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주치의는 내게 객사를 권했다.”
살아야 한다, 살 수 있다, 이 믿음 하나로 시작된 여행.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찾아 떠나듯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긴 여행길에 나섰다
삶을 찾아 떠난 여행, 그리고 20년
죽음 앞에서 총총히 빛난 길 위의 아포리즘
살아야 한다. 살 수 있다.
이 믿음 하나로 여행을 떠났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찾아 떠나듯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긴 여행길에 나섰다.
3천 년 전에 쓰인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다>에는 죽음의 호수에서 다르마의 질문에 유디스티라가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르마는 묻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유디스티라는 대답한다. “매일같이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은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이오.”
여행은 어떻게 죽음을 삶으로 바꾸는가
유디스티라의 대답을 한 권의 책으로, 아니 10여 년간의 여행으로 보여준 사람이 있다. 문인이자 대학교수였던 전규태 작가다. 유수한 문인들의 ‘교주’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한 시대를 보낸 그는 중년의 끝에 이를 즈음 췌장암에 걸린다. 주치의는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내리면서 차라리 좋아하는 여행을 하며 객사할 것을 권했다. 암 말기 환자의 고통을 자신도 딸들도 지켜보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한 극한의 스트레스로 얻은 병이었기에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그동안의 인연과 과감히 결별하고 떠”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주치의의 충고에 따라 그는 쌓아온 모든 것들을 정리한 뒤 화구 하나 들쳐 메고 여행길에 올랐다. 모든 것을 잊고 그림을 그리며 세계 각지를 떠돌았다. 그렇게 3개월은 3년이 되고 10년이 되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직 살아 있다. 죽기 위해 떠난 여행이 그에게 다시 한 번 살아갈 기회를 준 것이다.
삶의 반대말은 죽음이라지만,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안에 삶이 있다. 전규태 작가에게 여행은 저 유디스티라의 대답에 대한 긍정적 해석과 맥을 같이한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사람의 생이지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오늘을 살아낸다. 그렇게 작가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 속으로 몸을 던져 이 세계를 감각하고 음미했다. 죽음 앞에서 더욱 또렷이 그 형체와 본질을 드러내는 자연의 강렬한 생명력과 매일 다른 색채로 반복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일상, 그리고 그것들을 올올이 꿰뚫는 작가의 시선은 길 위에서 총총히 빛나 한 권의 잠언집으로 묶였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삶과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들을 담은 이 책은, 그래서 가벼운 견문기를 넘어 여행을 통한 성찰이 담긴 철학서이자 인문서적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길 위에서 내가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또 하나의 나였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작가의 이력답게 그는 풍부한 여행 경험, 삶에 대한 질문과 깊은 사유,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문장들과 아포리즘을 어울러 톡톡하게 직조했다. 여행 및 여행지와 관련한 문학, 예술, 철학에 대한 이야기들이 얽혀 있어 읽는 재미를 줄 뿐 아니라 단순한 여행서적에서는 보기 힘든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도 보여준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와 칼 융을 비롯해, 버트런드 러셀, 키르케고르, 사르트르, 폴 발레리, 샤를 보들레르, 르누아르, 셰익스피어, 동양의 노자 등 다양한 인문학자와 문학인이 망라된 이 책 속에는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문학적 감성이 빼곡히 담겨 있다.
단테의 『신곡』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고향을 찾아간 자는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니다. 돌아갈 고향이 없다며 향수를 느끼고 있는 동안에만 나그네인 것이다.” 돌아갈 고향이 있는 자는 나그네일 수 없다. 하지만 고향을 찾으려 하지 않는 자 또한 진정한 나그네가 아니다. 여기에 여행의 묘미가 있다. 이 모순을 제대로 감당하고 극복하는 자만이 나그네로서의 삶을 그만두지 않고 끝내 그리던 고향을 찾아낼 수 있다. 여행자에게는 참된 고향을 굳건히 세워 올리고자 하는 의지와 여행을 통해 이를 이루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로 인해 우리의 여행길이 끝 간 데 없이 계속되는 한이 있더라도. 도망은 계속되어야 한다.
- 「여행의 조건」 중에서
전규태 작가에게 여행은 ‘도망’이기도 하다. ‘회피하지 마라’는 일단의 자기계발적 목소리에 반해, 그는 ‘도망’을 여행의 속성으로 끌어들이며 포용한다. 지난 10여 년간의 여행 역시 주치의의 권고를 좇아 도망치듯 떠났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찾아 떠나듯 그렇게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여행길에 오른 그는 한국의 암자부터 이탈리아의 성 프란체스코 사원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명상과 침묵으로 보냈다.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아라비아 사막, 파리, 베를린, 본, 뮌헨, 함부르크, 암스테르담, 프라하, 부다페스트, 로마, 체르마트, 아를, 호주의 눌라보까지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도 순례자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을 여행했기에 그 긴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어 그 가운데 특별한 주제에 맞는 장소와 일화들만 잠언적인 짧은 산문으로 담아냈다.
그가 직접 그린 스무 컷의 그림 또한 이 책의 백미다. 선과 면과 색으로 담아낸 다양한 장면들을 관조하다보면 마치 여행지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몸이 기뻐하는 일을 하기 위해,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초상화라도 그려주기 위해 시작한 드로잉 공부는 그의 손에서 마비가 풀리게 하는 기적을 낳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는 힘과 즐거움이 함께 어려 있다. 글과 그림을 따라가며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유쾌한 함몰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떠난 여행길
그 길에서 건져 올린 빛나는 삶의 편린들
1부 <죽음 대신 떠난 여행>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이전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인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몸이 마음의 그릇일 뿐이라 여기며 “인생은 고통과 죽음의 바다지만 사랑과 여행으로 이를 메울 수 있다”는 믿음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침묵 속의 명상을 뜻하는 ‘메디테이션meditation’이라는 낱말은 ‘약medicine’이라는 말과 맥을 같이한다. 마음이 편안해야 ‘씻음’과 ‘고침’을 받는다는 뜻이리라. 베르테르는 ‘몸이란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 여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나는 영혼과 육체가 하나임을 믿는다. 몸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마음의 그릇’이다.
- 「마음을 따르다」 중에서
2부 에는 여행에 관한 작가의 철학과 예찬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에게 여행은 “자기 안의 ‘고독한 인간’을 만나는 즐거운 체험”이며 “스스로의 인생뿐 아니라 인류의 오랜 역사를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놀라운 체험”이다. 작가의 여행에 대한 생각들은 여행을 넘어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고정관념들을 하나씩 뒤집어 삶을 다시 한 번 성찰하게 한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인간은 반은 사회적, 반은 고독적 존재’라고 했다. 우리가 걷는 삶의 길이란 그리 순탄하지도,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지도 않다. 직장은 직장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번거롭고 성가신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인간관계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혼자만의 자유와 고독을 한껏 누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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