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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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죽은 여자친구를 추모하기 위해 그녀가 죽은 곳을 찾은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절벽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는다. 무슨 영문인지 떨어진 곳이 아닌 살고 있는 도시의 벤치에서 눈을 뜬 나. 어리둥절해하며 집으로 향하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누나가 나를 맞이한다. 심지어 죽은 여자친구마저 살아 있는데……. 소설과 애니메이션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고전부’ 시리즈의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블랙 청춘 성장소설이다. 태어나지도 못했던 누나가 갑자기 존재하고 2년 전에 이미 죽은 여자친구가 멀쩡하게 살아 있다. 우연히 가능 세계(평행 세계)로 워프한 소년이 겪는 일련의 사건을 그리고 있다.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이세계에 내쳐진 소년이 현실 세계와의 차이를 깨닫고 그 원인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 의의와 영향을 재차 인식해나가는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보통의 청춘소설에서 다루지 않는 요소를 끄집어내 차별화된 감성과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데에 특출난 작가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유난히 무겁고 씁쓸한 뒷맛을 가지고 있는 『보틀넥』은 청춘소설에서는 금기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을 그린 작품이다. 사춘기에 가지는 환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고통을 수반하는 청춘 소설로, 독기와도 같은 신랄한 부정적 현실 인식은 마치 절벽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날 밀어 떨어뜨리는 듯한 아찔한 감각과 조우하게 만든다. ●요네자와 호노부 청춘 소설의 완결 데뷔 초반에 청춘 소설을 많이 발표해 한때 청춘 소설의 기수라고 불렸던 요네자와 호노부는 자신이 발표했던 청춘 소설들을 총괄하는 의미로 『보틀넥』을 집필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웹 사이트에 소설을 연재할 당시 떠오른 하나의 소재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소재로 소설을 써 내려갈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더이상 구체화시키지 않았고 『빙과』를 통해 작가로 등단한다. 이후 여러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경험과 자신감을 얻은 그는 마침내 십여 년 전의 소재를 소설로 완성해낸다. 자신의 고향 가나자와를 무대로. 그 작품이 바로 『보틀넥』이다. ●청춘의 그림자 요네자와의 청춘 소설 대표작을 꼽자면 데뷔작이자 애니메이션 [빙과]의 원작인 ‘고전부’ 시리즈와 청춘 일상 미스터리에 고전 본격 미스터리의 맛을 가미한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등의 ‘소시민’ 시리즈를 들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그린 고전부 시리즈와 소시민 시리즈는 작품 전반에 걸쳐서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그에 반해 『보틀넥』은 연령대는 비슷하지만 학교 밖에서 벌어지는 비일상을 그린 작품으로,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등장인물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고전부 시리즈의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는 매사에 무심한 에너지 절약주의자. ‘안 해도 될 일은 안 한다. 해야 할 일은 간략하게’가 좌우명일 정도다. 소시민 시리즈의 주인공 고바토 조고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튀지 않는 평범한 소시민을 지향하고 있다. 두 캐릭터 모두 무던함과 평범함을 추구한다. 이 두 주인공과 비교해 『보틀넥』의 주인공 사가노 료는 ‘어쩔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가 입버릇이다. 주위의 상황이나 사람들에 맞춰서 자신의 감정을 잊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주인공 사가노 료는 ‘모든 청춘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라고 하는 고전부의 오레키 호타로나 ‘소시민을 지향하는’ 고바토 조고로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보틀넥』이 상기 두 작품과 다른 점은 청춘의 그림자(어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 역시 작품의 기저에는 청춘의 그림자가 깔려 있지만, 이를 청춘의 발랄함으로 포장해 『보틀넥』처럼 전면에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보틀넥』에서는 시종일관 주인공에게 암울한 현실을 인식시킨다. 특히 결말부에서는 낭떠러지에 위태롭게 서 있는 주인공의 등을 툭하고 떠밀기까지 한다. 마침내 도달한 결론에 주인공은 절망에 빠진다. ●금기의 청춘 소설 『보틀넥』을 관통하고 있는 중심 소재는 자기 존재의 부정이다. 주인공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청춘 성장 소설에서 금기나 다를 바 없다. 예민하고 감수성이 흘러넘치는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은 삶의 당위성을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미숙한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겪고 한 발짝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할 성장 소설에서 존재 가치에 대한 부정이라니, 장르에 대한 모독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보틀넥』은 그런 무언의 금기를 정면으로 깨부순다. 주인공은 무슨 일을 겪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소년이다. 아무것도 아닌 채 살아가면 되니까. 활기 넘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대표되는 청춘 소설의 주인공으로서는 단연코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다. 그런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보틀넥』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의 세계를 들이대며 ‘네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훨씬 나은 세상이 되었을 거라고 다그친다. 이혼만 하지 않았지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 지내는 부모님은 너무나도 금슬이 좋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할 터인 국수집 할아버지는 정정하게 국수를 삶고 있다. 망해 버린 액세서리 가게는 잘만 영업하고 있고, 죽은 여자친구는 살아 있다. 모두 내가 태어나지 않았을 경우의 세상이다. 아무것도 아닌 채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개성인 주인공이 유일하게 애착을 가지고 있던 존재는 2년 전에 죽은 여자친구 노조미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와 닮은 존재. 나만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존재. 하지만 『보틀넥』은 그것마저 부정한다. 노조미는 모방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뿐이고, 상대는 내가 아니라 그 누구여도 상관없었다. 나와 거울처럼 쏙 빼닮은 노조미를 부정당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무력하기 그지없는 많은 평범한 젊은이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주장할 수 있는 개성조차 자신에게는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료는 깨닫게 되는 것이다. 보틀넥 병은 좁아진 목 부분이 물의 흐름을 방해한다. 그에 빗대어 시스템 전체의 효율 개선을 저해하는 부분을 보틀넥이라 부른다. 전체의 향상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보틀넥을 제거해야 한다. ●보틀넥―시스템 전체의 효율 개선을 저해하는 부분 주인공이 사는 마을에 있는 은행나무는 보틀넥과도 같은 존재다. 은행나무의 가지가 2차선 도로 중 한 차선의 진로를 막아 심한 교통체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나 사키의 세계에서는 은행나무가 베여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틀넥』은 주인공과 은행나무를 시스템의 효율 개선을 저해하는 방해물로 정의함으로써 주인공에게 현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들이미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의 꿈과 희망을 하나씩 앗아 가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의 존재마저도 방해물로서 말소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동시에 주인공을 자각시키는 것이다. 모든 청춘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가능성을 엿볼 수 없는 절망도 있고 희망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 청춘을 겪고 있는, 그리고 겪고 난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오히려 청춘의 밝은 면만을 (부각시켜) 그려 청춘 소설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틀넥』은 청춘 소설이면서도 안티 청춘 소설이라는 아이러니한 위치에 서 있다. 청춘의 긍정적인 일면만을 부각시켰던 기존의 청춘 소설과는 달리 그려지지 않는 어두운 부분을 직시하고 있는 『보틀넥』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시대의 진정한 청춘 소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