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연간 문예지 『쓺-문학의 이름으로』를 통해 등단한
정나란 시인의 첫 시집
너는 한 음씩 늘려간다
파열음의 파는 가장 넓은 가장자리를 가졌다
나는 밀려간다
다변(多辯)과 눌변 사이에서 자신만의 무게중심을 잡으며 상상력을 모두고 펼치는 능력…
시인 정나란 씨는 2016년 소설가 김효나 씨를 추천한 바 있는 문학실험실에서, 많은 신인 투고작 중에서도 한국문학의 현 상황을 견뎌내고 돌파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2019년 추천한 시인이다. 이제 우리는 그 확신의 결과물을 그의 첫 시집 『굉음』을 통해 확인할 차례이다.
둘러보면 팬시 상품처럼 잘 만들어진 시들이 한 시절의 영화를 누리는 동안 우리 시는 점점 더 무력해지고 있다. 역치값을 재조정하는 데 기여하던 말들은 사라지고 번다한 지각과 무책임한 논리가 자신의 얼굴도 잊은 채 득의만면한?어쩌면 뻔뻔한?문장들에 고스란히 피로를 새기고 있는 와중에, 정나란 씨의 시편들은 우리에게 단비처럼 다가왔다고나 할까.
정나란 씨의 작품이 한눈에 들어온 것은 다변과 눌변 사이에서 자신만의 무게중심을 잡으며 상상력을 펼치고 모두는 능력 때문이었다. 다변의 욕망은 다선적인 상상적 흐름으로 거침없이 번져나가지만, 눌변의 침잠과 사유가 여러 방향에서 끝을 찍고 돌아오는 이미지들을 새로운 전체로 구성해나가는 시적 논리를 구성한다. 때로는 그 둘이 비정합적으로 엉기기도 하지만, 어느새 이를 모아 세우는 언어의 척추가 감지되는 것은, 이 시인 안에 오래멀리 다녀온 자신만의 어떤 체험과 정신이 하나의 상상체로 살아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방향에서 끝을 찍고 돌아오는 이미지들의 침잠하는 몸짓
상상이란 없는 것을 만드는 기교도, 경험한 것을 그대로 살려내는 기억력도 아니다. 정나란 식의 상상력은 경계를 허물고 범위를 흐리면서 이것과 저것, 이곳과 저곳, 이때와 저 때를 불러내, 그 틈을 자신만의 환상과 상념으로 접착한다. 이 접착력?앞서 말한 무게중심?이 정나란식 상상력의 핵심이다. 독자들은 이 시인의 시 속에 호출되는 것들과 그 상상적 접착 방식이 기존의 시와는 상이함을 즉각 감지할 수 있다. 이는 이 시인의 내면 창고에 모여 있는 ‘시적인 것’들과 그것들을 작동시키는 ‘시작법’이 교과서적 창작 기술의 범주를 벗어나 있음을 뜻한다(실제로 그녀는 시를 따로 공부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시인은 ‘시적인 것’들을 따로 가르거나 필요 없다고 버리지 않으며, 또한 그렇게 써서는 안 될 시 쓰기 방식도 따로 없다. 따라서 그의 시적 상상력에 작동하는 타임 루프나 순간 이동 터널도 아주 자유롭게 (그러나 정교하게) 열리며, 그것이 마음 깊은 곳에서 독자를 매혹하는 것이다.
깊이 읽히는 시보다는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시를 더 요구하는 시대, 뻔한 아포리즘과 예찬, 얄팍한 힐링과 위로를 갖춘 시편들이 소통의 효용성으로 주목받는, ‘딜리버리 포엠’의 시대에, 역설적이게도, 읽을수록 정나란의 시는 전혀 새로운 시로 다가온다.
“정나란 시인의 『굉음』은 ‘듣기’에 관한 노래로 들린다. 시인은 오로지 ‘당신’을 듣는 일, 당신을 제대로 듣는 ‘귀’가 되는 방법을 고민한다. 누군가를 향해 환하게 열린 귀의 모습으로 이 시집을 상상할 때, 제목이 예고하는 것은 언제 어디선가 우리를 습격할 굉음의 파편이다.” _ 최가은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