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참고서인가? 공부하는 사람은 많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없는 시대 온몸으로 읽는 수도사들의 읽기를 소개하다! 20세기 최고의 사상가 이반 일리치 독서법에 관한 최초의 책을 통한 오늘날 읽기 성찰!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타임스), “어떤 위치에서든 총을 겨눌 수 있는 지식의 저격수”(뉴욕 타임스),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명”(가디언) ……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는 수많은 수식어를 동반하는 논쟁적인 사상가이다. 12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사회학, 철학, 신학, 역사학, 과학기술 등 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쳤고, 살아 있는 인간의 복원을 위해 주류적 흐름에 반하는 대항 연구와 지식 운동을 전개하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현대의 모순과 비인간화된 사회를 폭로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학교 없는 사회』, 『병원이 병을 만든다』, 『전문가들의 사회』 등을 통해 ‘학교가 교육을 망치고’, ‘병원이 병을 만들고’, ‘전문가들이 우리를 불구로 만든다’라는 급진적인 메시지를 던져왔다. ‘일리치 열풍’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책과 사상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지만, 생애 후반 20년은 잊혀진 듯했다. [“1970~1980년대 한동안 일리치 열풍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일리치를 읽지 않는 듯하다”(평화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 2002년 사회적 모순에 대한 그의 첨예한 비판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어 언론들은 새로이 일리치를 언급하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이반 일리치 전집’이 출간, 그의 사상을 탐구하는 철학 강좌가 열리는 등 그의 목소리가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전혀 나아지지 않는 현대 사회의 각박함이 일리치를 21세기로 ‘강제 소환’해 고전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국내 처음 소개되는 일리치의 대표작 『텍스트의 포도밭(In the Vineyard of the Text)』(1993)은 흥미롭게도 독서에 관한 책이다. 일리치는 12세기 수도사 후고가 쓴 『디다스칼리콘(Didascalicon)』을 해설하며 포도 맛을 음미하듯 읽는 지혜로운 책 읽기의 전범을 보여주고, 그 이후 12세기 전반에 걸친 책의 탄생과 책 읽기의 변화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한다. 일리치는 읽는 방식이 곧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무미건조하게 지식을 습득하는 용도로 전락한 현대의 독서법, 많은 지식과 가벼운 읽을거리로 가득한 인터넷 공간을 비판하며 오늘날 ‘읽기’에 관해 대담하고 근원적인 통찰을 보여준다. 수도원의 포도밭, 그 달콤한 포도 맛처럼 풍성한 텍스트 읽기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디다스칼리콘』은 12세기 대수도원장이자 학자였던 성 빅토르의 후고Hugues de Saint-Victor가 1128년경에 쓴 독서법에 관한 최초의 책이다. ‘디다스칼리콘’은 그리스 말로 ‘공부’, ‘학습’을 의미하며, 후고는 이 책 전반부(1~3장)에서 일곱 가지 자유 학문을, 후반부(4~6장)에는 ‘성경’ 읽기를 다룬다. “구해야 할 모든 것 가운데 첫째는 지혜다.”라고 시작하는 첫 문장은 『디다스칼리콘』의 핵심 주제로, 후고는 궁극적으로 지혜로운 읽기, 신의 목소리를 듣고 깨달음의 기쁨을 경험하는 읽기를 권한다. 수도사들은 마치 수도원 포도밭에서 딴 포도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하듯 글을 한 줄 한 줄 맛보았다. 당시 읽고 배운다는 것은 수확한 포도의 달콤함에 비유될 정도로 기쁨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은 성경을 읽다가 “거룩한 이해의 달콤함을 맛볼 때면 그것은 정말로 꿀이다.”라고 기록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수도사들에게 “성경을 읽어라. 그것이 모든 꿀보다 달콤하고, 어떤 빵보다 맛있으며, 또 어떤 술보다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권했다. ‘텍스트의 포도밭’이라는 제목도 이 은유에서 지어진 제목이며, 실제로 페이지를 뜻하는 라틴어 파지나pagina는 포도 덩굴시렁에서 유래했다. 