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오늘날 우리 삶의 거푸집으로 존재하는
거대 도시의 인공 공간들에 대한 내밀한 성찰의 기록이다.
급변하는 대도시, 날로 비대해져가는 메트로폴리스,
맹진하는 속도와 휴식 없는 노동과
번들거리는 물신의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무국적의 글로벌폴리스.
과연 이 변화는 무엇이며,
이 속에서 건사되는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서문〉중에서
우리의 삶이 퇴적되어온 현대의 유적, 도시의 인공 공간
문화평론가 정윤수가 직접 보고 느끼며 발굴한,
한국 도시 공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도시는 거대해졌고 인간은 왜소해졌다. 인공 공간은 찬란한 빛을 발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점점 주눅 들고 있다. 광화문광장을 비롯하여 도처에 ‘구경거리’가 늘어나지만 하나같이 키치적인 ‘관상용’으로 조잡하게 배열될 뿐이며 그 사이로 한낮의 소일거리를 찾아 나선 인간은, 풍경이 영혼 깊숙이 드리워지는 본질적인 위로를 얻지 못한 채, 그저 인증샷을 찍고 돌아선다. 경관이 해체되고 풍경이 사라지고 그 속에서 애틋하게 이뤄졌던 사람살이의 인연마저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말끔히 정제되고 마는 거대 도시의 인공 공간! 우리에게 과연 인간적 삶이란 가능한가?” -〈서문〉중에서
거대한 도시 공간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일상의 풍경은 자연의 것이기보다는 인공의 구조물인 경우가 많다. 줄지어 선 빌딩 사이를 거닐고, 인공의 공간 안에서 사람을 만나고 일하고 노는 도시인들, 심지어 떠나고 도착하는 터미널도 인공의 공간으로 귀결된다.
이렇듯 언젠가부터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든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졌고, 대부분의 기억과 추억도 공간이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 역시 세월과 함께 나이를 먹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며, 자신만의 생사고락을 써나가고 있다. 도시는 그렇게 공간의 역사를 품은 거대한 이야기책이 되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는 이러한 현대 도시 공간의 모습을 ‘인공 낙원’이라 칭하며, 같은 제목의 책을 펴냈다. 도시 공간은 우리의 모습을 오롯이 담고 있는 동시에, 벗어나고 싶다가도 속하고 싶은 아이러니한 낙원의 모습으로 우리를 감싼다고 그는 말한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논설위원, 클래식 음악과 문화예술 강연자, 축구 칼럼니스트 등 현대의 문화예술과 인간적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가르쳐온 정윤수는 『인공 낙원: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광장, 극장, 모델하우스, 모텔, 카지노 등 우리의 삶이 퇴적되어온 현대의 유적, 도시의 인공 공간을 직접 발로 뛰며 탐사한 성찰의 기록을 담았다.
그동안 건축과 공간에 대한 다양한 책이 나왔지만, 저자는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우리만의 도시 공간과 그 안에 닮긴 삶의 궤적을 담고자 하였다. 이 책에는 건축물을 그럴싸하게 담아낸 포스터 같은 사진이 없다. 그가 직접 찾아가 인간의 눈높이에서 살아 있는 순간을 포착한 것들이 전부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있고 일상의 풍경이 시큼할 정도로 꾸밈없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위해 근 10년 동안 꾸준히 취재하고 사진을 찍은 만큼, 그동안 미묘하게 변화된 도시의 인공 공간과 그 안의 사람들 모습이 잘 포착되어 있다.
20세기를 마치고 21세기에 접어들어 거침없이 그리고 정신없이 달려오던 우리의 삶과 표정이 담긴 책, 이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유일한 기록을 펼친 진귀한 책이기도 하다.
환호와 환멸이 공존하는 열한 곳의 인공 낙원을 찾아가다!
도시는 거대해졌고 인간은 왜소해졌다!
여기 이곳에서, 우리에게 과연 인간적 삶이란 가능한가?
저자는 총 열한 곳의 거대 도시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 안에 크고 작은 공간들을 포함시켰다. 인간적 호흡이나 관계가 끊어지고 새롭게 조성되는 거대한 인위적 공간들, 광화문광장이나 인천공항 같은 시대의 랜드마크부터 아파트 모델하우스, 백화점, 테마파크, 카지노, 모텔처럼 도시인들의 이런저런 욕망이 맞닿은 공간과 함께 내밀한 삶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는 ‘나’를 둘러싼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해,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도시 공간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묻는다.
