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언어학의 시선으로 추적하는 언어 속 젠더 부조리의 근원
오늘도 말과 글에 차별당하는 당신을 위한 페미니스트 언어 덕후의 유쾌한 성찰!
여자들은 왜 공적인 자리에서 ‘남자처럼’ 말하길 요구받을까? 언어의 기본형은 대부분 남성인데 왜 비속어는 대부분 여성에 대한 것일까? 모욕당하는 여성은 왜 꼭 음식이나 동물, 혹은 성판매자로 비유될까? 왜 ‘여자어’는 쉽게 조롱받는데 여성혐오 표현은 금방 일상어가 될까?
페미니스트 언어학자 어맨다 몬텔이 언어 속 젠더 부조리의 근원을 추적한다. 그의 첫 책 『워드슬럿』은 최신 사회언어학 연구를 바탕으로 각종 문헌과 매체, 정치인의 공적 발화와 개인들의 은밀한 뒷담화까지 다양한 사례를 오가며 젠더 차별적 언어의 역사를 분석하고 고발한 결과물이다. 책에 담긴 유쾌하고 거침없는 사회언어학적 지식은 여성의 발화를 조롱하고 억압하는 권력으로부터 여성의 자유로운 언어를 되찾게 해 줄 것이다.
기존의 언어와 완전히 합치되지 않는 언어를 교정받은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어떤 권위 없이 자신의 말을 만들어 냈다는 이유로 건방지다는 평가를 들은 적이 있다면 『워드슬럿』은 분명한 준거점이 되어 줄 수 있다.
-이민경
“여자를 모욕하고 싶다면 그를 ‘걸레’라고 부르고
남자를 모욕하고 싶다면 그를 ‘여자’라고 불러라?!”
젠더화된 언어, 언어화된 젠더의 모든 것
사회언어학의 시선으로 언어 속 젠더 부조리의 근원을 추적하다
언어와 사회학의 교차를 다루는 사회언어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는 ‘젠더’다. 젠더는 음절에서부터 단어, 발화 방식과 대화의 형태까지 언어의 거의 모든 면과 맞닿아 있다. 가령 많은 언어의 문법 체계에서 기본형은 남성이며, ‘남성’은 ‘사람’의 동의어다. 언어 속 젠더 편향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성별 표지가 없는 동물이나 캐릭터를 볼 때조차 자연스럽게 그것을 남성이라고 인식한다. 젠더화된 언어는 우리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남성 권력을 강화한다.
페미니스트 언어학자이자 기자인 어맨다 몬텔은 그의 첫 책 『워드슬럿』에서 사회언어학의 시선으로 언어 속 젠더 부조리의 근원을 추적한다. 비속어와 은어에 담긴 젠더 편향과 성차별(1장, 7장, 10장), 남성 언어가 ‘여성’을 규정하는 방식(2장), 만인에게 조롱받는 ‘여자어’가 지닌 언어학적 기능(3장, 4장), ‘캣콜링’과 ‘끼어들기’ 등 남성들이 언어를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6장), 어째서 ‘게이 같다’라는 말이 ‘레즈비언 같다’라는 말보다 쉽게 쓰이는지(9장)까지, 『워드슬럿』은 최신 사회언어학 연구들을 바탕으로 각종 문헌과 기사, 정치인과 연예인의 발화, 개인들의 은밀한 뒷담화까지 다양한 매체와 사례를 오가며 젠더 차별적 언어의 역사를 다층적으로 분석하고 고발한다. 여성들이 너무나 오래 우리 편이 아니었던 언어를 탈환하는 데 필요한 거침없는 지식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늙은 백인 남자들은 문화를 너무 오래 다스렸고, 언어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소통되는 매개체다. 그렇기에 우리가 왜 그리고 어떻게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도전하고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살필 시간이 왔다. - 본문에서
√ 여자들은 왜 공적인 자리에서 ‘남자처럼’ 말하길 요구받을까?
√ 왜 ‘여자어’는 쉽게 조롱받는데 여성혐오 표현은 금방 일상어가 될까?
