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 직장과 가정 사이를 총총거리며 11년간 써내려간 기자의 일기 속에 담긴
‘1980년대생’ 지영과 ‘2010년대생’ 두 아이의 사랑스러운 성장사
▐ 서로 다른 우리는 어떻게 가족이 되어 가는가
▐ 보통의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 내는 삶의 특별함에 대하여
▐ 지난 10년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일구어 왔을까
▐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해 가는 어떤 어른의 일기
“이 책은 육아일기이기 이전에 함께 사는 사람들이 사람의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다. 가까운 사람을 잃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또 새로운 사람을 탄생시키고, 사람으로서 세상을 보며 사람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야기. 그 담담함이 무척 매력적이다.” 정보라(『저주토끼』)
“딸, 여성, 부모,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저자가 느낀 모든 번민들에 수없이 고개가 끄덕여졌다.” 엄지혜(『태도의 말들』)
임지영 기자는 누굴 만나든 인터뷰 말미에 꼭 하는 질문이 있다.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혼돈의 세상에서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가능성을 구하는, 자기만의 의식이다. 16년째 <시사인>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그중 11년간 써온 일기를 기반으로 한 첫 에세이집.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암환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기자로서 이 사회에서 부딪히며 경험해 온 것들을 솔직하고 담담한 문체 속에 담아냈다.
언뜻 보면 육아일기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한국사회의 지난 10년을 평범한 워킹맘이 어떻게 통과해 왔는지에 대한 촘촘한 자전적 기록에 다름 아니다.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아동학대 사건, 최근의 탄핵 집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장들을 취재하며 엄마로서 갖게 되는 복잡한 심경과 내밀한 감정들을 솔직히 고백하는 한편, 오늘날 ‘일하는 여자’가 넘어야 할 갖가지 장애물들을 특유의 낙천적 시선으로 위트 있게 그려낸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들을 두 아이와 함께 마주하며 때론 설명에 실패하고, 때론 아이를 통해 깨우치는 과정은 우리가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 어떤 동료 시민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무엇보다 1980년대생 ‘지영’과 2010년대생 두 아이의 10년에 걸친 성장사가 지독히 사랑스럽고 경이롭다.
▐ 여전히, 여자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살고 있는가
앵그리 워킹맘의 11년 육아일기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 여성의 자리
“아들 낳는 법.” 딸을 낳은 지 100일도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시아버지는 이런 문건(?)을 건넨다. 그날 그는 처음으로 결혼을 후회한다. 아이의 하원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고자 ‘칼치기 환승’을 이어가며 퇴근하던 어느 날엔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가 말한다. “그러게 다른 엄마들이랑 좀 친해 놓지 그랬어.” 그 선배에겐 다른 엄마들과 ‘친해 놓는 일’을 해준 부인이 있었다. “그 기자 애 낳고 오더니 펜 끝이 무뎌졌어” 하는 수군거림이 전해지던 어느 날은 ‘나도 민폐가 되면 어쩌나’ 하는 상념에 빠져 잔뜩 위축된 하루를 보낸다.
이는 모두 2010년대 저자가 평범한 직장 여성으로서 겪은 일들이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옷을 빼앗긴 선녀”처럼 “하늘로 훨훨 올라가는” 직장 동료들을 지켜보며 “의성어와 의태어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복귀 후에는 육아를 병행하며 “어쨌거나 일인분의 몫을 해내”기 위해 허덕이는 직장 여성의 삶은 이 시대에도 변함이 없다. 아이에게 ‘부족한 엄마’로서 느껴야 하는 죄책감도 여전하다. 생후 7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첫애는 하원 시간이 제일 늦는 탓에 몇 시간은 늘 혼자 노는 아이가 되어 안쓰럽고 미안하다. 아침마다 등원과 출근 사이 아이와 벌이는 실랑이 속에서 저자는 자주 생각한다. ‘집과 회사, 양쪽 모두에서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한가.’
