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김대중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 에디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이 시대 모든 이들을 향한 김대중의 외침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영화 <길위에 김대중>의 숨은 텍스트 “김대중 대통령은 그냥 민주투사가 아니고 뛰어난 사상가였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지식을 전략적으로 요령 있게 활용하는 지혜까지 지닌 특별한 지도자였다.” ― 노무현 전 대통령 50여 년간의 연설, 강연, 성명, 법정진술, 옥중서신, 인터뷰, 대담, 기념사, 저서 등에서 엄선 민주·인권·평화의 상징 김대중 정치가 삶을 좌우하는 이 시대 모든 이들을 위한 금언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펴내는 ‘김대중 금언집’. 정치 입문 전인 1953년 10월 3일 ‘일본이 진실로 한국과의 친선을 원한다면 과거부터 사과하라’는 내용으로 쓴 수록지 미상의 기고문부터 노무현 대통령 사후 발간되는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2009년 6월 27일에 쓴 추천사까지, 55년여 동안의 연설·강연·성명·법정진술·옥중서신·인터뷰·대담·기념사·저서 등에서 엄선했다. 이 책에는 민주주의의 중요성과 실현 방법, 남북 통일의 필요성과 추진 방향, 자유시장경제의 확립을 위한 경제관과 구체적 정책 제안,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우리 외교의 자세와 방향, 시기 시기마다의 정세 판단과 예측, 노동자·농민·여성·빈민 등 사회 약자들을 위한 정책적 발언, 그 밖에 그의 생각의 체계를 엿볼 수 있는 세계관·역사의식·사상철학·인생관·종교관 등이 담겨 있다. 김대중의 세계관·역사의식·사상철학 지금 여기, 우리에게 남긴 절절한 말들 한일 관계와 외교 “한국의 일부 인사 중에는 현 정세하 한일 관계 개선이 요청되는 면에만 관심한 나머지 덮어놓고 양국 친선만을 운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극히 위험한 견해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남에게 교만을 부릴 하등의 필요도 심사(心思)도 없으나, 한편 남으로부터 받아야 할 당연한 예절을 포기함으로써 민족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스스로를 욕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한일 간의 금후 천 년 국교의 기본적 출발점이 됨에서랴!”(수록지 미상의 기고문, 1953. 10. 3.) 이 책에 첫 번째로 수록된 김대중의 말은 1953년 10월 3일에 쓴 수록지 미상의 기고문이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의 이 발언은 70년 후인 현 정부의 한일 관계에 대한 인식을 질책하는 듯하다.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가 7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안타까움은 차치하더라도 “민족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스스로를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게 하며, 그가 말한 “금후 천 년 국교의 기본적 출발점”은 언제쯤 만들어질는지 안타까움이 더해 간다. “우리는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가’ 하는 것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외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국익뿐입니다. 이익이 맞으면 협력하고, 안 맞으면 따지고 대립하는 것입니다. 친미니 반미니, 친일이니 반일이니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청주교도소에서 보낸 옥중 서신, 1982.) 한편 김대중은 1982년 청주교도소 복역 중에 가족에게 보낸 옥중 서신에서 이렇게 말한다. 냉전시대였던 당시로서는 외교에 관한 파격적인 발언이라 할 수 있겠으며, 이 또한 현 세계정세에 임하는 대한민국 외교의 첫 번째 자세라 할 수 있겠다. 역사의식 “해방 후 일제하에서 싸운 공산주의자들을 오늘의 공산주의자와 같이 매도하고 그들이 바친 민족독립운동에 대한 공로를 무시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이것은 주로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 이 나라 국권(國權)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청주교도소에서 보낸 옥중 서신, 1982.) 1982년 청주교도소에서 보낸 옥중 서신에는 이런 말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와 오버랩된다.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 이 나라 국권(國權)을 장악했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은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언론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 중의 자유입니다. 언론 자유 없는 민주주의를 상상할 수가 없고, 언론 자유 있는 독재정치를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국민이 유신 치하의 법정에서, 그리고 감옥에서나 거리에서 얼마나 목마르게 언론 자유를 부르짖으며 찾았던 것입니까?”(관훈클럽 연설 「80년대의 좌표―자유, 정의, 통일의 구현을 위하여」, 1980. 4. 25.) “언론 자유 있는 독재정치를 상상할 수가 없”다는 김대중의 말은, ‘바이든 vs 날리면’ 논란에 이어 공영방송 사장과 방송통신위원장의 교체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언론 장악 논란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정치적 신념 “그들이 나에게 어떤 짓을 한다 하더라도, 국민에 대한 내 충성, 우리들 자손에 대한 내 책임감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나는 이미 그 결의를 바꿀 수 없는 인간입니다. 1971년, 내가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 그 곤란한 상황 속에서도 지지해 준 유권자의 46%, 540만 명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을 바치는 외에 그것을 회피할 자유가 없어요.”(3·1민주구국선언 사건 항소심 9차 공판에서의 최후진술, 1976. 12. 20.) 김대중은 다섯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끝내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그가 박정희 정권에 맞서 ‘3·1민주구국선언’을 하고 투옥된 후 법정에서 한 이 말은, 정치인으로서 유권자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굳은 신념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여기 앉아 계신 피고들에게 부탁드린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보복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내란음모 사건’으로 열린 군사재판 상고심에서의 최후진술, 1980. 11. 9.) 한편, 김대중은 1980년 내란음모죄로 군사재판을 받게 되어 최후진술을 할 때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이 된 직후 당선인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합의하여 전두환을 사면해 주었는데, 이로써 참된 용서와 화해, 국민 통합의 정치를 보여 주기도 했다. 오늘의 정치인이라면 “가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는 아무리 물질적 성장이 있더라도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청주교도소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옥중 서신, 1982. 9. 23.) 김대중은 정치인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많은 금언을 남기기도 했다. 1982년 청주교도소에서 보낸 옥중 서신에 쓴 이 말은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자신의 가난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또 그들에 의해 벌어지는 각종 부조리, 사회문제들이 얼마나 많은가. 빈부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정치인뿐이다. 그는 또한 많은 명언을 남겨 오늘의 정치인들을 일깨우고 있다. “논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경험은 잡담이며, 경험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논리는 공론이다.”(청주교도소에서 보낸 옥중 서신, 1982.)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서생적(書生的) 문제 의식을 갖는 순수성과 더불어 상인적(商人的) 현실 감각을 갖는 실체적인 자세의 두 가지가 하나로 조화되어야 한다.”(「김대중 ‘나의 고백’」, 『사목』, 1990. 11.) “정당을 옮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