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에 대한 단연 최고의 묘사”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꿈속처럼 세상을 떠돈다. 그런 그녀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기묘하고 끔찍한 일들을 벌인다. 살인, 납치, 그 밖의 수상한 행동들. 그녀는 내면에 침잠한 채 자신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며, 남아도는 시간에 (행동에 관여할 필요가 없으므로) 도대체 어디서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었는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지금은 그만둔, 그녀에게 화려한 성공을 안겨준 미술에 관해. 이탈리아-아메리카 음식과 같은 길을 걸은 추상화에 관해. 앞뒤 안 맞고 기괴하고 말이 안 되는 글이 가볍게 허용되는 미술계 글쓰기에 관해. 작가 초년생 앞에 열린, 겉보기에는 누구나 입장 가능한 문들에 관해. “아부쟁이, 한물간 사람, 안달 난 사람, 질척대는 사람, 프리랜서 백수”처럼 떠도는 영혼으로 가득한 미술 사교계에 관해. “돈 많고 성공한, 장난감들로 가득한 커다란 작업실을 가진 주로 남성 작가들에게서 발견되는” 작업 동기에 관해. “아원자 입자처럼 불규칙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기는 해도 그저 또 하나의 상품이 되고” 마는 작품에 관해. 예컨대 “폭스콘 노동자가 코카콜라를 쏟은 나이지리아 전통 천을 스캔해, 포토숍에서 임의로 작업한 결과물을 벨기에산 린넨에 인쇄한 뒤 진공 성형된 캔버스 틀에 고정한 작품”처럼 어떤 방법을 택하든 결과물은 다 비슷비슷해서 사실 제작 과정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그녀의 작품에 관해.
“현대 미술과 문학에 대한 깊숙한 선언”
이윽고 “한 아파트 건물의 열린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 쓰레기 처리장에서 일하던 관리인의 목을 조른 뒤, 비상계단을 올라 12층으로 가는 동안” 그녀의 의식은 컴퓨터와 네트워크, 영화의 역사로 이어지고, 미술을 둘러싼 문학, 금융, 건축, 기술의 영역을 배회한다. 이를테면 그녀가 보기에 “시를 조각이라고 본다면 소설은 회화에 해당했다.” 회화와 마찬가지로 소설 또한 말끔한 벽과 테두리를 요구했고, 여기에서 벗어난다고 실패한 소설은 아니었지만, 바닥에 놓인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각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시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나아가 무엇이든 다른 무언가로 변신할 수 있는 현대 미술의 특성은 점점 더 예측하지 못한 영역으로 그녀의 의식을 이끌고, 이제 우리는 모든 예술의 근본이었던 자아와 마주하기 힘든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깨닫게 된다.
미술로서 문학, 혹은 문학으로서 미술
7개 국어로 번역되며 미술계에 반향을 일으켰던 에세이 『확산』(Dispersion, 2002)을 쓴 이래 세스 프라이스는 “오랫동안 소설을 쓰고자 했다. 2013년 여름, 그는 예정된 전시들을 취소하고, 스튜디오 어시스턴트들을 내보내고, 온라인에 기재된 자신의 사진, 기사, 프로필 삭제를 요청하려고 잡지사들에 연락했다. 그리고 소설 쓰기에 착수했다. (...) 1년이 지났다. 그는 250쪽 분량의 소설을 썼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글쓰기를 뒤로하고 다시 본업인 미술 작업으로 되돌아가려 했을 때, 바로 그때, 그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불과 몇 개월 만에 자전 소설 『세스 프라이스 개새끼』를 완성했다.”
이 책의 탄생 배경은 역자가 후기에 밝힌 것처럼 자명하지만, 작중 화자의 말에 따르면 ‘소설’보다는 ‘시’에 가까울 이 작품의 위치는 뚜렷하지 않다. 여러 인터뷰와 자료, 그간 세스 프라이스가 선보인 작업과 출간한 책들을 감안하면 아마 이 작품은 문학보다는 미술적 실천에 가까울런지 모른다고, 추측될 뿐이다.(패션 디자이너 팀 해밀턴과 협업한 S/S 2012 컬렉션은 도큐멘타에서 선보인 바 있으며, 이 책 역시 휘트니 미술관에서 낭독되었다.) 이 모호한 중간 지대, 미술로서 문학과 문학으로서 미술 사이 어딘가야말로 “정답은 없고 모순적 가치들로 가득한 현대 미술의 역설적 성향에 매력과 환멸을 동시에 느끼며 갈등”하는 그녀가 존재하기에, 혹은 끊임없는 가변성과 반복적인 역설로 텍스트의 권위를 부정하는(글을 써 놓고 스스로 개새끼라고 하면 도무지 할 말이 없다) 세스 프라이스와 만나기에 적당한 공간일 것이다.
불가피성에 대한 그녀의 공상들은 모두 외면할 수 없는 물질성, 또는 달리 말하자면 인간적 고통을 고려하지 않았다.(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