아이가 있거나 없거나 사회가 여성에게 바라는 생애 과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직장과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기 시작한 선배는 이렇게 말한다. “난 애를 안 낳았잖아. 이거라도 해야지.” ‘저성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을 앞에 두고 또 다른 선배는 위로랍시고 이렇게 말한다. “넌 대신 애를 키우잖아.” 저자는 또 상념에 빠져든다. ‘난 역시 애를 낳은 것밖에 한 게 없는 건가?’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후배 앞에서 저자는 중얼거린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고...” 결혼 전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 낙태가 가능한 병원들을 취재하며 가임기 여성들의 절박함에 공감했던 저자는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러 낙태죄 위헌 판결의 날, 이제는 후퇴 불가능한 육아라는 현실의 잔인함을 헤아리며 그 절박함을 이해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돼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저자는 자신과 다른 삶을 선택한 동료 여성들에게로 시선을 확장하는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고한 성차별과 편견들 속에서, 과연 나는 왜 아이를 낳기로 했는가 고민한다.
(106) 무채색 일상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뻘겋고 샛노란 비비드 컬러가 내 하루하루를 물들이고 있다. 평소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의 세계로 나를 몰아넣는 저 작은 것. 세상 끝까지 화가 치밀다가도 끝내 다정한 화해로 마무리하는 일을 기꺼이 반복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234) 나는 왜 아이를 가졌을까? … 어쩌면 살아 볼 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제의 확신이 오늘은 명백하게 깨지고, 당장 죽을 것 같다가도 금세 살 만해지고, 며칠 새 달라진 나뭇잎의 색깔로 세월의 흐름을 감각하고,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밥알을 삼키는 동안 틈틈이 스미는 고달픔을 수용하는 하루, 그걸 겪게 하는 게 미안한 일만은 아니지 않을까? 나는 세상을 비관하는 쪽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분열하며 나 자신을 붙들고자 했던 여성이 “수시로 선을 넘는 생명체와 지지고 볶으며” ‘타인의 악의 없는 침범’에 너그러워지고 엄마의 자리의 나를 긍정하게 되기까지의 촘촘한 고민과 사유가 눈물겹다. 이 책의 기반이 된 일기의 최초 의도는 아이들의 빛나는 순간들을 기록해 두려는 것이었으나, 어느덧 육퇴 후 “화를 삭이기 위해” 쓰는 고발장이자 치부책이 되었고,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11년이라는 세월을 담게 된 지금, 한 여자가 이 험난한 반여성적 사회를 헤쳐 나가며 어떻게 성장해 왔는가를 보여주는 회고록이 됐다. 저자는 “자격 미달” 엄마의 이 일기가 “어느 한 시절이 영원할 것 같아 허둥거리는 부모들에게”, “해질녘 아이를 옆에 두고 안도와 쓸쓸함을 동시에 느낄 한 여성”에게, 또 “다양한 형태의 가족 안팎에서 고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누군가의 아이였던 어른들”에게 가닿기를 상상한다.
▐ 기자의 11년 노동일지 속에 담긴 우리 사회 아이들의 자리
16년차 기자의 일기는 세월호에서부터 최근의 탄핵집회까지 다양한 현장을 발로 뛰어온 한 여성의 노동일지이기도 하다. 현장 검증에서 “내 안에 괴물이 있다”고 중얼거리던 아동 성폭행범 김수철의 말을 떠올리며, 화재로 삼남매가 죽고 엄마만 살아남은 현장에서 까만 재를 뒤집어쓴 색색의 작은 신발들을 바라보며, 팽목항 귀퉁이에서 기사를 송고하며, 세월호 집회에서 마지막 승선의 순간 아이들의 얼굴에 비쳤을 천진한 웃음을 생각하며, 그리고 부모가 아이를 학대해 죽인 사건들을 취재하며, 저자는 자신의 아이들과 이 사회에서 아이들의 위치에 대해 생각한다. 이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또 약자에게 한없이 가혹한 세상에서, 수많은 위험이 어디나 존재하는 세상에서 아이를 어엿한 성인으로 키워낸다는 것은 어찌 보면 ‘기적’이다.
(199) 공포에 지지 말라고 해도 공포를 느끼는 것 자체는 어쩔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