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리나라에서 그랬듯이 미국에서 초기의 페미니즘 운동은 부르주아 계급 출신의 백인 여성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중심부를 차지한 특권층 여성이 페미니즘 이론을 주로 생산해냈으며 이들은 주변부의 삶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총체성이 부족했고 다양한 인간 존재를 포괄한 폭넓은 분석이 부족했다. 벨 훅스는 주변부와 중심부를 모두 다루며 민중기반 운동에 필요한 사상과 전략을 세울 수 있는 페미니즘 이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서 그 동안 남성과 여성 간의 폭력이라든지 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해방운동이라는 시각에서 차근차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에서 새롭게 살펴봐야 할 열 두 가지 이슈를 논의하고 있다.
「흑인 여성」에서는, 백인이 주를 이루는 특권층 페미니스트들은 성, 인종, 계급의 억압이 서로 밀접한 관계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런 밀접한 관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다양한 집단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말하거나 대화하거나 그들을 대변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반면 주변부에 위치한 흑인/유색인 여성들은 주변부와 중심부를 모두 알 수 있는 유리한 지점에 있음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시각을 이용해서 지배적인 인종차별적·계급차별적·성차별적 헤게모니를 비판하고 대항 헤게모니를 만들어야 하며, 독특하고 가치 있는 페미니즘 이론을 만드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에서는 페미니즘, 혹은 여성해방은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동등해지려는 운동이라고 정의해서는 안 되며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변혁운동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페미니즘 투쟁은 성차별주의 및 여타 형태의 집단 억압의 문화적 기반과 원인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지하는 것으로 그 토대를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페미니즘의 중요성」에서는, 미국에서 현대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 지배의 이데올로기와 그 실제에만 집중한 결과 불행하게도 페미니즘은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정치적 투쟁, 남성과 여성 모두를 변화시킬 투쟁이라기보다는 남성과 여성간의 전쟁 선포처럼 여겨지게 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오직 여성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억압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모든 집단 및 개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운동이어야 하며, 제국주의· 인종차별주의· 계급차별주의에 저항하는 모든 투쟁에 지속적으로 투쟁하고 연대하며 모든 형태의 지배를 근절하려면 성차별적 억압을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매애」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잘못되고 왜곡된 시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정치적 연대를 경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대감을 느끼려고 굳이 서로 간의 차이를 없앨 필요는 없으며, 동일한 억압을 겪을 필요도 없고, 여성끼리의 결속을 위해 굳이 반(反)남성 정서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보다는 풍부한 경험, 문화,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며 관심과 신념을 나누고 다양성을 인식하고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을 하고 정치적 연대를 하면서 하나의 자매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남자」에서는, 분리주의 이데올로기는 여성 홀로 페미니즘 혁명을 할 수 있다고 믿도록 부추겼지만 실상은 여성 홀로 혁명을 일으키기는 불가능하며, 성차별적 억압을 유지하고 지지하는 주된 행위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자신들의 의식과 사회 전체의 의식을 변혁시킬 책임을 맡아야만 성차별적 억압은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남성들이 페미니즘 투쟁에서 똑같이 책임을 지려는 의지를 보이며 어떠한 과업이든 필요한 것들을 수행한다면, 여성들은 그들을 투쟁에서 동지로 인정함으로써 그들의 혁명적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권력을 바라보는 시각 바꾸기」에서는, 여성이 성차별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으려면 권력을 지녀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이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하며 가장 억압 받는 여성조차도 분명 나름의 권력을 행사한다고 지적한다.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는 여성들에게 권력이 없다고 믿도록 조장해서는 안 된다. 여성들에게 그들이 매일 행사하는 권력들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며, 그 권력들을 성차별적 지배와 착취에 저항하는 데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일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기」에서는, 여성들은 자신의 일을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산계급 여성들은 가정에서 벗어나 일을 하려는 욕구, 즉 ‘오직’ 가정주부로 머물기를 그만두려는 욕구가 여성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라고 여기지만 이들이 이야기하는 일이란 높은 임금을 받는 직업을 의미하며, 낮은 임금의 직업, 혹은 소위 ‘천한’ 노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들은 일의 교환가치만을 중시하거나 서비스업이나 가사노동 같은 저임금, 무임금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자기 일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하며, 페미니즘은 일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봄으로써 모든 여성을 여성운동에 참여시킬 수 있다고 한다.
「여성교육」에서는, 기초적 읽기·쓰기 능력이 부족한 여성들에게까지도 페미니즘을 전파시키려면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문맹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나이, 성별, 민족, 읽기·쓰기 능력이 제각각인 사람들에 맞추어 페미니즘 사상을 다양한 스타일로 전달해야 하고, 반주지주의의 편견으로 인해 페미니즘 이론의 중요성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폭력을 종식하기 위한 페미니즘 운동」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문제, 혹은 남성이 국가와 전 세계에 가하는 폭력문제의 심각성을 축소시킬 필요는 없지만, 여성 역시 폭력을 용인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여성과 남성은 어떤 형태든 폭력을 행사하는 데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명적 양육」에서는, 자녀 양육의 책임을 다른 자녀양육자들이나 자녀 없는 사람들과 공유하자는 대안을 내놓는다. 이런 양육형태는 혁명적인데 부모, 특히 어머니만이 유일한 양육자라는 사고와 대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격리된 채 홀로 자녀양육을 하는 것은 자녀를 키우거나 부모로서 행복해지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동양육의 필요성을 강조해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 종식시키기」에서는, 성차별적 억압을 없애려면 페미니즘은 섹슈얼리티의 정치 이론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며 성적 억압을 멈추게 하려는 투쟁은 사회를 변혁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세우려는 더 넓은 차원의 투쟁 중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즘 혁명」에서는 민중 기반의 페미니즘 운동을 구축하려면 모든 이가 공유할 수 있는 해방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혁명적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려면 성차별적 억압이나 다른 형태의 집단 억압에 고통 받는 비주류 사람들의 경험들을 이해하고 초점을 맞추고 구체화해야만 하며, 비주류 사람들은 이론의 창조자로서, 그리고 활동의 지도자로서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