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제를 통해 본
현대 사회의 진단 및 비판!
왜 다시 프랑크푸르트 학파인가?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한국 사회의 지성계와 진보 진영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외침에 귀 기울인 적이 있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침묵하던 서구 여러 나라,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과 일본 심지어 미국에서 터져나온 68 운동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한 체계적인 소개가 아니라, 주로 에리히 프롬이나 허버트 마르쿠제의 글을 통한 일면적인 소개였다.(부분적으로는 맑스주의의 이해를 위하여) 당시에야 비로소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한 연구가 이 땅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그후 아도르노나 하버마스에 대한 번역서와 연구서들이 간행되었으나, 80년대 후반 이후의 진보 진영과 노동 운동에서는 ‘노동자 및 농민 등의 근로 민중에 기초한 혁명 운동’이라는 담론이 주류를 이루면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제들은 논의의 주변부를 배회하게 된다. 그리고 곧바로 뒤이은 90년대 초반의 소련 등의 동구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몰락으로 말미암아 맑스주의 운동은 물론, 맑스주의 이론의 현실 적합성마저 부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진보 진영의 이론적 헤게모니는 포스트모던이즘/포스트구조주의의 미쉘 푸코,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등에게로 넘어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제들은 낡은 것인가?
한국 사회는 1987년 시민 항쟁 이후로 적어도 형식적 민주화를 성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군부 독재가 이 땅에 발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동안 영국, 프랑스 등의 서유럽에서나 볼 수 있던 ‘대의 민주주의’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부족하긴 하지만 사회 보장 등의 복지 정책을 내걸지 않고는 어느 정파도 집권할 수 없게 되었다. 걸음마 단계이나 ‘시민 운동’도 여기저기서 확산 일로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과거 식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지향한 혁명 운동을 주장한다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생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근로 민중의 풍요로운 삶의 질이 보장되는 실질적인 민주화(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열풍 속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양극화를 저지하기 위해서도)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 특히 아도르노와 하버마스 그리고 호네트의 연구에서 많은 시사점을 챙겨야 할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제들은 무엇인가?
1. 막스 호르크하이머
그는 철학, 사회학, 정치학 등의 부르주아적 분과 학문의 틀을 벗어나 이를 하나로 통합한 학제적interdisciplinary 연구를 통해 ‘비판 이론’을 창안하였다
2. 테오도르 아도르노
레겔의 ‘부정 변증법’을 통해 교환 가치로 양화하여 질적 차이를 배제하는 자본주의 사회 및 문화의 이데올로기를 지속적으로 비판하였다.
3.발터 벤야민
비록 이론적으로는 미완성이지만 현대 자본주의 문화 이론의 형성을 위한 프로젝트를 감행하였다.
4.허버트 마르쿠제
루카치G. Luc?cs, 코르쉬K. Korsch, 그람시A. Gramsci 등과 더불어 제2인터내셔널의 입장을 철학적으로 비판하고, 그 대신에 맑스주의에 내재하는 헤겔의 변증법적 측면을 복원하여 맑스주의에 새로운 활력(‘휴머니즘적 맑스주의)을 불어넣는다.
5.에리히 프롬
전통적인 맑스-레닌주의에서 주장하는 생산 수단의 국유화/사회화로는 ‘인간주의적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없다. 인간의 변화에는 ‘도덕적’ 요소가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인간의 자기 변혁과 관련하여 프로이트 등의 여러 철학이 맑스의 사상보다 시사하는 게 많다고 주장하였다.
6.위르겐 하버마스
프랑크푸르트 학파 1세대 비판 이론의 비관주의적인 시대 진단을 비판하면서 ‘생활세계의 식민화’라는 시대 진단에 근거하여 토의 민주주의론을 중심으로 한 진보 정치의 기획을 제출하였다.
7. 악셀 호네트
새롭게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재건한 뒤에 친밀성 영역에서 동등하고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정치적 영역에서 주권적인 의사 결정 주체로서, 경제적 영역에서의 동등한 생산 주체로서, 문화적 영역에서 개성적인 자아 형성 주체로서, 국제적 영역에서 세계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인정, 다시 말해서 ‘5대 인정’을 통해 ‘병리적’ 사회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