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티스트, 마법사, 시인, 소설가, 산악인, 화가. 거기에 스파이였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한 사람을 나타내는 수식어의 폭이 이토록 넓을 수 있을까!
마법사가 된 천재
알리스터 크롤리(본명 에드워드 알렉산더 크롤리Edward Alexander Crowley)는 1875년 영국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기독교 근본주의자였는데, 아버지는 크롤리가 열한 살 때 세상을 떠났다. 학업과 신앙 등 모든 면에서 방황을 시작한 그는 체스와 시, 등산에서 위안을 찾았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재학 시절 처음으로 비의를 체험했고, 러시아 외교관의 꿈을 좇던 중 갑작스레 병에 걸려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오컬트에 삶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1898년에는 매더스가 이끌던 황금새벽회Hermetic Order of the Golden Dawn에 입문했고, 1912년에는 동방성당기사단Ordo Templi Orientis에 들어가 영국 지부장을 지냈다. 이후로는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오가며 동지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저술 활동과 마법 연구에 힘썼다.
Leo 또는 Libra의 마법인생은
그는 수많은 사람들과 협업, 교류했거나 함께 지내며 수련했다. 대중에게 알려진 크롤리의 이미지의 상당 부분은 그와 가까이한 이들의 주변인들의 증언, 그리고 그와 결별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형성되었다. 예컨대 시칠리아에서 크롤리의 코뮨에서 생활했던 라울 러브데이의 아내 베티 메이는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은 제물로 희생된 고양이의 피를 마셔야 했다고 말했는데, 이와 같은 증언들이 누적되며 크롤리는 흡사 사타니즘과 섹스매직, 마약에 탐닉하는 광신도 집단의 우두머리로 비춰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은 크롤리라는 인물의 지극히 작은 단편이 왜곡된 결과에 불과하다. 마법이라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분야에 몰두하는 괴짜 자유주의자의 삶은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찾는 기자들과 대중의 입에 올리기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허세? 인정! 그러나 철두철미한 학자
반면 1904년 <율법서The Book of the Law>를 시작으로 수많은 저서를 통해 독창적인 철학 체계를 이룩했음은 비교적 덜 알려진 사실이다. 또 동방성당기사단에서는 단체의 여러 리추얼을 수정하고 정돈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가 일으킨 변화는 프리메이슨 의례에서 파생된 기존 리추얼 체계에 익숙해 있던 기존 멤버들의 반발을 불러올 만큼 파격적이었지만, 단체의 의식적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 그가 만든 ‘토트 타로’에 나타나 있듯 현대 타로의 기틀을 다졌고, 동양의 영적 전통들을 현대 서양인들에게 소개했으며 서양 요가 체계를 확립했다. 그의 저작을 모은 <에퀴녹스Equinox>는 방대한 오컬트 지식의 집약체 그 자체다. 2002년 BBC에서 조사한 ‘위대한 영국인 100인’에서 73위를 차지할 정도로 오컬트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입지를 가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수집하고 이룩한 카발라 지식의 결정체인 <777>이 드디어 한국어 완역판으로 출간된다.
■ 수비학의 근본원리와 실전을 통한 신-에너지 실체 연구
■ 문자(히브리어 알파벳)와 힘의 상응 (카발라마법의 근간)
■ 동서양 여러 종교의 신 배속을 통한 비교종교학 실천 방법론
■ 리추얼매직의 원리와 힘의 상응목록
■ 점성학 개념과 실재의 상응 배속 및 주석
■ 타로카드 해석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다양한 주석
■ 색상(컬러스케일)에 내포된 힘-파동의 실체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상응관계가 총망라되어 있으므로 카발라, 마법, 타로, 점성학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각종 오컬트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필독서라 할 것이다. 특히 저자의 해박하고도 적확한 주석은 오컬티즘에 열정을 가진 독자의 가슴을 뛰게 하고도 남는다. 역자의 정확한 번역과 카발라에 대한 지식 또한 인상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