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세계로 진출한 소년, 증오의 세기를 총력전으로 접수하다
화음이 없는 세계의 스파이로, 협동하지 않는 마을의 게릴라로
낯설고도 낯익은 폭력의 게토를 뚫고 나오는 가장 전위적인 형상
“극단적인 산문성 속에서도 정교한 운문의 리듬을 구현할 줄 아는 언어 감각, 3인칭의 캐릭터들 속에 1인칭의 정념과 괴로움을 녹여 내는 우회의 진정성, 세계의 모든 것을 고향으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그 고향을 낯선 곳으로 느끼는 정신의 힘, 그리고 윤리적이거나 정치적인 메시지에 강박되지 않고 유머와 아이러니와 악동 기질 속에서 그 메시지를 최종적인 것으로 방치하지 않으려는 형상화의 힘.”
―이장욱(시인·문학평론가)
소년 돌격대를 이끌던 거리의 악동이 돌아왔다. 2010년 첫 번째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으로 팔딱거리는 심장을 가진 이 시대 이삼류 인생들에게 생기 가득한 송가를 헌정했던 시인 서효인. 그가 새 시집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으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보란 듯이 깨뜨리고 제3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악동의 상상력은 한층 더 넓어졌고 시선은 더 깊고 성숙해졌다. 시인은 지난 백 년간의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폭력의 면면을 묘사한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않”으며 폭력의 일부를 잉태하는 우리의 내면에도 경계의 신호를 보낸다. 그렇다고 독자를 가르치려 들거나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한다. 같이 가자고. 같이 눕고 같이 일어나자고. 그의 시 덕분에 암울한 현실은 “활기찬 비극”이자 “여럿이라서 기꺼운 비극”이 된다. 지금, 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울림의 정치시가 등장한 셈이다.
서효인은 수상 소감에서 “시인의 이름이 주는 무거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겸손을 표했지만 심사위원 김행숙 시인은 “김수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그의 시적 보폭을 ‘자유의 경간(徑間)’을 넓히는 ‘해방의 동작’들 가운데서 특별한 인상으로 가지게 되었다.”라고 평했다. 현실과의 치열한 부딪침, 그것을 가능케 하는 윤리적 의지, 깊은 시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서효인의 시야말로 이립을 맞은 〈김수영 문학상〉의 정신을 빛내고 있다.
■ 지난 백 년의 세계를 클릭, 클릭하는 천진한 발놀림
―이 세상 모든 윤리적인 짐승들이여, 바로 지금, 들끓어라
다분한 악동 기질은 여전하다. 게다가 스케일이 대폭 커졌다.
첫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을 상재한 후 서효인은 계간 《세계의 문학》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시집에 하나의 도시를 건설하고 싶었다. 이들이 모두 미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를테면 『더블린 사람들』 같은, 알고 보면 모두 관련 있는 동네 사람들이기를 바랐다.” 이러한 구상을 바탕으로 그는 인부나 다방 레지, 마트 직원, 슈퍼 주인, 독거노인 등 후기 자본주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처지의 인간 군상을 스케치했다.
이번 시집에서 그의 상상력은 전 세계를 주유한다. 니얼 퍼거슨은 지난 세기를 두고 ‘증오의 세기’라 말했거니와 지난 백 년간의 세계 역사는 가히 폭력의 역사라 할 만하다. 금세기 초 제국주의자들은 아프리카에서 회수한 “툭 튀어나온 엉덩이, 마운틴고릴라, 제거된 음순, 하마의 어금니, 손톱 다이아, 신종 성병, 향긋한 커피콩, 터무니없는 무더위 모두 밀랍”으로 만들어 “자연사박물관에 각기 따로 전시”했고(「아프리카 논픽션」) 헤르체고비나에선 군인들이 “참호 안에서 우리끼리/ 죄송하다 말하고/ 괜찮다고” 자위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참호를 만”들었다.(「헤르체고비나 반성문」) “하노이의 마을 창고에서 집단으로” “추잡한 짓”을 저질렀던 수병(水兵)들은 결국 “지구의 가장 아래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유보트」) 그리고 누군가가 말한다. 지난 백 년간, 세계 “평화는 전투적으로 지속되었다”고.(「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이 언명이 도출될 때 시인은 “마그마처럼 헛구역질을” 한다. 헤르체고비나도, 아이티도, 관타나모도 모두 하나의 세계, 바로 나와 우리가 사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인의 기침은 “뜨거운 다짐”으로 화해 “피부를 뚫고 폭발한다.”(「마그마」)
그가 그려 내는 광경은 곱씹기엔 고통스럽지만 일별하면 유쾌하기도 하다. 시인 김행숙의 말대로 “가벼울 때에도 가볍지만은 않고, 무거울 때에도 무겁지만은 않”은 것이 서효인 시의 매력. 특유의 유머와 아이러니로 재현해 내는 광경은 흡사 신명 나는 마당극처럼 현장성이 두드러지고 한편 블랙코미디처럼 쓴웃음을 유발한다.