광장, 일그러진 구경거리와 균형 잃은 삶 - 광화문광장
광화문 앞에 새롭게 조성된 광화문광장은 ‘역사성의 회복’이라는 당위를 들며 추진되었다. 저자는 건널목을 건너야 들어갈 수 있는 광장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광화문 앞까지 ‘걸어가도록’ 조성된 공간을 살펴본다. 왕이 다스리던 시절을 복원하고 싶은 이곳은 시민을 위한 곳이 아닐 때도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주요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은 광화문광장을 사전에 장악한다.
지하철로 이어지는 해치마당에는 서울시의 홍보물이 쉴 새 없이 영사되는 이곳,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허가’의 공간으로 보고 있다. 시민이 모이는 ‘아고라’가 아닌 ‘국가 상징의 공간’이 된 광화문광장.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소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광장으로 들어서 땅에 키스를 한다면 경찰에게 제지를 당할지도 모르는 곳이다.
“광화문광장이 ‘국가 상징의 축’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그 안의 조형물과 이벤트는 프레임 바깥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시선과 이미지도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국가 상징’에 부합하는 조형물과 이벤트만이 허용되는 관제 광장, 시민의 일상 공간이 아니라 ‘국가 상징의 축’으로 기능해야만 하는 광장, 그것이 광화문광장의 일그러진 운명이다.”
극장, 판타지 너머의 현실 - 단성사, 명보극장에서 메가박스, CGV까지
저자에게 극장은 특별한 공간이다. 젊은 시절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학교를 벗어난 그는 산재된 극장들을 기점으로 도시를 순회하던 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보아온 극장의 연대기를 이 책에 펼쳐 보인다. 단성사,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서울극장 같은 단관 개봉관들은 멀티플렉스에 밀려 사라졌거나 나름의 변신을 시도하였다. 극장은 이제 영화만 보는 곳이 아니다. 소비하고 산책하는 경로의 중심에 위치한다. 오늘날 도시의 극장은 쇼핑몰 안에 있는 인공의 낙원이다.
“오늘날 극장은 거대한 복합 쇼핑몰 안에 위치하여 대도시 관객의 일상 시간을 끝없이 확장한다. 멀티플렉스의 동선은 일체의 ‘외부’를 허용하지 않는다. 복합 쇼핑몰의 식당, 게임장, 쇼윈도, 카페 등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한 세대 전에 사람들은 영화를 본 후 공원이나 거리를 산책했다. 그런데 이제는 거대한 쇼핑몰 안에서, 쇼윈도 사이로, 산책한다.”
모델하우스, 가설무대의 삶 - 한강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래미안 갤러리까지
한국에서 중산층이 또는 중산층이 되려는 이들이 가장 욕망하는 것은 아파트다. 그 꿈의 견본품은 도심이든 외곽이든 절묘한 곳에 세워져 사람들을 유혹한다. 모델이 된 집. 모델하우스다. 1969년 서울 한강변 동부이촌동 한강아파트부터 시작된 모델하우스는 이제 래미안 갤러리, 힐스테이트 갤러리, 자이 주택문화관, 두산 아트 스퀘어 등으로 진화하였다. 그사이 아파트는 1차, 2차를 달던 이름에서 진달래, 개나리, 달빛이라는 수식어를 이용하다가 이제는 푸르지오, 래미안, 자이 같은 브랜드 중심으로 개편되었다. 저자는 화려한 모델하우스의 정면으로 들어가서 가건물의 외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뒷면으로 나온다. 어느 모델하우스든지 그 주차장은 한적하여 쓸쓸한 모습이다.
“대도시의 네거리마다 요란한 치장으로 서 있는 모델하우스는 한곳에 정박하지 못하고 끝없이 떠도는 우리 삶의 불안정성을 잘 보여준다. 모델하우스는 그 자체가 임시 가설물로 언제든지 쉽게 짓거나 철거할 수 있고 다른 벌판으로 손쉽게 이전할 수 있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