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작가노조 합시다”
한 편의 글 뒤에 숨겨진 노동과 고군분투,
‘홀로’였던 싸움을 ‘함께’인 여정으로 빚어내는 연대의 첫걸음
지속가능한 삶과 글쓰기를 골몰하는 모두에게
시, 소설, 웹소설, 칼럼·에세이, 번역, 평론·비평, 인문·사회, 어린이·청소년, 극작·각본·시나리오, 르포, 만화·웹툰, 그림·일러스트 등 여러 장르에서 활약하고 있는 작가들이 ‘노조’를 만들기 위해 모였다. 2023년 3월 소수의 작가들이 모여 꾸린 ‘작가노조(준)’이라는 작은 모임을 필두로, 지난 2년간 작가노조 출범을 위한 여러 활동을 해왔다.
처음 모인 인원은 겨우 서넛이었지만, 작가노조 준비위원회의 적극적인 기획 덕택에 단체 대화방은 더 많은 작가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집담회를 통해 준비위의 존재를 드러내고, 연속포럼을 통해 작가의 노동 및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논의하고, 예술인 노조들과 산재보험 적용을 요구하고, 작가단체들과 결합해 알라딘 전자책 유출 사태에 대응하고, 작가노동을 주제로 한 뉴스를 발행하고, 성평등 워크숍을 진행하는 등 다방면으로 투쟁을 조직하고자 했다. 특히 작년 6월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일에 이뤄진 선언 기자회견 와 ‘종이 찢기’ 퍼포먼스는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제 작가노조 준비위는 지난 2년간의 활동들을 마무리 짓고 2025년 노조 정식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이 책에 참여한 21명의 작가들은 글쓰기를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와 출판업계를 겨냥해 스스로의 노동을 기록하고 선언했다. 글쓰기 노동과 작가노동으로 채워지는 삶의 민낯을 과감히 드러내면서, 더 이상 골방에서 혼자 분투하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굶어 죽는 작가, 혼자서 싸우다 조용히 사라지는 작가, 글 쓰는 노동을 했을 뿐인데 몸과 마음의 병을 크게 얻은 작가들의 곁에 서겠다는 선언”과 함께, 작가노조는 모든 작가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노동조합으로 계속해 나아가고자 한다.
한 편의 글 뒤에 숨겨진 노동과 고군분투
: 작가노동을 말하다
작가들이 모여 노조를 만들겠다니, 누군가는 의아해할 수도 있다. ‘작가가 무슨 노동자야?’ 그러나 작가 역시 아프거나 죽지 않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글을 쓸 권리가 있다. 글쓰기 노동 내지는 작가 노동은 외견상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노동인 것 같지만, 여느 노동과 마찬가지로 자본의 지배 아래 있다. 그런데도 기존 노동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입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업주에 종속되어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하물며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종종 ‘노동이 아닌 것’으로 폄하된다.
이에 작가노조 준비위원회는 작가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다루기에 앞서, 작가들이 수행하는 글쓰기 노동의 면면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작년 5월 릴레이 에세이 프로젝트 <작가노동을 말하다>를 시작했다. 이 책 1부 <작가노동을 말하다>에 담긴 글들 역시 바로 그 릴레이 에세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총 13명의 작가들이 써내려간 일과 삶은 치열하고 또 열악하다.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않는, 더 정확히 말하면 최저시급의 개념조차 없는 턱없이 적은 원고료와 분투하며 n잡을 병행하고, 출간계약서를 비롯한 각종 계약서에 명시조차 되지 않은 온갖 무급노동을 암묵적으로 강요받고, 강연 요청을 받을 때조차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한 절차를 겪어야 한다. 불합리한 계약서의 수정은 고사하고, 계약서 자체를 보내지 않는 청탁도 적지 않은 것이 출판계와 강연·교육 시장의 민낯이다.
