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알지 않으려는 의지 성찰적 겸연쩍음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 가족만이 최고의 가치 왜 지방대생은 다른 세계를 꿈꾸지 않는가? 왜 지방대생 부모들은 보수적인가? 지방대생과 그 부모들 이야기에서 한국 사회는 무엇을 성찰해야 하는가? 2017년 초여름, 학계를 뜨겁게 달군 논문이 하나 발표되었다. 대구 계명대학교 최종렬 교수가 쓴 이 그 주인공이다. 청년 담론의 사각지대에 놓인 지방대생의 이야기를 전하며 ‘왜 한국 사회는 지방대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가’ ‘왜 지금의 청년 담론은 수도권 중심인가’를 날카롭게 지적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논문은 학술지식 플랫폼 DBpia에서 사회학 분야 논문 이용 상위 1%를 기록하면서 최종렬 교수는 《한국대학신문》과 DBpia가 공동으로 기획한 첫 번째 ‘이달의 연구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열렬한 호응을 받은 최종렬 교수는 논문을 대거 보충해 지방대생을 좀 더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가 이번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다. 책에는 지방대 재학생 이야기가 주였던 논문과 달리 지방대 재학생에 이어 지방대 졸업생들의 삶의 경로를 추적했고, 현재를 살고 있는 지방 청년들이 왜 이렇게 살아갈까 하는 의문에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지방대생 부모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까지 담았다. 연구 대상은 대구 경북 지역의 2, 3위권 대학의 재학생과 그 학교 졸업생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이다. 연구를 하다보니 ‘서울공화국’의 변방으로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지방’의 현실도 눈에 보였다. 지방 대학생들의 삶을 따라가다보니 그 부모들의 삶이 보였고, 그 부모들의 삶에서 살기 팍팍한 지방의 모습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수도권 중심 청년 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한국 사회는 왜 서울 중심으로만 돌아가는지, 지방에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이 얼마나 열악한지, 대구 경북 지방은 왜 이렇게 보수적인지 파악할 수 있는 일종의 ‘지방 보고서’가 되었다. 이 책은 청년 담론뿐만 아니라 지방의, 지방인의 우짖는 소리를 듣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연구의 시작, 한 사회학자의 자괴감 저자는 우연히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는 <복학왕>이라는 웹툰을 보게 되었다. 과장되기는 했지만 자신이 가르치던 학교에서 지난 10년 동안 오랫동안 봐왔던 지방대생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엠티에서 벌어지는 거나한 술판, 복학한 남학생과 신입 여대생의 짝짓기, 계획도 없이 남들 따라 등 떠밀려 떠나는 어학연수…… 웹툰을 볼 당시에는 그저 웃고 넘겼다. 그러나 각종 청년 담론이 온 나라를 휩쓸며 대부분의 청년들이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 ‘몰정치적’이고 ‘자기계발’에만 힘쓰는 동물과 속물일 뿐이라고 비난받자 저자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동안 보아온 지방 청년들의 삶은 그것과 달랐을뿐더러 이러한 비난이 청년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생존’이라는 가치에 붙잡혀 살 수밖에 없다는 지적에는 저자도 뼈아프게 공감했다. 지방에도 생존 경쟁은 벌어지고 있고 서울과 다르지 않게 취업을 위한 경제?경영학과 수업에 학생들이 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자괴감이 몰려왔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학을 가르치는 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9급 공무원이 되어 평범한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게 꿈’인 학생들에게 학과 공부는 뒷전인 채 토익 공부를 하거나 ‘마케팅원론’ 수업을 수강하는 걸 더 이상 비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사회학적 방법으로 청년들을, 지방대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더 나은 세상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다른 세계를 꿈꾸지 않는 지방대 재학생의 이야기 연구의 시작은 재학생들이었다. 