰즈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이 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각의 논리』에는 전혀 명시되지 않았던 들뢰즈와 베이컨의 샴쌍둥이와도 같은 관계, 들뢰즈와 베이컨이 공유하는 동일한 세계관, 베이컨의 그림에 대한 해설 속에 녹아들어 있는 들뢰즈 존재론의 핵심적 논제들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밝혀나간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감각의 논리』를 읽으면서 느꼈던 황당함이 존재론과 회화의 정합적인 만남에 대한 황홀한 깨달음으로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들뢰즈의 존재론 그리고 들뢰즈와 베이컨의 만남: 이 책의 구성과 특징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부 들뢰즈의 존재론」은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담고 있다.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전제되었을 경우에만 들뢰즈의 의도 아래 『감각의 논리』를 읽으면서 들뢰즈가 예비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철학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논제들을 하나하나 불러들여 핵심을 짚어 쉽게 설명한 이 책의 제1부는 들뢰즈 철학의 엑기스라고 할 만한 내용을 정리하여서 독자들에게 들뢰즈의 철학이라는 숲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개별 나무에 해당하는 들뢰즈 철학의 다양한 개별 영역(예술, 과학, 정치, 경제 등 사회의 제반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도구로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1부는 들뢰즈의 저술에 근거해서 들뢰즈가 생각하는 ‘세계’, ‘인간’, ‘사건’에 대해서 기술한,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아주 얇은 입문서로 보아도 될 것이다.
다음으로 「제2부 들뢰즈와 베이컨의 만남」에서는 『감각의 논리』의 내용을 중심으로, 또 가급적 그 순서대로 철학자 들뢰즈와 화가 베이컨의 분간이 불가능한 만남을 다뤘다. 즉 들뢰즈의 철학과 베이컨의 그림의 만남이 정합적이고 일관된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해서, 들뢰즈의 존재론과 베이컨의 그림 사이의 동형 관계에 대한 해설, 베이컨의 그림이 들뢰즈 존재론의 핵심적 논제들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해설, 베이컨의 그림이 들뢰즈가 말하는 존재를 어떻게 구현하는지에 대한 해설, 더 나아가 베이컨의 그림이 존재 또는 감각을 구현하는 방식에 대한 해설까지 모두 이 제2부에 담았다. 독자들은 이 제2부를 읽으면서 존재론에서 회화로, 회화에서 존재론으로 넘나드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들뢰즈와 베이컨이 하나의 동일한 세계관, 인간관, 사건관을 공유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