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사람들은 나를 심리학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더 높은 의미에서의 리얼리스트일 뿐이다” 바흐친에 관해 단 한 권만 읽는다면… 최고의 바흐친 전문가들이 쓰고, 성실한 문학 연구자들이 번역한 친절하고 깊이 있는 바흐친 해설서. 바흐친의 문학이론과 사상을 산문학-대화-종결불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개념 안에 녹여낸 연구서이다. 1990년에 출간되어, 2006년 국내에 번역 발간된 후 2016년에 절판된 동명의 책을 복간했다. 바흐친은 끝났다는, 바흐친 이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느낌’은 사실이 아님을 새삼 일깨우기 위함이다. 이론가로서 바흐친은 수명을 다했는가? 다성성, 카니발, 크로노토프 등의 개념은 이제 철 지난 유행어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바흐친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바흐친과 그의 동료들의 주저가 번역되었고, 이어서 홀퀴스트 토도로프의 번역서나 김욱동의 책 등이 안내서로서 등장하면서 바흐친의 이미지가 형성 전파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성성과 카니발 등의 개념이 유행했고, 이를 적용한 논문들이 수도 없이 생산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였다. 라블레 연구서가 번역된 2001년에는 이미 바흐친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져 있었다. 바흐친의 책은 절판되기 시작했고, 그에 관련된 이론적 논의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바흐친은 한국의 연구자들이 강제로 맺어 준 맞수 루카치와 더불어 역사 속에 묻힌 구식 이론가 취급을 받고 있다. 그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격변기에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서 모호한 인상만 남긴 채 국내에서 유행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이 책은 시대적 한계 때문에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바흐친 이론의 현재적 가치를 복원하고 그와 진정으로 ‘대화적 관계’를 맺게 해 준다. 지나친 요약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언제나 긴장을 유지하며 저술된 이 책의 균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이 책은 산문학을 기반으로 대화와 종결불가능성을 양쪽 기둥으로 삼아 구축되는 바흐친 세계의 이미지를 그린다. 이때 산문학은 산문으로 기록되는 대화뿐 아니라 산문적인 우리의 일상 대화 모두를 포함하며, 더 나아가 개인과 사회문화와 문화 장르와 장르 전통과 현대와 같이 심리적·육체적·사회적·공간적·시간적·이데올로기적 ‘경계’와 ‘접촉지점’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그 대상으로 포함한다. ‘시학’에 비해 생소하게 느껴지는 ‘산문학Prosaics’이라는 용어는 바흐친을 산문학의 창시자로 규정지은 이 책의 저자 모슨이 고안해 낸 개념이다. 바흐친의 개념어들이 더 이상 자주 목격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수명이 다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개념들은 바흐친의 말대로 이미 다른 언어, 다른 개념들 속에 대화적으로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그 개념들의 형체는 알아볼 수 없을지라도 최신 이론가들의 작업에서 바흐친의 문제의식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상호텍스트성에서 시작해서 반反아리스토텔레스적 문예학, 아이러니, 패러디, 다문화주의, 타자성 등등으로 이어지는 유행어들 사이에서 바흐친의 개념은 이미 사라진 사다리가 된 지 오래다. 충분한 대화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는 이 책의 특징에서도 드러난다. 이 책은 물론 바흐친의 주요 개념들에 대한 연대기적 추적을 통해 그 입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래서 이 책은 바흐친의 주요 개념들을 습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책의 장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의 특장은 바흐친의 사유 방식을 그대로 저술의 방법론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데에서 발견된다. 말하자면 이 책의 주인공은 분명 바흐친이지만 저자들은 저술 과정에서 주인공인 바흐친뿐 아니라 바흐친 연구자들과의 대화적 관계를 끊임없이 상기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