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건에 '왜' '어떻게' 매혹되는가?
"디자인에는 우리의 경제체제도 반영되어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이 남긴 자국도 보인다.
그것은 일종의 언어이자,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들의 반영이다."
매혹적인 물건은 오늘날 도처에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유혹되듯, 그것들을 소유하고자 분투하며 산더미처럼 높이 쌓인 물건들 속에서 허우적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왜 아이폰을 사기 위해 매장 밖으로 줄을 서고, 계절마다 변화무쌍한 프라다 지갑의 화려한 광고에 열광하며, 폴크스바겐의 골프 GTI을 몰고 싶어 안달하는가?
런던 디자인 뮤지엄 관장인 데얀 수직은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면 사물이 가진 언어, 즉 디자인을 유심히 살펴보라고 말한다. 디자인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예술과 상업과 디자인이 교차하며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오늘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살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곧 사물의 언어는 인간이 만든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인 것이다. 데얀 수직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방식을 명쾌하게 제시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열쇠를 쥐어준다.
1장 「언어」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에르네스토 나탄 로저스는 숟가락 하나를 꼼꼼히 살펴보면, 그것을 만든 사회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물건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만드는 디자인이 현대 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 언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런지를 고민하는 것 또한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를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2장 「원형」에서는 끊임없이 원형들을 창조하고 새로운 물건들의 범주를 만들어내는 물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최초의 미니와 몰턴 자전거처럼 탁상용 조명 스탠드의 첫 사례로 자리 잡은 앵글포이즈와 티치오, 발터 PPK 자동권총의 총신을 의도적으로 상기시키는 폴크스바겐의 골프 GT 시리즈, 전화기나 라디오에서 카메라까지……. 각자의 원형을 지닌 온갖 다양한 물건들을 제거해 흡수해버린 휴대폰에 대한 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3장 「호사」에서는 토머스 치펜데일의 아름다운 18세기 저택부터 프리미어 리그 축구 선수가 모는 벤틀리 아르나지까지, 과거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호사의 의미와 가치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사치와 호사가 만연한 오늘날에 이어 앞으로 그 역할이 또 어떻게 확장되고 새롭게 변형되어갈지를 살펴본다.
4장 「패션」에서는 미술과 건축뿐만 아니라 디자인 전체를 아우르게 된 패션의 거대하고도 화려한 세계로 안내한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함께 특별한 패션쇼장을 지어놓고 영화배우들과 뮤지션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옷을 입힌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예술적인 모습의 매장과 진열 공간이라는 세련된 방식으로 디자인의 언어를 구사한다. 예술과 디자인을 이해하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패션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5장 「예술」에서는 우리가 쓸모 있는 것보다 쓸모없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경향이 있음을 환기하고, 그 유래와 현상을 흥미롭게 파헤친다. 1980년 초부터 소수의 취향을 타깃으로 한 이른바 '갤러리 디자인'의 시장 규모는 눈에 띄게 커졌고, 기능에 얽매이지 않는 갤러리용 디자인을 사려는 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로써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에 대한 옛 기준은 뒤집어졌다. 헤릿 리트벨트의 레드?블루 체어는 유용하다는 오점(?) 때문에 몬드리안 그림의 가격에 한참을 뒤떨어지며 빛을 잃는다. 디자인과 예술 사이,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물건과 우리 사이의 흥미롭고도 위험한 관계는 앞으로 살아갈 시대에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사물의 체계와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해 면밀하게 분석한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데서, 독창적인 시각으로 일상적인 사물의 세계를 밝히는 이 책의 의미가 크다.
데얀 수직은 대담한 디자인의 예들을 통해 사물들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낸다. 사물에 대한 그의 철학적 사유도 예리하지만, 기꺼이 자신 일상에서 겪은 경험과 사색(비닐쇼핑백으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는 에르메스 백에 무시무시한 액수의 돈을 쓴다는 것이 자해 행위로 느껴졌음에도, 자신도 하나 사고 싶었다던)들을 끌어내는 재치도 유쾌한 공감을 일으킨다.
세상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지만 시대는 계속되는 경제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잘 만들어진 물건들은 쏟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 의미와 가치가 왜곡되는 경우 또한 넘쳐난다. 저자는 80년 전 대공항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선택한 처방을 다시 상기한다. "우리 모두가 소비를 통해 대공황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국가를 위하는 의무다."
그때와 똑같은 지점에 와 있는 지금이야말로 디자인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