만인에게 조롱받던 ‘여자어’를 재조명하다
여성의 발화를 둘러싼 편견은 각종 매체에서 수없이 재생산된다. 여자는 남자와 달리 간접적으로 에둘러 말한다, 여자는 과장된 존칭어를 쓰며 지나치게 사과한다, 여자는 자신감 없이 말끝을 흐리거나 음절 끝을 올려 질문하듯 말한다…… ‘여자어(lady language)’는 젊은 여성의 무능력을 뜻하는 대중적인 조롱의 상징이 되었다. 진보 논객들은 긴장한 사회초년생 여성의 말투를 과장되게 따라 하며 세태를 풍자하고, 여성들조차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여성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것을, 그러니까 ‘화이트칼라 백인 남성처럼’ 말할 것을 요구한다.
어맨다 몬텔은 ‘여자어’가 유독 우습게 들리는 것은 언어가 문화의 권력을 반영하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우리 사회가 어떤 집단의 발화를 기본값으로 여기는지에 대한 성찰 없이 젊은 여성들에게 남성의 언어학적 선호에 길들여지도록 가르치는 것은 젠더 권력에 복무하는 일일 수도 있다.
동시에 그는 언어학자로서 조롱받는 ‘여자어’가 가진 기능과 의의를 살핀다. 예컨대 의문문처럼 말끝을 올리는 업토크(uptalk)는 불안과 미성숙의 지표가 아니라, 민감한 소재를 쉽게 다루게 하고 다른 이들의 참여를 북돋우며 누구도 대화를 독점하지 않게 하는, 굉장히 협력적이고 경제적인 언어학적 기능이다. 언어학자들은 ‘여자어’라고 알려진, 가장 추하고 조롱당하는 발화가 근미래에 표준 언어가 향하게 될 방향이 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니까 문장 끝에서 목소리를 누른다고, 미안하단 말을 많이 한다고,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언어적 특징을 보인다고 누군가 당신을(또는 다른 누군가를) 바보같이 여기게 만든다면, 기억하라. 규범남들이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언어학자들은 이해한다. 결국 혐오자들은 그저 당신이 자신이 컨트롤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에 그저 씁쓸한 것뿐이다. -본문에서
√ 언어의 기본형은 대부분 남성인데 왜 비속어는 대부분 여성에 대한 것일까?
√ 모욕당하는 여성은 왜 꼭 음식, 동물, 성판매자 중 하나로 비유될까?
욕먹는 여성, 그리고 욕하는 여성을 위한 송가
UCLA는 한 연구에서 비속어와 은어를 수집해 젠더화된 모욕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수집된 여성에 대한 은어 중 90%가 부정적인 뜻이었던 반면 남성에 대한 은어 중 부정적인 뜻을 담은 것은 46%뿐이었다. 모욕당하는 여성은 대개 다음 중 하나로 비유되었다. 음식, 동물, 혹은 성판매자.
어맨다 몬텔은 우리가 여성을 먹을 수 있고, 비인간적이고, 성적인 대상으로 부른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 사회의 욕설들은 시스젠더 남성의 관점을 보여 준다. 그들에게 여성은 언제든 남성에게 먹히거나 길들여질 수 있는 존재, 혹은 이기적이고 히스테릭한 존재다. 규범적 남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욕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욕 사이에는 의미론적 불균형이 존재한다.
욕설 대부분이 여성을 향한 것과 대조적으로 욕하는 여성을 둘러싼 인식은 역사적으로 늘 부정적이었다. 남성과 여성이 욕을 하는 이유를 조사한 연구에서 남성들은 자신이 습관적으로 욕을 하며, 그렇게 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반면 여성들은 자신의 일탈적이고 괴상한 ‘성격’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회언어학 연구들은 언어 속 젠더 차별을 깨닫지 못하면 생각 없이 던진 아주 간단한 욕설조차 남성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권력은 언어의 진화를 바라지 않는다’
너무나 오래 우리 편이 아니었던 언어를 탈환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
자신의 언어로 말하려는 페미니스트를 위한 가이드
사회적 특권을 가진 쪽은 언어의 진화를 어떻게든 막고 싶어 한다. 그들은 혐오 표현의 대안으로 나온 단어가 비문법적이라고 비꼬거나 섹스와 젠더의 차이를 배우길 거부하고, ‘무서워서 무슨 말도 못 하는’ 시대가 됐음을 개탄한다. 기존 언어를 수호함으로써 자신들이 혜택을 보던 사회적 위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매일 젠더 정체성과 섹슈얼리티를 점점 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고, 혐오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도 높아져 가며, 우리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서 쓰는 언어도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왜, 그리고 어떻게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도전하고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살필 시간이 왔다.
기존의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