작가노조 설립을 최초로 제안하고 준비위를 꾸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안명희 상임활동가는 작가의 권리보다 출판사의 이윤이 먼저인 업계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책을 쓰는 노동자와 책을 만들고 파는 노동자(작가노조와 출판노조)의 연대를 통해 출판자본이 중심인 시스템을 출판노동자가 중심인 시스템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작가노조 설립을 도모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초동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 기획한 작가 집담회를 통해 각기 다른 집필노동의 세부 상황을 확인하면서도 공통의 노동 문제를 찾아내고(2023년 9월), 표준계약서, 문단 내 성폭력, AI 규제, 작가 능력주의, 예술인 노조 사례,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예술인 4대보험 및 최저임금, 노동법과 예술인법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로 연속포럼(2023년 11월~2025년 2월)을 기획해 이어오면서, 작가노조의 구체적인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작가노조는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노동의 언어를 새롭게 해석하고 확장해내는 일”을 과제 삼아 앞으로 꾸준히 조직을 발전시켜나갈 예정이다. 성평등한 공간, 서로의 노동과 일상을 지키고 돌보고 지지하는 동료 집단, 여전히 골방을 사랑하면서도 연대의 공유결합을 만들어내는 여정…… 이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긴 작가노조의 다짐과 전망이다.
‘홀로’였던 싸움을 ‘함께’인 여정으로 빚어내는 연대
: 작가, 노조를 만들다
이 책 《작가노동 선언》이 출간된 지금, 작가노조 준비위원회 단체 대화방에는 50~60명 남짓한 작가들이 모여 있다. 르포, 에세이, 번역, 비평, 시, 소설, SF, 만화, 영화를 공부하는 고등학교 재학생까지, 다양한 작가들이 둘러앉아 작가노조의 전망을 구체화하고 있다. 어쩌면 같은 작가라는 사실, 같은 글쓰기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이러한 결합을 충분히 설명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각기 처지도 다르고 관심사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작가노조는 왜 필요한가?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생활고로 인한 기아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다음 해인 2012년, 정부는 그 죽음에 답이라도 하듯 예술인 복지법을 시행하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개정해 프리랜서 예술인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예술인 복지법에 의한 산재보험은 말뿐인 복지다. 예술인들은 기업이나 단체 등에 상시 고용되는 것이 아니기에 스스로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보헙 가입률이 바닥을 치는 이유다. 국회 토론회 등을 통해 확인한 입장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예술인 산재보험 적용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누락한 채 제도안을 설계해왔다.
바꿔 말하면, 작가나 예술가는 일하다 아프거나 죽은 것이 명백하더라도 산재 인정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고용 형태가 ‘자유롭고’ 불안정한 데다, 글쓰기 자체가 시작과 끝이 모호한 노동이다 보니, 해당 노동으로 인한 사고 및 질병이 산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 또한 극도로 어려운 것이다. 작가노동으로 인한 산재 인정 사례는 물론, 이에 대한 담론화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에 맞서 작가노조 준비위는 여러 예술인 노조들과 함께 작가 산재 실태를 드러내고, 정부 논의와 기존 법제도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짚으면서 산재보험 적용에 대한 예술 현장의 요구를 다시 한번 세상에 알렸다. 2024년 1월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웹툰작가노조, 문화예술노동연대와 함께 주최한 기자간담회 <작가들은 요구한다! 윤석열 정부는 예술인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라!>가 바로 그 투쟁이었다.
준비위 내부에 별도로 구성된 성평등위원회 역시 작가노조의 성격과 지향점을 뚜렷이 보여준다. 준비위는 성평등위원회를 통해 성평등한 구조와 문화에 대한 논의를 꾸준히 이어왔다. 성평등위원회가 주관하는 첫 번째 워크숍은 라는 글로 이 책에 참여한 오빛나리 작가가 이끌었다. 성폭력 문제의 구조적 이해, 안전한 창작 환경과 공동체 조성을 목표로 진행됐다. 그는 ‘성평등’을 골치 아픈 난제가 아닌, 다층적인 층위와 맥락을 해석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고도의 투쟁 전략’으로 바라본다. 권위와 권력을 적확하게 겨냥하는 “정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