여섯 명의 지방대 재학생에게 물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어떤 방식으로 좋은 삶을 추구했는가?’ ‘좋은 삶을 실현하기 위해 일상의 삶에서 무엇을 어떻게 실행하고 있는가?’ 학생들은 ‘선호의 언어’와 ‘가족주의 언어’로 답한다. 적당히 일하면서 가끔 여행이나 다니며 즐겁게 살고 싶고, 부모님과 그래왔듯 자신도 평범한 가족을 이루어 살고 싶다고 말한다. 결국 지방대 학생들에게 최고의 가치는 성취나 성공이 아닌 ‘가족의 행복’이다. 가족을 꾸려 평범하게 사는 것을 꿈꾸는 이들에게 ‘알고자 하는 의지’나 ‘신자유주의 체제’ ‘자기계발 담론’은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 이들이 추구하는 가족의 행복은 지방대생들이 꿈꿀 수 있는 최대의 가치이라는 점에서 패배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다. ‘더 높은 곳으로’ ‘또 다른 세계로’의 삶은 경쟁에 뛰어들어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가능한데 공부를 특별히 잘하지 않았던 지방대생들에게는 “해도 안됐던” 경험이 있다. 경쟁에 뛰어들어봐야 실패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자신이 겸연쩍기는 하지만(‘성찰적 겸연쩍음’)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평범하고 무난하게 ‘가족의 행복’을 꿈꾸니 괜찮다. 간혹 경쟁에 뛰어들기는 한다. 부모님의 등쌀에 못 이겨 9급 공무원을 준비하기도 하고 토익 공부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에 몰입하지 않는다. 몰입하지 않아야만 상처받지 않는다. 또한 경쟁하는 것은 주변의 친구, 선.후배들 사이에 퍼져 있는 습속이 아니다. 친구나 선.후배를 경쟁 상대로 보는 것도 앞으로 계속 더불어 살아야 할 이들과의 유대 관계를 깰 수 있는 위험한 행위다. 결국 모든 일에 몰입하거나 도전하지 않는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편하기도 하다. 보수주의적 가족주의와 나르시시즘적 개인주의 사이, 지방대 졸업생 이야기 하지만 언제까지나 대학생으로 머물 수 없다. 사회에 나가야 하는 순간이 온다. 저자가 표집한 열일곱 명의 졸업생들은 각각 다른 선택을 했다. 서울로 올라가 경쟁에 적극 뛰어들어 생존주의자로 변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가 있는 반면 극도의 경쟁과 고단한 서울살이에 지쳐 지방으로 되돌아온 이도 있다. 지방에 머무르는 경우 낮은 눈높이로 중소기업에 취직해 살아가는 이도 있고 서울보다 더 열악한 지방의 구직 환경 속에서 취업을 포기하고 결혼을 하거나(일명 ‘취집’)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도 있다. 서울에서 생존주의자로 변신하여 몰입해 살아가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졸업생들은 여전히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방으로 내려와 적당주의로 살 길을 모색하는 경우는 물론, 서울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잡은 경우도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그 이유는 지방대 졸업생들에게 기본적으로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이 약하기 때문이다. 지방대 졸업생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자본으로 전환될 만한 문화 교육을 집에서 받지 못했다. 지방 소도시에서 적당히만 해도 부모들은 괜찮다고 말해준다. 서울처럼 기를 쓰고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장도 문화자본으로 삶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지방대생이라는, 떼고 싶지만 뗄 수 없는 꼬리표가 된다. 사회자본 또한 부족하다. 지방대 출신으로 좁은 세계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정서적?사회적 연결망은 부족하다. 결국 지방대 졸업생의 사회자본은 거의 유사 가족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비슷한 이들끼리 주고 받는 정보, 재화, 평판, 정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는 결국 고향 혹은 대학 시절을 그리워하며 더 높고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다. 여전히 지방대 졸업생들은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로 살아가며 ‘가족주의 언어’와 ‘선호의 언어’를 써서 삶의 가치를 설명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아서 부부 중심의 가부장적 핵가족을 꾸리기를 바란다.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