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포스트휴먼 사회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국내 최초의 시몽동 철학 연구서
시몽동은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의 흐름 아래 묻혀 있다가 1990년대 이후 정보기술과 융합과학 시대의 부상과 더불어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 철학자다. ‘개체화’와 ‘기술’을 핵심 개념으로 삼고 있는 시몽동의 사유 특징은 한마디로 양립 불가능하고 불일치하는 것들 사이에서 공존과 소통의 새로운 관계 방식을 찾아내는 데 있다.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기술의 창조적 융합을 지향하는 현대 학문의 초학제적 경향과 정보통신기술의 초연결 시대에 상응하여, 무엇보다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적합한 개념적 도구들이 요구되는 이 시대에 시몽동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 책은 특히 ‘기술’에 초점을 맞춘 국내 최초의 시몽동 철학 연구서다. 시몽동의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2011)를 번역한 이래, 저자가 몇 년간 천착해 온 연구 내용들의 중간 결집물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인터넷도 등장하기 이전인 1950~60년대 시몽동의 기술철학을 첨단정보기술 시대에 상응하는 새로운 기술철학의 모델로 부각시키고, 도래하고 있는 포스트휴먼 사회를 위한 하나의 청사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탁월한 기계들이 인간을 지배할지 모른다는 SF적 상상력과 기술 발달에 의한 인간 소외의 여러 문제들은, 시몽동에 따르면,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방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기술적 대상들과의 부적합한 관계 방식에서 비롯한다. 저자는 존재, 발명, 정치, 미학, 포스트휴머니즘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인간과 기술의 상호 협력적 관계에 대한 시몽동의 관계론적이고 기술정치학적인 통찰들을 분석하여 해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시몽동은 하이데거, 마르쿠제, 엘륄 등의 기술 비판적 태도와 대결하고, 발명과 노동에 대한 이해에서 베르그손이나 마르크스와 교차하며, 들뢰즈, 과타리, 라투르 등과 더불어 새로운 휴머니즘의 가능성으로 증폭되고 있다.
시몽동의 기술철학, 기술미학에서 포스트휴먼 사회의 전망을 도출하다.
1장은 시몽동의 기술철학이 전제하고 있는 개체화론을 개관한다. 개체화론은 실체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사유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며 개체의 발생과 생성을 질료형상도식이 아닌 정보와 변환 작동에 의거하여 해명하는 시몽동 철학의 요체다. 자연물도 아니고 인공물도 아닌 기술적 대상의 존재 방식은 바로 이 개체화론에 근거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2장은 단순 도구나 보철물로 환원될 수 없는 기술적 대상 고유의 발생과 진화의 법칙을 해명한다. 기술적 대상의 자율성은 인간을 지배하고 위협하기는커녕 인간과 자연을 소통시키고 인간과 인간을 관계 짓는 변환적 매체로 기능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3장은 기술적 활동의 특성이자 사회 변혁의 원동력인 시몽동의 독특한 발명 개념을 특히 베르그손과의 비교 고찰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4장은 기술적 활동의 혁명적 역량을 강조하고 낡은 노동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비판하는 시몽동의 기술-정치학적 측면을 밝힌다. 기술, 노동, 소외의 관계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와 차별화되는 시몽동의 현재성이 드러난다. 기술적 대상들을 매개로 개방되는 개체초월적 집단성에 대한 시몽동의 사유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의 양극단(부의 축적을 겨냥하는 기술낙관주의, 소외와 고립에 주목하는 기술비관주의)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휴머니즘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5장은 시몽동의 기술미학을 다룬다. 시몽동은 하이데거나 벤야민과는 다른 지점에서 기술의 미학적 역량을 긍정하며, 기술미학적 작품들이 신성한 것과 기술적인 것을 통합하고 인간의 삶을 자연의 신성함과 관계 맺게 해준다고 높이 평가한다. 시몽동과 마찬가지로 사이버네틱스와 정보기술에 주목했던 백남준의 작품들이 기술미학의 한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마지막 6장은 시몽동의 기술철학으로부터 포스트휴먼 사회의 전망을 도출하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앙상블―새로운 포스트휴먼 주체성의 모델의 발견
포스트구조주의의 비판적 해체 작업에 따른 안티-휴머니즘과 인간의 죽음 이후, 인간 중심주의의 낡은 휴머니즘으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첨단 기술에 기초한 인간-비인간 하이브리드들을 새로운 실재로서 긍정할 수 있는 포스트휴머니즘의 모색이 요구되고 있다. 인간의 절대적 본성과 자유주의 휴머니즘에 대한 환상이 깨진 이후, 새로운 인간의 형태와 대안적 삶의 양식을 과연 어떻게 발명해야 하는가? 저자는 트랜스휴머니즘을 비롯한 현 단계 포스트휴먼에 관한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인간 신체의 사이보그화로 환원되지 않는 시몽동의 개체초월적인 인간-기계 앙상블에서 새로운 포스트휴먼 주체성의 모델을 발견한다. 기술유토피아나 기술디스토피아의 양극단을 넘어서, 인간과 기술의 공진화 관계에 기초한 시몽동의 새로운 휴머니즘은 들뢰즈, 과타리, 라투르 등의 사상과 더불어 증폭되면서 포스트휴먼 사회를 위한 하나의 청사진으로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