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희주의 신작 장편소설 『나의 천사』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희주는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였다. 이후 『환상통』 『성소년』 등의 작품을 통해 사랑의 미추를 낱낱이 밝혀내며 독자적이고 관능적인 작품 세계를 다져 온 그가 『나의 천사』에서는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그 덫에 걸린 사람들을 조명한다. 그는 사랑에는 늘 증오가 따라붙기 마련이듯, 아름다움에도 항상 끈적하고 징그러운 욕망이 등을 맞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의 천사』는 한때는 ‘로봇’, ‘장난감’ ‘섹스봇’으로도 불리었으나 그 아름다움 때문에 결국 ‘천사’라 일컬어지게 된 창조물이 일상이 된 시대를 그린다. 아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를 그대로 내버려만 두는 부모를 원망하는 것도 모자라 바보 취급하고, 어른들은 각자 미의 극치라 여기는 형상이 완벽에 가깝게 구현된 천사를 구매해 동반자로 삼으며, 아름다움은 노골적인 권력이 된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얇은 막 너머의 파국을 예감하면서도 멈출 수 없다.”는 소설가 조예은의 말처럼, 나만의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독점욕이 마음속에 꽃피는 순간 파국은 이미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끝을 보고 마는 욕망의 속성처럼 계속해서 내달리는 『나의 천사』는 어쩌면 지금의 우리를 비추는 잔인한 거울일 것이다.
“나, 천사를 봤어.”
열세 살의 같은 반 친구 환희, 미리내, 유미는 동네 아파트 단지에서 목격되었다는 ‘천사’를 마주치기를 열망하며 놀이터에 모인다.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욕망이 부끄럽기는커녕 지극히 당연한 시대, 절대 미(美)의 표상이라는 천사에 대한 소문은 욕망들 사이를 자유롭게 누비며 퍼져 나간다. 누구나 천사를 둘러싼 도시 괴담에 대해 알고 있다. 첫 번째, 천사 중에서도 ‘진짜 천사’라고 일컬어지는 ‘자비천사’라는 존재가 있다. 두 번째, 자비천사를 만나면 그 얼굴은 목격자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형상으로 나타나며, 그러므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마지막, 자비천사의 목격자는 아름다움을 본 대가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세 친구는 얼마간 각오하는 마음으로, 또 얼마간은 의심하는 마음으로 환희가 천사를 보았다는 창문 쪽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이 목격담이 거짓말쟁이 환희의 또 다른 거짓말은 아닐까? 목격한다손 치더라도 유미와 미리내가 평소 그러하듯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쳐 버리는 건 아닐까? 의심과 기대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어느 오후의 놀이터, 세 친구를 향해 한 창문이 반짝, 하고 빛을 낸다.
“빼어난 기계는 사람을, 빼어난 사람은 기계를 닮는다.
그렇다면 둘 중 더 아름다운 건 무엇일까?
정답. 보면 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때, 그 말은 학습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무작정 따라하듯, 큰 눈과 긴 다리를 바라보며 아름답다 말하게 되는 것 역시 언젠가 어른들이 하던 말을 보고 배운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사의 시대’의 아이들은 자라나며 스스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깨친다. 수많은 종류의 ‘천사’ 제품 중 하나를 골라야 하고, 고른 ‘천사’를 보다 취향에 맞게 커스텀하기까지 하는 시대에는 더 이상 주관 없이는 아름다움을 논하기가 어려워졌다. 한편, 완벽한 아름다움을 잘 알게 되면서, 도저히 그만큼은 아름다워질 수는 없는 스스로를 향한 증오도 나날이 깊어져 간다. 미와 증오를 동시에 싹 틔우며 자라나는 아이들은 자신이 완성해 낸 고유한 아름다움에 종속되며, 이를 지키는 데 생까지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저택을 등지고 서자 이걸 위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많은 ‘천사’를 손수 만들어 낸 장인 ‘선우판석’. 그의 작업실은 ‘장미 저택’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장미 넝쿨로 만들어진 미로를 통과해야 이를 수 있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천사의 장인답게 보안보다는 낭만 쪽을 택한 선우판석에게는 명성만큼 수많은 루머가 뒤따른다. 후배의 디자인을 갈취했다는 증언, 아름다운 소년들이 모여드는 장미 저택의 여름 캠프에서 저녁식사 시간마다 벌어진다는 일에 대한 공공연한 추문, 저택 출신 소년들은 반드시 불운한 결말을 맺게 된다는 비극적인 소문까지. 루머가 사실임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증언자들이 간혹 직접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선우판석의 자리가 내내 굳건했던 까닭은 아름다움이라는 미명 하에 많은 것들이 지워지거나 가려진 덕분이었다. 그러나 수면 아래 부글대는 의혹들은 언젠가 끓어올라 바깥으로 넘쳐흐르는 법. 아름다움에 종속돼 일그러진 아이들은 언젠가 이 어둠이 세상에 낱낱이 드러날 날을 기다린다. 그때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어느 쪽일까. 그때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이라 부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