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이 마을은 어떤 곳일까?
‘다랑이’는 산골짜기 비탈진 곳에 만든 좁고 긴 계단식 논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다랑이 마을’이라는 이름답게, 다랑논은 킁킁이와 두드리가 뛰노는 공간이자 빼빼 영감이 벼농사를 짓는 터전으로 작품 곳곳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네모반듯한 논에 익숙한 독자라면 마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다랑논 풍경에 호기심을 느낄지 모른다. 이야기의 중심 소재가 아닌, 그저 배경에 가까운 ‘다랑이’가 당당히 제목에 자리한 이유는 그곳이 이 동화가 지향하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상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몇 군데 남지 않았다는 다랑논은 산에서도 농사를 지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이 산세를 따라 곡선으로 개간한 땅이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한 뼘의 논이라도 더 넓히는 방법이라니, 참 절묘한 이치이다. 산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것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이 자연이나 동물을 가지거나 거느리려 하는 게 아니라, 자신 역시 자연의 일부라 여길 때 진정한 조화가 이루어진다.
『다랑이 마을에 어서 와!』는 그 ‘다랑이’를 꼭 닮은 창작동화다. 등장 동물과 등장 인물들은, 동물과 인간이 사는 곳이 엄격하게 나뉘어야 안전하다 믿는 요즘 도시 사람들이 당황해할 만큼 서로의 영역을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그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내 지혜롭게 균형을 찾아간다.
인간이 보내 온 신기한 초대장
낮잠을 자던 킁킁이에게 두드리가 찾아와, 또 다른 킁킁이가 나타났다고 알린다. 알고 보니 인간들이 천에다 킁킁이를 그려 나무에 걸어 놓았다. 킁킁이와 두드리는 고민 끝에 그것이, 산기슭 다랑논에 사는 빼빼 영감이 보낸 초대장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지난가을, 빼빼 영감은 밭에서 고구마를 뽑아 풀숲에 자꾸만 던졌다. 킁킁이와 두드리는 그걸 아주 맛있게 먹고, 나름대로 보답도 했다.
“킁킁아, 그때 빼빼 영감은 고구마를 같이 먹고 싶었을 거야.”
킁킁이도 이제 생각났어요. 맛있는 건 여럿이 먹어야 더 좋잖아요.
“맞아, 우리도 가을에 알밤이랑 가래 열매랑 도토리랑 조금씩 조금씩 남겨 놨는걸.”
(23쪽)
킁킁이와 두드리는 인간의 글자를 몰라서 알아보지 못했지만, 사실 두드리가 발견한 현수막에는 “멧돼지 출현 주의”라고 적혀 있다. 더구나 빼빼 영감은 큰 멧돼지들이 고구마 밭에 들어가 고구마를 먹어 치우는 바람에, 화가 나서 고구마들을 숲에 던진 거였다. 그런데 어린 동물들은 빼빼 영감이 고마워서 자신들을 초대했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킁킁이와 두드리는 무척 반가워하며 기꺼이 초대에 응하기로 한다. 먹돼지 폭풍이 치는 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린 동물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의 모습
킁킁이와 두드리는 “어른 사람”이 위험하다고 배웠다. 물론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빼빼 영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산에서 나는 것은 모든 동물이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배웠고, 산에 기대어 사는 빼빼 영감은 둘에게 먹이를 나누어 먹어야 하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킁킁이와 두드리가 인간을 가깝게 여기는 건 아니다. 어른 사람이 왜 밤나무를 마구 흔들어, 벌어지지도 않은 밤송이를 억지로 열면서까지 알밤을 독차지하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때가 되면 밤나무가 밤송이를 내줄 테고, 그때는 가시송이가 벌어져 알밤이 톡 떨어질 텐데 말이다. 욕심쟁이 인간이 제풀에 놀라 던져두고 간 알밤은 킁킁이와 두드리, 그리고 온 산의 동물들이 적당히 나누어 먹는다. 그러고도 숲에 남은 알밤은 아마도 나중에 밤나무로 자랄 것이다.
『다랑이 마을에 어서 와!』의 주인공인 너구리 두드리와 멧돼지 킁킁이는 인간과 아주 가까이에 살아서 더욱 오해받기 쉬운 동물이다. 멧돼지는 자꾸만 산을 내려와 민가에 피해를 주는 대표적인 동물이고, 너구리는 도심에서도 주로 관찰되어 광견병에 주의하라고들 한다. 안미란 작가는 오히려 그 너구리와 멧돼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두 동물은 마치 인간이 그러듯, 자신들과 아주 가까이에 사는 인간들을 관찰하고, 인간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오해와 절묘한 이해를 아주 능청스러운 이야기로 풀어냈다. 절로 웃음이 나는 소동들에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린 동물들로부터 자연의 이치를 배운다.
따로 또 같이, 우리는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지
『다랑이 마을에 어서 와!』는 킁킁이와 두드리가 일 년 내내 마을을 누비며 신나게 노는 이야기다. 다랑이 마을은 킁킁이와 두드리의 집이라, 그 둘이 못 갈 곳이란 없다. 동시에 다랑이 마을은 빼빼 영감의 집이기도 하다. 빼빼 영감이 못 갈 곳이란 없다. 하지만 킁킁이와 두드리는 사람 아이들과 다니는 학교를 늘 궁금해하면서도 결코 교문을 넘지 않는다. 한겨울 꿈속에서 킁킁이와 두드리가 함께 찾아간 학교는 무척 재미있는 곳이지만, “고양이 출입 금지”가 떡하니 붙은 곳이기도 하니까.
안미란 작가가 꿈꾸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꿈속 모험이 아니다. 노란 인식 칩을 달고 나타난 아기 반달가슴곰 반달이가 영감의 효소 단지를 깨뜨렸을 때, 빼빼 영감은 위험한 곰을 산에 풀어놓았다고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동물이 살던 데로 먼저 넘어간 건 사람”이라는 말은 영감을 생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얼마 뒤, 빼빼 영감은 산나물을 캐러 나서며 작은 종을 챙긴다.
땡그랑 땡.
찌르레기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랐어요. 뒤따라 다른 새들도 날아올라 멀리 가 버렸어요. 새들은 알아서 빼빼 영감과 적당히 떨어지기로 한 것이에요. 고라니도 토끼도 종소리를 듣고 멀찌감치 떨어져 다른 길을 잡아요. (116쪽)
영감이 동물들이 알아서 피할 수 있도록 종소리를 울리고, 킁킁이와 두드리가 “사람이 다니는 오솔길”을 피해 산길로만 다니는 것. 동물과 사람이 이 세상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함께 살 방법을 궁리하는 태도가 바로 이 작품이 전하려는 진짜 공존의 의미다. 그리고 그것은 동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는 충분히 실현 가능했던, 조금은 너그러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