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하나의 유령이 근대 조선을 배회하고 있다, ‘자살’이라는 유령이!
근대 조선이 버린 사람들이 엮어가는 절망과 희망의 이야기
이 책에서는 1920~1930년대 신문과 잡지를 붉게 물들인 10개의 자살 사건을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근대 조선이라는 시공간이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작동되었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근대 조선을 울린 충격적 자살 사건들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 아픈 진실과의 대면을 피할 도리가 없게 된다. 그 이야기 속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80년 전 조선 사람의 것이 아닌 2008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사실과의 만남을.
♣ 사랑과 배신, 그리고 가장 잔인한 복수
떠나간 사랑을 찾아 상하이로 떠난 조선 여인 이상산이 있었다. 상하이 밤무대 최고의 인기 댄서로 이름을 날리던 그녀에서 뜻밖의 사내가 접근하고, 상산은 독일인 청년 웨셀의 부인으로 행복한 새 인생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서양 귀부인이 찾아와 다짜고짜 상산의 뺨을 후려갈기며 자신을 웨셀의 본부인이라 소개한다. 두 번이나 사랑에 배신당한 상산은 다시 밤무대로 돌아갔고, 그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웨셀의 친구 바톤과 동거를 시작한다. 비록 거짓말을 했지만 상산을 진심으로 사랑한 웨셀은 이 사실을 알고 이성을 잃는다. 친구의 권총을 몰래 훔치고, 바톤의 중국인 하인을 매수해 1934년 8월 13일 새벽 바톤의 집으로 몰래 들어가는데……. 잠시 후 세 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국제 삼각연애는 종지부를 찍는다.
♣ 한 남자를 사랑한 두 여자, 그리고 그녀를 막아선 시대
1933년 7월 27일 오전, 스물셋 젊고 당찬 한 신여성이 칼모틴 한 움큼을 집어삼키고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져든다. 일 년 전만 해도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던 행복한 여성이었다. 남편은 다정한 데다 전도유망한 청년이었고, 부유한 친정에서는 번듯한 집까지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불행의 싹이 움트고 있었으니, 끝을 모르는 시부모의 욕심이었다. 시아버지는 아들 내외 몰래 신혼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맘대로 썼고, 시어머니는 둘을 이간질했다. 결혼한 지 5개월이 흘렀을 때 남편 정성진마저 빈혈로 쓰러졌고, 시어머니의 잘못된 사랑은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윤영애는 당찼다. 남편을 잃었지만 장사를 할 생각을 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시대는 그녀를 용납하지 않았다. 오빠의 단호한 반대로 꿈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죽음으로 몰려갔다.
♣ 죽음을 부른 집단 따돌림 사건
이화여전 학생 문창숙이 학교 뒷산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 언론은 곧바로 사건의 원인을 추적해나갔고, 그 과정에서 부끄러운 사실들이 밝혀진다. 학교 기숙사에서 발생한 20원 도난사건, 문창숙을 의심한 기숙사생들의 집단 따돌림, 무죄를 주장하는 투서를 날조했다는 혐의까지 창숙에게 씌운 기숙사 사감의 과학 수사, “만약 네가 그런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큰일이 아니니까 나한테만 바른대로 말해라. 돈은 선생님이 채워버리면 그만 아니냐.”라는 발언으로 창숙이 ‘중대 결심’을 하게 만든 김상용(<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쓴 시인, 당시 이화여전 문과학장)의 비교육적 태도, 창숙이 아직 숨을 거두기 전에 발견되었음에도 ‘징그럽다’는 이유로 나무에 매달린 그녀를 그대로 둔 이화여전 학생들의 모던걸적 선택까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세운 건 과연 무엇이었는가?
♣ 누구에게 쏜 권총인가
경성 시내 한복판에 출현한, 중국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사내. 어눌한 조선 말투에 허름한 복장의 그가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 경성지점 사옥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잠시 후, 동척에서 피바람이 분다. 총격전 끝에 코너에 몰린 그는 자기 가슴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다. 꺼져가는 생명을 억지로 이어가며 수사를 단행한 경찰 당국은 그가 독립운동가 ‘나석주’임을 밝혀내는데……. 나석주가 어떤 계기로 무장독립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어떻게 경성에 잠입했고, 동척에서 하려던 일은 무엇이었는지가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가슴 아픈 진실이 드러난다.
♣ 대한민국 입시 지옥의 탄생
근대 조선에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도 시험을 치러야 했다. 1935년 한 공립보통학교 시험장에서는 100원권 지폐를 꺼내놓고 그것이 얼마짜리인지 맞히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당시 보통학교 교사 월급이 50원 내외였던 사실을 감안하면, 돈 있는 집안 자제만 선별할 수 있는 탁월한 발상이었다. 비난이 빗발쳤지만 확실한 ‘변별력’을 인정받아, 이 문제는 이듬해에도 출제되었다.
오로지 지원자를 떨어뜨리기 위한 이 제도는 무수한 탈락자를 양산했다. 1922년 해주에서는 보통학교를 탈락한 400여 명의 예닐곱 살 코흘리개들이 학교 운동장을 점거하고 ‘눈물 시위’를 벌이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입시 지옥의 결정판은 단연 중등학교 입시였다. 열서너 살 먹은 학생들은 낮아도 4~5 대 1, 심하면 14~15 대 1의 살인적 입시경쟁으로 내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입시 부담감을 떨치지 못해 실성한 학생, 낙제하면 자살하겠다는 협박성 답안을 혈서로 작성해 제출하여 당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학생, 낙제 후 만주에서 새 출발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난감 권총으로 은행을 털려다 붙잡힌 학생, 낙제의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누나의 금비녀와 금반지를 팔아 술집 작부와 질탕하게 놀다 경찰에게 발각돼 ‘미성년자 끽연 및 음주 금지법’의 최초 희생자가 된 16세 학생 등이 있었다. 사태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 양잿물을 마시고,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고, 벼랑에서 뛰어 내리고, 다량의 칼모틴을 삼켜 자살하는 낙제생들이 속출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 죽음 후에 오는 것들
근대 조선 사회는 끝내 그들을 버렸다. 세상의 끝에 선 그들이 선택한 충격적인 방식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언론은 그들의 죽음을 대서특필했다. 누군가의 죽음은 추악한 진실을 세상에 까발렸고, 누군가의 죽음은 대중의 따분함을 달랬다. 그러나 현실은 강고했다. 그들은 곧 잊혔고, 다른 사건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다. 그들의 죽음이 발굴되었고, 의미가 재조명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되살아났다. 그들은 말한다. 미치도록 살고 싶었노라고, 누구도 자신들처럼 세상과 슬프게 작별하지도 세상에서 허망하게 잊히지도 않길 바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