대재앙의 이유를 알기 위해 우리는 모였다 오른쪽과 왼쪽에 앉을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파티가 먼저였다 파티로 보낸 시간에 대해서는 입 다물기로 한다 누구도 본인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했고 토론에 불참하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뒤를 돌아보세요, 그의 아이디어로 우리는 오른쪽과 왼쪽이 순식간에 바뀌는 기적을 보았다 카리브 해에서 우리는 격정적으로 화해했다 (중략)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대재앙에 관련된 회의를 하러 모였다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그의 탁월한 의사 진행에 우리는 휴양도시의 노부부처럼 여유로워졌다 다음에 다시 모여 토론하자는 의견의 합치로 회의 결과를 이끌어 냈다 우리는 전통 의상을 빌려 입고 선홍빛 잇몸을 드러내며 여기와 이때를 사진으로 남긴다. 끝.
―「아이티 회의록」에서
총칼이 지배한 시기를 지나 이제 우리는 숨 막히게 짜인 자본주의 질서 속에 살고, 나로부터 유래하였으나 정작 내가 향유하기는 어려운 정치권력의 논리 속에 산다. 이미 첫 시집에서 “만국의 소년이여, 분열하세요.”(「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라며 집단화의 함정을 피해 개인의 힘을 응원했던 서효인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맞아 인간성에 대한 탐구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여전히 전복적인 태도로 그는 ‘도덕’을 저울에 올려놓고 재단한다.
그는 다시 걷는 일에 골몰한다
도덕을 지키기 위하여
멍청한 짐승의 내장을 빠져나오다 몇 명의 여성과 몸이 닿았다 정중하게 사과하고 싶었으나 여성들은 걷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노력하는 모습은 도덕적이다 그는 노력이 부족해 몸을 맞대었고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은 비윤리적이다 그것은 멍청한 짐승의 냄새였고 짐승에게는 도덕이 없다
지갑을 꺼내려 오른손으로 본인의 엉덩이를 만진다 엉덩이를 만지는 것은 도덕적이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사랑하여야 하고 지갑은 없고 깊은 구멍에는 바람만이 가득하다 쪼그린 자세로 개찰구를 빠져나와 주위를 살피지만, 두리번거리는 일은 비윤리적이다 그것은 당혹스러운 찰나였고 순식간에 지갑을 빼내 가는 짐승은 없다
―「아주 도덕적인 자의 5분」
시인의 섬세한 눈길은 도덕과 비도덕, 윤리와 비윤리가 아니라 도덕과 비윤리를 곧장 대응시킨다. “짐승에게는 도덕이 없다”. 도덕은 인간(人間), 즉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다. 타인을 침해하지 않는 것,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도덕적이다. 반면 윤리는 사회적 관계보다는 모든 존재를 존재 그 자체로 두고자 한다. 그러므로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과 타인의 시선을 염려해 “두리번거리는 일”은 ‘도덕적’일 수는 있으나 ‘비윤리적’이다. 바람직한 사회적 관계에 위배되는 개인을 도덕의 이름으로 벌하는 것은 사실상 폭력이나 다름없다. 국가는 종종 이런 속임수로 수많은 개인을 희생시키곤 했다. 그래서 침몰하는 유보트의 지휘관은 “조국은 너희를 기억할 것이다.”라는 거짓 구호를 방패 삼아 “고해할 것이 차고 넘”치는 수병들을 호도했던 것이다.(「유보트」) 시인은 ‘도덕’이라는 사회적 테제가 폭력과 은밀히 공조할 때 ‘윤리적인 짐승’이 되어 사회적 관계의 완전한 바깥에 거하자고, 집단성으로 환원된 모든 폭력