기억력 훈련은 읽기의 전제 조건! 온몸으로 읽는 낭독의 재발견 당시 수도사들은 입으로 소리를 내며 글을 읽었고 주위를 기울이며 귀로 그 소리를 포착했다. 수도사들에게 “읽기는 주마등 같은 면은 훨씬 덜하고 신체적인 면은 훨씬 강한 활동”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박동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글을 이해했고, 기억했고, 그것을 다시 생각할 때는 입안에 넣어 씹는 것과 관련지었다. 여러 자료에서 수도사들이 중얼거리고 우적거리는 사람들로 묘사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낭독은 텍스트를 몸에 완전히 새기고 암기하는 데 탁월했다. 후고는 아주 열심히 읽어서 책장을 넘기지 않고도 바로 세세한 것들까지 기억할 수 있는 수준의 공부를 권했다. 지금의 책과 다르게 당시의 책은 알파벳 순서에 따른 배치나 장章 구별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원하는 구절이 있어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통으로 암기하는 편이 효과적이었고, 기억력 훈련이 읽기의 전제 조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중 연설가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싶은 문장을 마음속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도 암기는 필수였다. 『디다스칼리콘』에서 기억 훈련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기억을 찾아 꺼내 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학생에게 익숙한 정신적 라벨을 각각의 기억에 하나하나 붙이는 것이라는 사실은 일찌감치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 기계적인 암기를 위해 염소나 해, 가지나 칼에 문장을 하나씩 붙여놓았다. 연설이나 논쟁을 위해 이렇게 궁전을 갖추어놓은 저자는 그냥 적당한 상상의 방으로 옮겨 가 한눈에 라벨이 붙은 물건들을 파악하고, 자신이 그런 상징들과 연결시켜놓은 기억된 공식들을 바로 꺼내 올 수 있었다.” _본문에서 조선시대 서당 아이들이 음과 뜻을 큰 소리로 낭독하여 암기하던 것이 떠오른다. 실제로 동양에서도 읽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이었다. ‘독서讀書’는 원래 소리 내어 읽는다는 뜻으로, 한자를 살펴보면 그 안에 ‘말씀 언言’이 들어 있다. 눈으로만 보는 것은 ‘간서看書’라고 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오랫동안 인류는 소리 내어 책을 보았고 몸 안에 텍스트를 넣어 궁극적으로는 몸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도달하고자 했다. 말 그대로 책을 체현하고 육화한 것이다. 이처럼 읽기는 수동적이고 정적인 활동이 아닌 온몸을 사용하는 신체 활동이었다. 그러다 오늘날의 ‘책’이 탄생하면서 독서는 이런 ‘수사’들의 방식에서 ‘학자’들의 방식으로 변화한다. 책의 탄생은 어떻게 ‘읽기’를 바꾸었는가? 읽는 방식이 완전히 전복된 12세기 중세를 돌아보다 읽기의 오랜 역사 중 일리치가 12세기를 선택한 것은 이때 오늘날의 ‘책’이 탄생했고 이에 따라 읽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책이 있었지만, 오늘날의 책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과거의 책은 첫 문장이 입구 역할을 하는 긴 복도와 같았다. 누가 어떤 구절을 찾고자 책을 넘긴다 해도 찾을 확률은 매우 낮았으며 내용은 첨가를 통해 뒤로만 늘어날 수 있었다. 책 제목이 따로 있지 않아 ‘인시피트incipit’라 부르는 첫 문장이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되었고, 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알파벳 순서에 따른 배치, 주제 색인, 훑어보며 읽기에 적합한 페이지 레이아웃, 내용에 따른 장章 구별 등은 12세기에 이르러 생겨난 테크놀로지이다. 여전히 인쇄된 책이 아니라 필사본이었지만, 기술적으로 이미 상당히 다른 물건이었다. 15세기 인쇄술은 12세기 필사자들이 이루어놓은 변화를 기계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책의 탄생은 어떻게 읽는 방식을 바꾸었는가? 후고 세대 이후의 학생들은 몇 년 공부로 수도사가 평생 정독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수의 책을 읽게 되었다. 온몸으로 읽었던 수사의 읽기가 눈으로 보는 학자의 읽기가 되었고, 수도원 안에서 집단으로 낭독하던 읽기는 개인적인 묵독으로 바뀌었다. 포도밭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