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서점대상 노미네이트 ‧ 독서미터 추천 랭킹 1위 ‧ NetGalley 페이지뷰 1위
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최신 장편소설
35세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2014년《비올레타》로 제4회 포플러사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 2024년 현재까지 20여 종의 책을 출간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데라치 하루나는, 여성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초기작에 이어 최근에는 사람 간의 차이, ‘당연’, ‘보통’의 위험성 등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북다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시대와 함께 상식은 변화한다. 시대는 변하고 나 역시 변한다. 인간은 누구나 낡고 늙어간다. 처음에 올바르다고 생각했던 것에 매달리지 않고 항상 의심하려 한다”는 작가는, 사회가 만든 규범과 인식의 틀을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전과 다른 주제와 표현방식으로 독자와 마주하고 있다.
데라치 하루나는 유독 상복이 없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다른 이름으로 응모한 작품으로 제29회 ‧ 제30회 다자이 오사무 상 최종 후보, 《밤이 꼭 어두운 것은 아니다》로 제33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 후보, 《물을 수놓다》로 제42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한편 그의 작품은 꾸준히 일본 서점대상 후보에 오르는데, 특히 출판계 최전선에서 치열한 하루를 보내는 서점 직원과, 나이 ‧ 성별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독자에게 큰 사랑과 공감을 받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앞다투어 추천하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데뷔 10년 안에는 큰 상을 받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어렵다는 것은 최근 깨달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한 끝에 ‘소설을 더 쓰고 싶다’, ‘더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두 마음만이 남았다”고 밝힌 작가는 그의 새로운 바람대로 착실히 나아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강기슭에 선 사람은》을 선보였다. 본작은 일본 서점 직원들의 연이은 찬사로 2023년 일본 서점대상 후보, 일본 최대 책 리뷰 사이트 ‘독서미터’ 추천 랭킹 1위에 올랐다.
‘나는 너라는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애초에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29세의 카페 점장 기요세는 연인 게이타가 크게 다쳐 의식불명이라는 전화를 받는다. 몇 달 전 게이타가 고집스레 어떤 사실을 숨긴 것이 원인이 되어 다툰 후 연락을 하지 않았던 둘. 게이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껏 잘 지내온 친구와 싸우다가 다쳤으며, 어렵게 연락이 닿은 게이타의 어머니는 원래 난폭한 아이였다며 기요세에게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한다. 기요세가 알고 있던 게이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 조금씩 위화감이 쌓이는 와중에 기요세는 입원 물품을 챙기러 찾아간 그의 집에서 노트 세 권을 발견한다. 어린아이가 처음 받아쓰기를 한 듯 삐뚤거리는 글자로 가득한 노트들. 누구보다 바르고 아름답게 글자를 쓰는 게이타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부터, 누군가를 향한 연심을 담은 문장 등이 서툴지만 안타까울 정도로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 적혀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언젠가 게이타가 기요세에게 보낸 유달리 긴 안부 메시지도 있다.
본문에서 인용된 가공의 소설 《깊은 밤의 강》에 본작의 제목이자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강기슭에 선 사람은, 바닥에 가라앉은 돌의 수를 알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바닥에 가라앉은 돌’은 저마다 품고 있는 인생과 경험, 그로 인해 형성된 인격과 내면을 뜻한다. ‘강기슭에 선 사람’은 그 돌을 품은 타인을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으로, 둘은 닿아 있긴 하지만 서로 다른 존재로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를 완벽하게 알 수 없고, 상대 또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일정 부분만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본질이 아니라거나 잘못된 태도라고 확언할 수 있을까. 의식조차 못 했던 편견으로 눈앞이 흐려져 있었음을 깨닫게 된 기요세는 강 밑에 가라앉은 수많은 돌을 하나하나 주워 올리듯, 상대를 헤아려 보리라 결심한다. 그렇게 그는 전에는 몰랐던 강바닥에 가라앉은 돌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당연’, ‘보통’, ‘정상’의 허구성을 쉼 없이 이야기해 온 작가가 보내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예리하지만 다정한 시선
데라치 하루나의 작품이 그렇듯 본작을 읽고 나면 ‘당연’이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깨닫게 된다. ‘보통’, ‘정상’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좁은 식견에서 제멋대로 만들어진 사상누각이었는지도 드러난다. 무언가를 ‘정상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스스로 정한 ‘정상’의 기준에 맞지 않을 뿐, 정상이 아닌 사람에게는 저마다 다른 사정과 배경이 있다. 그 점을 참작하지 않고 운 좋게도 안전하고 윤택하게 살아온 사람이 판단하는 ‘정상’이란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지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이 작품은 다양한 사회문제도 다루고 있는데, 성별에 대한 고정 관념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부터 성인 ADHD나 난독증과 같은 학습장애처럼 예전에는 이름이 없었기에 ‘비정상’, ‘낙오자’ 같은 거친 카테고리로 분류되었던 질환들이 그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보편적인 정상성이 얼마나 세밀하지 못한 기준인지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른 ‘돌’을 지닌 이들의 심리와 그들의 관계를 섬세한 언어와 다정한 시선으로 그려낸 《강기슭에 선 사람은》은 ‘읽는 디톡스’로 불리는 데라치 하루나 작품 중 단연 손에 꼽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